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주기(林住期)의 바람직한 삶
[기고] 임주기(林住期)의 바람직한 삶
  • 관리자
  • 승인 2011.09.09 15:46
  • 호수 28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진태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사람은 누구나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은 건 모두의 바람이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노인들도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취미활동과 사회활동, 나눔 및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 할 수 없는 것들에 실망하지 않고, 나이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회가 변하니까 인생을 누리는 삶의 형태도 함께 변하는 것 같다. 과거 노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활력과 에너지가 현대사회에서는 넘치고 있다. 인도불교 사상에 따르면 노년세대는 임주기(林住期)에 해당한다.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인생과 마주하는 시기인 것이다.

인도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의 분류에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학생기(學生期)다. 태어나서 사회에 나가기까지의 준비기간이며, 학문과 예절을 배워 신체를 단련하는 시기다. 말하자면 인생의 봄과 같다. 다음에 오는 것이 가주기(家住期)다. 직장을 갖고 결혼해 자식을 키우고 사회에 공헌한다. 인생의 여름과 같다. 이 역할을 다 하면 임주기(林住期)에 들어간다. 자기의 인생과 마주 대하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기다. 인생을 수확한다는 의미에서 가을에 비유된다. 다음은 조용히 유행기(遊行期)를 맞게 된다. 유행이란 순례(巡禮)의 의미, 즉 죽음의 계절이다.

이렇게 사람의 일생을 구분지어 보면 25년 단위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태어나 25세까지를 학생기, 25세로부터 50세까지를 가주기, 그리고 50세부터 75세까지가 임주기에 해당한다. 계절이 바뀌듯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도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각자의 선택에 따라 계절의 모습은 달라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나이 60만 넘으면 환갑잔치를 열어 장수를 축복했지만 지금은 ‘이팔청춘’에 해당하는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인생 100세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의 노인들에게 임주기의 시간이 더욱 길어지고 있다. 길어진 임주기를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이 긴 세월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정열을 경주할 수 있는 테마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취미이든 사회참여든 봉상활동이든 상관없다. 지적생활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자기존재의 증표(證票)로 남길 수 있는 라이프 워크(life work)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재능은 노력 여하에 따라 항상 개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취미·여가·사회활동을 통해 학생기와 가주기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면 시간 때우기 식의 여가선용을 목적으로 하지 말고,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된다는 생각으로 도전하기를 권한다. 그래야 라이프 워크의 성과를 유행기 기간동안 저작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도 60~70대의 임주기를 통해 인생의 큰 업적을 남긴 위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임주기는 유행기를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안락하고 평온한 유행기는 임주기의 삶을 통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결국 세상에 홀로 태어나 혼자 죽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임주기를 보람차고 알차게 보낸 사람은 평온한 유행기를 맞을 수 있다. 후회와 미련이 죽음을 슬프게 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임주기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소욕(少欲)이 된다고 한다. 이미 획득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망은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강해진다고 한다. 특히 권력과 명예욕이 그러하다. 임주기 때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히면 노해(老害)가 된다. 이 때문에 노년이 될수록 ‘욕’(欲)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각계각층의 정치·경제 인사들이 노욕(老欲)을 부려 엄청난 탐욕과 낭비와 부정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순과 부조리 가득한 세상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技)와 ‘술’(術)은 임주기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