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 외면 자식, 제 부모 극빈층 내몰아
부양 외면 자식, 제 부모 극빈층 내몰아
  • 장한형 기자
  • 승인 2011.06.10 16:14
  • 호수 2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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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민법 “부모가 자식 고소해서 부양비 타라”… ‘비현실적’
“차라리 부양의무제도 없애고 복지혜택 늘리자”… ‘개선요구’

 올해 71세인 김모 어르신은 16년 전 협의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김 어르신은 대학까지 가르쳐 출가시킨 두 딸을 상대로 최근 소송을 준비 중이다.

김 어르신은 “부양의무자인 두 딸이 경제력 없이 혼자 사는 아버지의 생활비를 보조하기는커녕 반목과 갈등을 일삼아 배신감마저 든다”고 했다.

특히 둘째딸(30)은 부친의 전 재산 2000만원을 빌려간 뒤 이자와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5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한 약속마저 지키지 않는다고 했다.

김 어르신은 “두 딸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동을 서슴지 않아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부양비를 지급 받기 위한 법적 대응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어르신의 또 다른 고통은 행정상 부양의무자로 등재된 두 딸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신청도 불가능해 월 9만원의 기초노령연금으로 극빈한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 어르신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월 43만원(1인 가구 기준)의 최저생계비를 지급받는다면 현재보다 훨씬 나은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자녀 등 부양의무자가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데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도 제외된 어르신들이 복지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이런 상황에 놓인 어르신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사각지대로 내모는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현행 민법은 “자녀 등 직계혈족과 배우자간에는 부양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부양의무는 부양을 받을 사람이 자기의 재력 또는 근로에 의해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이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고 못 박고 있다.

특히, “부양의 정도 또는 방법에 관해 당사자 간에 협정이 없는 때에는 법원이 당사자의 청구에 의해 부양 받을 사람의 생활정도와 부양의무자의 재력 기타 제반사정을 참작해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녀가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에 호소하는 어르신들은 매우 드문 사례에 불과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우리나라의 국민정서가 존재하는 데다 부모와 자식간 법정다툼을 패가망신의 전형으로 인식하는 관습이 가난의 고통보다 더 두려운 처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에 가로막혀 기초생활수급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이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대부분은 노년층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산술적으로 노인 5명 중 1명은 부양의무자의 부양도, 공적부조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셈이다.

특히 평균수명이 늘면서 60~70대 자녀를 둔 고령의 저소득층 어르신들의 고통은 더할 나위 없다. 이미 노년층에 편입된 자녀들도 변변한 벌이 없이 어렵게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부양을 바라기 어려운 데다 기초생활수급 신청자격마저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양의무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예산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급기야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개정을위한공동행동(이하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이 6월 7일 국회에서 기초생활보장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은 “국회는 복지의 기본인 기초생활보장법을 전면 개정하라”며,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및 시설수급자의 권리 보장 등을 촉구했다.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는 맞춤형 복지를 확대하고 저소득층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으면서도 보편적으로 제공돼야 할 복지서비스를 축소하고 상품화하는가 하면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지원은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말까지 2년 동안 절대빈곤층은 50만명이나 증가했는데도 기초생활보장제도로 흡수된 인원은 겨우 4%인 2만명에 불과하다는 것.

이에 따라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5월 16일,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부양의무자(자녀나 부모)의 소득기준이 최저생계비의 185% 미만이면서, 소득과 재산 등을 환산한 본인의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올해 4인 가구 기준 144만원) 미만이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수급자 선정기준은 소득과 재산 등을 환산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이어야 하고 부양의무자가 부양능력이 없어야 된다. 부양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부양의무자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미만이어야 한다. 개정안은 수급자 선정기준인 소득인정액의 범위를 늘리고,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기준은 낮춰 더 많은 사람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도록 했다.

김성식 의원은 “현재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기준에 걸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103만명 가량으로 추산되고, 이 중 54.6%는 자녀 등 부양의무자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들은 수급자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어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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