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배운 뒤 삶이 달라졌지”
“컴퓨터 배운 뒤 삶이 달라졌지”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6.17 14:18
  • 호수 2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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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정보화진흥원, 어르신 정보화제전 개최

▲ 정보화 제전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시험직전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있다.

6월 15일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 노랑·분홍·하늘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155명의 어르신들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책상위에 놓인 컴퓨터와 마주하고 있다. 오전 11시 30분,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시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르신들의 손과 눈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시험지와 키보드를 오가는 돋보기 너머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제한 시간은 60분. 누가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검색과 문서작성을 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와 한국정보화진흥원(원장 김성태)이 6월 15일 오전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개최한 ‘2011 어르신 정보화제전’ 현장에서 느꼈던 팽팽한 긴장감이다.

이날 대회에는 5월 20일부터 6월 4일에 걸쳐 전국 16개 시·도별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한 예선대회를 통해 선발된 어르신 155명이 참가했다.

행안부와 정보화진흥원은 6월 정보문화의 달을 맞아 어르신뿐만 아니라 장애인(6월 14일), 결혼이민자(6월 16일) 등 총 400여명을 대상으로 정보사회의 기본소양인 정보검색과 문석작성 능력을 겨루는 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어르신들의 정보화 제전은 대한노인회와 한국복지정보통신협의회,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후원했다.

55세 이상 어르신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연령별로 정보화 능력을 구분하기 위해 3개 부분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75세 이상 어르신들은 1부문으로 노란색 티셔츠를, 65~74세 어르신들은 2부문으로 분홍색 티셔츠를 입었다. 또 중장년층인 55~64세 어르신들은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컴퓨터 실력을 겨뤘다.

시험과제는 인터넷을 검색해 아이콘을 삽입하고, 서체와 글씨크기 바꾸기 등 문자 및 이미지를 활용, 60분 동안 정확하게 문서를 작성하는 것.

이날 대회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컴퓨터를 배우게 된 사연도 각양각색. 대다수의 어르신들이 컴퓨터를 배운 뒤 삶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대회에도 최고령으로 참가한 국양호(85·전북 전주) 어르신은 정보검색, 한글, 파워포인트, 포토샵 등은 물론 개인 홈페이지인 ‘싸이월드’나 ‘카페’ 등을 개설할 만큼 수준급 실력을 자랑했다.

78세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국양호 어르신은 ‘다 늙어 컴퓨터는 뭐 하러 배우냐’는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 어르신은 “컴퓨터를 뭐 하러 배우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진가를 모르기 때문”이라며 “특히 외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과 안부 인사를 편리하게 주고받을 때 컴퓨터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에서 출전한 박행열(78·여) 어르신은 미국에 있는 손자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컴퓨터를 배웠다.

박행열 어르신은 “손자가 백일이 됐을 즈음, 미국에서 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지역 대학과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인터넷을 통해 손자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봐서 그런지 오랜만에 봐도 전혀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컴맹’을 탈출하고 싶어 컴퓨터를 배우게 됐다는 김기선(79·인천)어르신은 인터넷을 통해 실생활의 다양한 정보는 접하며 살고 있는 ‘신세대 할아버지’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직접 여행정보를 검색,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컴퓨터로 인해 손자들과 소통의 기회를 만드는 어르신도 있다.
권이혁(78·충북 청주) 어르신은 몇 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손자와 함께 우연히 지역 복지회관에서 컴퓨터를 접한 뒤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손자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신세대 용어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권 어르신은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손자들과 자주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신세대 용어도 배우게 됐다”며 “컴퓨터가 손자들과 소통하는데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를 배우기 위한 어르신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독학으로 컴퓨터를 배웠다는 박성근(76·전북 전주) 어르신은 한글 자판을 익히기 위해 남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컴퓨터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 하루에 성경책 300절씩 옮겼다. 성경책 한권을 모두 옮기는데 걸린 기간은 3개월 정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과 새벽, 한글 자판을 익혀 이젠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2년여에 걸쳐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 성경책을 여덟 번이나 옮겨 썼다. 성경책 열 번 옮겨 쓰는 것이 최종 목표라니, 대단한 열정이다.

김성태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은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어르신정보화제전을 계기로 전국 어르신들의 정보화 교육 동기와 성취감을 높일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정보화를 통해 어르신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 참여기회가 많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분야별 수상자에게는 행정안전부장관상과 한국정보화진흥원장상이 수여되며, 부상으로 소정의 상금이 주어졌다.

한편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은 1999년부터 장애인과 고령층 등 정보소외계층에 대한 정보화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2003년부터 정보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정보화제전을 통해 교육 동기를 부여하고 정보격차 해소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왔다.

수상자

▲대상 △1부문 기봉환(76·부산) △2부문 한만섭(67·제주) △3부문 임진규(61·서울) ▲금상 △1부문 이 현(80·경남) △2부문 이기형(69·경기) △3부문 김혜자(63·경남) ▲은상 △1부문 이상섭(76·광주) △2부문 최다미(67·서울) △3부문 윤용식 (60·경기) ▲동상 △1부문 이재희(76·전남)·류건석(79·광주) △2부문 정주익(66·부산)·김기덕(70·대전) △3부문 김신영(58·서울)·박병도(63·강원) ▲장려상 △1부문 김규봉(77·울산)·이준모(77·경기)·이두환(80·서울) △2부문 임인식(67·서울)·최태진(68·경기)·이병현(66·경남) △3부문 홍복림(57·서울)·최건종(64·경기)·차흥주(64·대구) 총 24명.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photo@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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