[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0)
[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0)
  • 관리자
  • 승인 2011.03.28 15:36
  • 호수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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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판이 광팔의 뜻대로만 움직여주진 않았다. 광팔과는 다른 수법이지만 정씨 역시 손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광팔이 느끼기에 어쩐지 노는 품이 좀 달라 보이긴 했었다. 정씨의 눈빛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광팔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싸움이 될 터였다. 광팔과 정씨는 서로 기술을 구사하면서도 상대의 기술을 찍어낼 만한 확증을 가지지 못했기에 서로의 기싸움만 벌이고 있었다. 무언의 동의였다. 정씨와 광팔이 냉소적인 눈빛을 주고받았다.

‘야마시 적당히 치더라고. 어차피 너와 나의 싸움잉게.’
‘막판까지 잘 끌고 가 봅시다.’

이씨와 윤씨, 최씨가 차례대로 떨어져 나갔다. 속이 상한 이씨는 소파 한쪽에서 면벽을 하고 돌아누워 버렸고, 윤씨와 최씨는 착잡한 표정으로 맥주잔만 비워내고 있었다.

패가 네댓 명으로 줄어들자 그 때까지도 기세가 죽지 않았던 노기사 영감이 더욱 크게 돈을 질러대고 있었다. 노기사 영감이 기술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몇 번 되지 않는 기회에 크게 땄기 때문에 여전히 전체적인 판세는 노기사 영감이 우세했다. 정씨와 광팔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탓에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셈이었다. 노기사 영감의 ‘기마에’가 제때 운을 만난 셈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오산은 노기사 영감은 운이 곧 자신의 실력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런 기회라도 있어야 노름판을 기웃거릴 염이 되는 것이긴 했다. 간혹 재수 좋으면 이렇게 ‘꾼’들 사이에서 엉뚱한 놈이 행운을 얻는 경우도 있기는 했을 터였다. 정씨는 인원이 줄자 다시 판을 섯다에서 짓고땡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손기술이 광팔에 비해 모자란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약간의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광팔은 괜한 시비하고 싶지 않아 선선히 정씨의 말에 따랐다.

세시를 넘어가자 노기사 영감은 연방 빙글거리며 술잔을 찾았다. 오늘은 특별히 정신 차린다고 지금까지 술을 참은 것이 용한 일이었다. 광팔은 이제 어느 정도 승부를 위한 시간이 무르익었음을 알았다. 광팔과 정씨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드디어 오야마저 나가 떨어졌다.

제각각 적게는 오백에서 많게는 천이백까지의 돈을 잃은 이들이 저희들끼리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에잇, 대체 이놈의 화투판은 누가 먼저 하자고 한 거야?”

성마른 최씨가 낮게 읊조렸으나, 아까 이씨를 윽박지른 터라 대놓고 욕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씨는 아직도 분한지 씨근대며 충동질을 해댔다.

“니미 젠장맞을. 아, 재미로 놀자고 안캤는교. 설마 돈 따고 쓱 입 씻지는 몬할끼라. 아는 처지에 반만 돌리 달라 카입시더.

오야는 그래도 나잇값을 하느라고 가만히 그들을 달랬다.

“사람들, 구질구질하게 그러지들 말자고.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한 일이 아니잖은가. 술이나 한잔씩 하고 잊어버리게. 이씨 자넨 젊으니까 인생 공부 했다 셈치고.”

이씨는 씩씩거리다가 눈가에 어룽어룽 눈물까지 맺혔다.

“이런 시펄. 내가 다시 화투 째기를 만지마 손모가지 잘라뿐다. 여기 현장에 와서 여퉈놨던 거 홀라당 해뿠다.”

광팔은 이제 슬슬 노기사 영감을 따돌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씨가 만만찮게 견제를 하는 통에 노기사 영감은 쉽게 따돌려지지가 않았다. 의외의 문제가 생긴 셈이었다.

‘노기사, 이놈의 영감쟁이. 오늘 억수로 운발이 좋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 셋이 한꺼번에 쇼부를 쳐?’

오히려 정씨가 광팔을 노려보는 품이 노기사 영감과 광팔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광팔은 노기사 영감을 도운 적이 없었다. 노기사 영감은 그야말로 정씨와 광팔 사이에서 의외의 행운을 누리고 있는 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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