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나이가 있다? 꿈꾸는 열정만 있을 뿐”
“꿈꾸는 나이가 있다? 꿈꾸는 열정만 있을 뿐”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9.07 16:56
  • 호수 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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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실버스타 라디오DJ 동우자(68) 어르신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방송, ‘실버 청춘 풍경’의 정다운 DJ 동우자입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서울노인복지센터 3층 라디오방송 스튜디오. 멋진 멘트로 방송을 시작한 '실버 DJ'(디스크자키·음악방송진행자) 동우자(68·여) 어르신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그의 경쾌하고 건강한 목소리는 청취자들까지 활기찬 에너지로 전염시킨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방송을 듣던 어르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흥겨운 어깨춤을 추는 풍경도 연출된다.

복지관 내 라디오방송 프로그램 ‘실버청춘 풍경’과 ‘실버스타 음악살롱’를 진행하고 있는 동우자 어르신. 그의 목소리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1시간씩 생방송으로 전파를 탄다. 복지관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방송이지만 그의 인기는 연예인 못지않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등록회원수가 4만6000명, 하루 방문자가 3500명을 넘는 전국 최고 규모의 복지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노인복지센터에서 내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나간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방송을 시작하면서 자신감도 커졌고, 건강과 활력도 되찾았다”고 말한다.

노인들을 위한 방송이라고 쉽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어르신들의 소소한 일상부터 건강정보, 생활에 도움이 되는 뉴스, 인터뷰나 청취자 사연 소개까지 내용도 다채롭다. 일반 DJ들처럼 미리 작성된 원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제작 회의부터 주제 선정, 대본 작성, 음악 선곡, 라디오 진행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방송 대본을 직접 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대본을 작성했다. 그에 어울리는 곳을 선정하는 작업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들이 가장 즐겁고 재미있다. 숨은 미담을 발굴하러 취재나 인터뷰도 나가고, 전문가에게 조언도 구하는 등 발로 뛰면서 직접 만드는 나만의 방송이기 때문이다.”

동 어르신은 벌써 3년째 DJ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라디오스타 실버DJ’로 선발돼 2008년 12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시작 전 1년 동안 미디어센터 등을 통해 라디오진행, 발성, 대본작성 등의 교육을 받았지만 생방송에 대한 부담감은 생각보다 컸다. 마이크를 잡게 되면 손부터 떨리고 발음이 꼬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은 즉흥적인 ‘애드리브’(즉흥 대사)까지 구사할 만큼 여유롭다.

늘 재미있는 방송소재를 찾다보니 일상의 작은 일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메모하는 습관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무엇보다 그의 손에는 항상 신문과 책이 들려있다.

방송을 향한 남다른 그의 열정은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싶은 간절함에서 비롯됐다. 사실 동우자 어르신은 1964년 TBC(현 MBC) 방송국 성우 공채 시험에 합격해, 2년 동안 성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결혼 직후 지병을 앓던 남편과 사별하면서 꿈보다는 생계를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그는 커피숍과 갤러리를 운영하며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꿈을 꿀 수 있는 나이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며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일 뿐 나이가 열정과 꿈을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젊은 시절 어려운 형편 때문에 성우라는 꿈을 접어야했던 그는 65세가 넘어 라디오 DJ란 꿈에 당당히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낸 그의 목소리에는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 담겨 있다. 그리고 전문 진행자들에게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젊어서는 동우자가 아니라 어머니란 이름으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았다. 그래서 은퇴 후 주어진 이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남의 행복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며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나를 통한 성취의 기쁨을 배우고, 그것을 남들에게 나누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실버 DJ를 통해 새롭게 펼쳐진 그의 인생 2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방송뿐만 아니라 평소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현재 서양미술 ‘유화’를 배우고 있다. 올 11월에는 작품전시회를 열고, 내년에는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또 취미로 즐기고 있는 게이트볼의 심판 자격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꿈많은 여고생을 닮은 동우자 어르신의 도전하는 열정과 패기가 오늘도 라디오를 타고 흐른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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