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쌈짓돈 노리는 ‘휴대폰깡’ 활개
어르신 쌈짓돈 노리는 ‘휴대폰깡’ 활개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8.12 13:07
  • 호수 2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통한 스마트폰 가져오면 50만원 지급” 사탕발림… 공짜에 현혹 말아야

“스마트폰 개통하면 곧바로 현금 50만원을 드립니다.”

지하철이나 생활정보지, 휴대전화 메시지, 인터넷 카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다. 하지만 이런 허위광고에 속아 ‘휴대전화 이용 대출’, 속칭 ‘휴대폰깡’ 피해를 입는 노인들이 크게 늘어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최근에는 고가의 스마트폰이 크게 확산되면서 이를 활용한 ‘스마트폰깡’이 확산되는 추세다.

무직인 A(61·경기 시흥)씨는 지난 6월 지하철에 붙은 광고전단지를 보고 사용도 못하는 최신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휴대폰 가입만 하면 현금 50만원을 준다는 전단지 광고 때문이었다. A씨는 아들 내외에게 용돈을 받아쓰고 있었지만 복지관 친구들과 제주도 여름여행을 떠나기 위해 급전이 필요했던 것.

A씨는 곧바로 한 통신사 대리점으로 달려가 82만7000원짜리 스마트폰을 24개월 약정기간 동안 매달 할부금을 내는 조건으로 개통했고, ‘개통된 스마트폰을 가져오면 50만원을 준다’고 광고한 업체를 찾아가 스마트폰을 건네고 50만원을 지급받았다.

A씨의 계산으로는 개통 당시 신분증만 제시하면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데다 개통된 스마트폰을 광고한 업체 측에 건네면 50만원을 벌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달 그에게 찾아든 휴대전화 요금청구서에는 기기할부금과 통신요금, 채권료 등이 더해져 10만원에 가까운 통신비가 청구됐다. 휴대전화는 이미 그의 손을 떠났고,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 하지만 A씨는 2년의 약정기간 동안 해지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50만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200만원에 가까운 통신료를 부담해야 한다. A씨가 받은 원금(50만원)의 4배가 넘는 금액이다.

만약 3개월 동안은 무조건 사용키로 한 통신사의 약정을 지켜 3개월 후에 위약금을 지불하고 가입계약을 해지한다고 해도 기본요금, 기기할부금, 채권보증료 등과 위약금을 더해 100만원 가까이 물어내야 한다.

A씨는 “휴대폰만 개통해 가져오면 현금을 준다기에 우유나 신문 신청하면 사은품을 주는 것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사용하지도 않는 휴대폰의 요금을 2년 동안 꼬박 갚아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휴대폰깡’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행하고 있는 것은 소액의 급전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까다로운 절차 없이 신분만 확인하면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있고, 개통 시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것도 노인들이 ‘휴대폰깡’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다. 큰돈이 아닌 다음에야 자식들 눈치 보지 않고 여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쉽사리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피해를 당한 노인들이 ‘휴대폰깡’이 불법 대출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지하철 광고전단지 어디에서도 ‘현금지급’에 대한 부분만 강조할 뿐, 대출금 상환 및 대출이자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휴대폰깡’이 대출인지도 모르고 연 수백%가 넘는 살인적인 이자율을 노인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모니터링 불구 ‘속수무책’
전자기기에 무지한 노인들의 피해는 계속 늘고 있지만 마땅한 처벌방법은 없다. A씨 또한 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들어야 했다.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대부업자가 이자나 원금을 받는 것과 달리 통신사에 사용료를 내는 것이라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마땅한 처벌조항이 없어 애꿎은 피해자만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대출 업체의 현황조차 파악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단속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방송통신위원회는 2002년부터 매해 휴대폰 대출 업체를 조사해 경찰에 고발하는 등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지하철 등에 광고를 게재한 업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무등록업체를 조사하는 선에서 수사가 이뤄지는 정도다.

정부는 2008년 말부터 ‘정보통신망법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휴대폰 결제를 이용해 대출하는 행위는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휴대폰깡’의 경우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나가는 신종 대출사업체가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불법대출 행위에 대한 조사와 조치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이 크다”며 “현금을 준다고 휴대폰 개통을 권유하거나 통장 및 신상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112로 신고하고,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금융감독원(02-3145-5114)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긴급자금이 필요한 경우엔 ‘서민금융 119 서비스’ 등을 통해 본인 소득수준에 맞는 대출상품을 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시민모임의 한 관계자는 “무등록 대부업자들이 생활정보지나 인터넷에 광고를 못하도록 법규를 마련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방통위와 이동통신업체들 또한 국민에게 휴대전화 대출이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적극 알릴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업체·대리점 발만 동동
이동통신사들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휴대폰깡’에 대한 실태조차 파악이 안 돼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기로 막대한 요금폭탄을 떠안은 피해자들 대부분이 사용료를 내지 못해 막대한 연체로 이어지는 데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거래된 단말기가 이른바 ‘대포폰’으로 유통돼 다른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2002년부터 휴대폰 소액결제를 통한 불법 고리 사채가 존재했다는 사실만 인지할 뿐 현실적으로 실태 파악은 불가능하다”며 “고객이 어떤 목적으로 휴대폰을 구입하는지 일일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건 휴대전화 판매점도 매 한가지. 서울 신도림에서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 중인 이모씨는 “최근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사용법도 모른 채 스마트폰을 구입하러 오시는 경우가 하루에 한 건 이상은 있다”며 “휴대폰깡에 대한 심증만 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각 통신사는 휴대폰 불법 사용을 막기 위한 방안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만약 휴대폰을 개통한 사용자가 6개월 이내에 해지를 한다거나 3개월 동안 통화 사용량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통신사는 이를 비정상적인 사용자로 판단해 대리점에 ‘환수’를 요청하게 된다. 이와 함께 신용조회 등을 통해 신용불량자나 저신용자에 대해 휴대폰 개통 수량에 제한을 두기도 한다. 신용불량자는 1대, 저신용자는 2대, 그 외의 경우는 5대로 1인당 개통 수량이 제한돼 있다.

통신업체 관계자들은 “전국 어느 곳에서 개통을 하더라도 ‘본인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휴대폰 개통이 불가능하다”며 “휴대폰을 이용한 고리 사채의 피해를 구매자들이 정확히 인지하고, 대출을 목적으로 한 개통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