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입장 고려한 보훈정책 마련 절실”
“국가유공자 입장 고려한 보훈정책 마련 절실”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5.27 15:56
  • 호수 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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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천 앞서 8년째 1인 시위하는 최한의(65)씨

▲ 보훈정책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 최한의씨.
5월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가보훈처 앞. 최한의(65)씨는 오늘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확성기의 볼륨을 높인다. 최씨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벌인지 올해로 8년째.

최씨는 2004년 8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6·25전쟁에 참전한 부친이 최중상인 1등급 상해를 당했음에도 국가가 유공자로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4년 전부터는 청와대 대신 국가보훈처와 한나라당 당사를 오가며 국가유공자에 대한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씨에 따르면 부친은 6·25전쟁 당시 육군에 입대해 전투 중 최중상인 1등급의 상해를 입고 전역했다. 그러나 부친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채 1983년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 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최씨는 고인이 된 부친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부친의 진료기록을 찾기는 슂지 않았다.

국가유공자임을 증명하는 자료를 챙기는 데만 20여년이 걸렸다. 최씨는 육군본부에 부친의 진료기록을 수십 번 요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료기록을 찾아내 2004년 서울지방보훈청에 자료를 제출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허망했다.

부친의 전역 후 사망원인을 확인할 수 없어 복무 중 상이를 입고 그 상이로 인해 사망했다고 의학적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최씨는 서울행정법원에 보훈청을 상대로 부친의 ‘국가유공자 비해당 처분 취소’ 소송을 내 승소했지만 보훈청의 항소로 결국 서울고등법원까지 가서야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냈다.

하지만 국가유공자 인정 과정 중 실시한 서면신체검사에서 당시 상해수준의 명확성을 증명할 확인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상이등급 최하위에 속하는 ‘6급2항’으로 판정이 났다.

최씨는 최중증인 상해 ‘1등급’을 증명하는 진료기록이 있는데도 국가유공자 최하위 단계인 ‘6급2항’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소송을 택했다. 보훈청과의 오랜 소송 끝에 2008년 3월 대법원으로부터 상이 ‘5급’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최씨는 수년 동안 소송을 치르면서 담당기관인 국가보훈처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그는 “국가보훈처나 지방보훈청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나 그 가족을 돕는 기관인데 이렇게 국가유공자들을 홀대한다면 앞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국가 유공자들의 입장을 고려한 보훈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또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갖추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지적하며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한의씨는 2004년부터 8년째 국가보훈처 앞에서 보훈정책 개선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는 “6·25전쟁 참전자 대부분이 고령자인데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보니 국가유공자 신청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만약 신청 대상자가 이미 고인이 됐다면 그 가족들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국가유공자 신청에 서류 절차를 간소화하는 시스템 마련을 위해 국방부와 각 군의 노력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한의씨도 부친처럼 베트남전에서 온몸에 파편을 맞고 부상을 당했고,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비록 부친보다 먼저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았지만 최씨 또한 국가유공자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10여년이 넘는 자료 조사는 물론 보훈청과 수 차례의 소송 끝에 상이 등급이 ‘6급1항’에서 ‘4급’으로 올랐다. 하지만 최씨는 이 판결에 만족하지 않는다.

최씨는 “소송 당시 서울고등법원이 지정한 대학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 상이 등급 ‘3급’ 판정을 받았는데, 보훈청은 1단계 낮춘 ‘4급’으로 판정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고엽제 후유증은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에 따르면 두 대학병원이 내린 최종진단서에는 고엽제로 인한 건성습진이었다. 하지만 보훈처의 의뢰로 상이등급을 평가하는 기관은 고엽제와 상관없는 건성습진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같은 질환이지만 병원마다 진단이 서로 다르니 혼란만 커졌다. 최씨는 조만간 서울고등법원에 ‘재분류신체검사 상이등급 판정처분 취소’건에 대한 재심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밖에 최씨는 국가유공자 여부를 심사하는 ‘보훈심사위원회’의 위원이 대부분 변호사나 의사,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보훈심사위원회의 진정성을 위해서는 국가 유공자나 유가족이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최한의씨는 “오는 7월이면 1인 시위를 벌인지 만 7년이 된다. 인생의 10분의1 이상을 하루도 쉬지 않고 시위를 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관련 기관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가유공자의 상이등급 판정은 보훈처의 ‘상이등급구분심사위원회’의 평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대학병원의 등급 판정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의료 진단이 다르다는 의혹이 있다면 대학병원의 진단서나 정확한 근거자료를 상이등급구분심사위원회에 제출해 평가를 받아봐야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다”며 “의료진에 따라 의학적 소견의 차이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우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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