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폐지 수집하는 노인
[금요칼럼] 폐지 수집하는 노인
  • 관리자
  • 승인 2011.09.09 15:47
  • 호수 28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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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얼마 전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조찬모임에 참석하러 가다가 마음이 몹시 착잡한 광경을 목격했다. 오전 6시 30분쯤이어서 지하철은 한산할 정도로 승객이 적었다. 좌석에 앉아 신문을 읽으려는 필자의 눈에 그날따라 문득 80세에 가까워 보이는 한 노인이 객차 안에 버려진 헌 신문지를 수집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때까지 필자는 이런 일은 주로 50·60대의 장년 내지 예비노인들이 하는 부업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날 목격한 이 80세 가까워 보이는 노인은 성한 몸도 아니었다. 그는 다리를 약간 절면서 지팡이를 짚고 선반 위에 놓인 헌 신문지를 집고 있었다.

필자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우선 마음이 대단히 아프면서 분노 같은 기분이 치밀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달하는 대한민국의 복지사각지대를 직접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절반에 가까운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3%)의 3배가 넘는다.

즉, 한국의 노인 100명 중 45명이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순서로 배열했을 때 한 가운데에 해당하는 소득)의 절반이 안 되는 액수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노인수가 지난해에 전체 인구의 11%인 536만명이었으므로 240만명 정도가 절대빈곤층인 셈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다른 나라 노인들과는 달리 갖은 고생을 한 세대다. 그들은 6·25전쟁을 겪고 폐허 속에서 자신의 사생활도 돌보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해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데 온 몸으로 기여한 산업화 세대다.

그러나 이들은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막상 자신들의 노후는 대비하지 못해 다수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국가가 이들을 극진히 대우해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것이 제대로 안된 탓으로 노인의 자살률도 OECD국가 가운데 최고다. 지난해 7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160명으로, 10년 전의 23명에 비해 7배 이상 증가했다. 증가율도 세계 최고라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70세 이상 혼자 사는 독거노인 가구가 지난해에 79만여 가구로, 지난 2005년의 54만여 가구에서 5년 새 45%나 늘어났다는 통계가 있다. 가족 없이 노인 혼자 사니까 세상을 뜰 때에도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이른바 ‘고독사’가 흔한 일이 됐다. 이제 한국도 바야흐로 ‘홀로 살다 홀로 죽는 사회’가 돼가는 것이 아닌가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날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수집하던 80세 가까운 노인이 이런 독거노인이 아닌가 생각하니 더욱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필자는 이런 나의 판단이 잘못된 추측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노인들 가운데는 자식이 있지만 자식에게 신세 지기가 싫어 자기 용돈은 스스로 벌겠다는 부지런한 노인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 노인의 경우에도 용돈은 자기가 마련한다는 생활신조에서 새벽 산보 삼아 지하철을 타고 신문지를 수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설사 그에게 자식이 없다고 하더라고 방안에 누워서 국가나 자식 원망을 하지 않고 적은 액수지만 스스로 용돈을 벌겠다고 나섰다면 그 역시 존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보건복지부 노인복지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노후 생활비 마련 방법과 관련, 자녀 및 가족에 의존한다는 응답이 1994년 28.6%에서 2008년에는 11.8%로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지하철에서 목격한 노인은 측은하게 생각할 대상이 아니라 아주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최근 정부는 노인층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지급자격을 최저생계비의 130% 소득자에서 185% 소득자까지 완화하기로 했는데 이것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앞으로 기준을 더욱 완화해서 가난한 노인들을 더 많이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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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2011-09-15 10:52:55
평소에 늘 마음한구석이 어두었는데 이글을 보니 환희심이 나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