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며 새 삶… 다른 환자에 희망 되고파”
“봉사하며 새 삶… 다른 환자에 희망 되고파”
  • 관리자
  • 승인 2011.09.09 15:43
  • 호수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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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이겨낸 국가유공자 엄응석(79) 어르신

“백혈병에 걸려 오래 못 산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죽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5년 전 백혈병에 걸려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지금은 완쾌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엄응석(79)어르신은 힘든 투병생활 중 마술 등을 배우고 저소득 계층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엄 어르신은 “7살짜리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매달리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요즘은 아이들 만나는 재미로 산다”며 환하게 웃었다.

왜소한 체구의 엄 어르신은 18세이던 1950년 12월 일반사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양구, 철원 등 최전방에서 포탄 파편이 등에 박히는 부상을 이겨내며 싸웠다. 전쟁이 길어질 것으로 생각해 장교 신청을 했고, 휴전이 되면서 육군항공부대에서 18년간 조종사로 군생활을 한 뒤 소령으로 예편했다.

전역 후 한 공기업에서 13년간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해 편안한 노후를 기대했지만 그를 맞은 건 암흑과 같은 긴 터널이었다.

2006년 4월 백혈병 판정을 받고 인천 인하대병원에 입원한지 5개월 만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엄 어르신은 “병원에서는 며칠 못 사니 퇴원하라고 했다. 공무원인 큰아들은 휴가를 내고 장례식장을 알아보러 다녔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기억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 서질 못해 무릎이 까질 정도로 기어 다녀야 했고, 두 번의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전부 빠졌다. 힘든 골수검사도 70대 중반인 그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통근 치료를 열심히 받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투병 중이던 2008년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부인과 함께 한 지역센터를 찾아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한자, 일본어 등을 가르치며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새 삶을 찾았다. 그 사이 약물치료를 받으며 병세는 점차 호전됐고 군인시절 키운 강인한 정신력으로 기적처럼 백혈병을 이겨냈다. 6개월 뒤 인천 남구노인복지관의 소개로 한 어린이집으로 옮겨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엄 어르신은 인천의 한 대학교가 개설한 강의를 들으며 마술도 배웠고 재료를 사서 집에 돌아와 밤낮으로 연습했다.

“한 달 뒤 팔순 잔치를 한다”는 그는 “나이를 많이 먹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겸연쩍어했다.

엄 어르신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것”이라며 “지금도 백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이 병을 이겨낸 나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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