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기 인생을 준비하는 중장년층 ‘구슬땀’
제3기 인생을 준비하는 중장년층 ‘구슬땀’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9.20 11:00
  • 호수 2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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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제3기 인생대학을 찾아서

▲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가 9월 1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61동 320호 강당에서 ‘제3기 인생대학’ 강좌에서 ‘평생교육과 잠재능력 개발’이라는 주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임근재 기자

9월 15일 늦은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61동 320호 강당. 계단식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어림잡아 100여명.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의 ‘평생교육과 잠재능력 개발’이라는 강의가 시작되자 학생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강사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지런히 메모한다. 딴청을 부리거나 조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강의실은 여느 강의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60세 이후 삶의 목표는 ‘행복’이어야 합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는 건강과 보람 그리고 의미입니다.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좋아하고,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가 되면 이 강의실에는 20대 대학생이 아닌, 40~50대 이상 중장년층으로 붐빈다. 이들은 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이 주최하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주관하는 ‘제3기 인생대학’의 3기 수강생들이다.

서울대학교가 지난 2009년부터 40~50대 일반인을 대상으로 중년기 이후의 노화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노후를 새롭게 설계해 건강하고 보람찬 ‘제3기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강좌를 마련했다. 여기서 말하는 ‘제3기 인생’은 퇴직 이후 또는 40대 이후 건강하게 지내는 시기를 말한다. 이 강좌는 지금까지 매주 한 차례씩 강의를 진행, 1기 77명과 2기 88명 등 165명이 수료했다. 올해는 신입생과 복학생 모두 108명이 강의에 참여하고 있다. 강좌는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입학 경쟁률이 치열해지고 있다.

▲30개 강좌·특강…소모임도 ‘활발’
이날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평생교육과 잠재능력 개발’이란 주제로 평생교육의 중요성과 60세 이후에 대한 준비, 잠재능력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강의했다. 지난 9월 1일 입학식을 치른 뒤 2번째 강좌다.

'제3기 인생대학'은 서울대 교수진을 중심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중년기 이후 자신의 적성 발견을 비롯해 심리적 변화, 자원봉사 설계, 사회적 관계, 주거환경 계획, 자산관리 등 노후설계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강의들로 구성됐다.

강좌는 1년 동안 2학기로 나눠 진행되며, 수업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씩 총 26개 강좌로 구성되고, 네 차례의 특강이 마련된다.

'제3기 인생대학'은 단순히 출석해 강의를 듣는데 그치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형성해 수업을 이수한 사람들끼리 중년기에 겪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토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등 활발한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 수강생끼리 친목도모는 물론,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해 1개 그룹 25명씩 총 4개 그룹으로 나눠 운영한다. 운동회나 소풍, 동아리, 소모임 등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과정을 수료한 후에도 수강생들은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간다.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모두 수료증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학교가 제시하는 수료조건은 생각보다 깐깐하다. 매 학기 출석 80% 이상, 두 학기의 과제물 80% 이상을 제출해야 서울대학교 총장 명의의 수료증이 수여된다. 즉 학기당 정규강좌 13과목과 특강 2과목 등 총 15개 강좌 중 80%에 해당하는 12강좌 이상을 출석해야 한다는 것. 또 매주 강의마다 과제물도 주어진다. 하지만 출석과 과제가 60~80% 미만인 학생에게는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명의의 수료증이 교부된다.

▲막막한 노후설계 해소 기대 높아
수강생들의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주부, 공무원, 교사, 은행원, 방송국 직원, 보석 디자이너, 회사원, 사업가 등 예비 퇴직자는 물론 이미 퇴직한 이들도 적잖다. 이처럼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쌓은 이들이지만 은퇴 이후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설계하고 싶은 마음만은 똑같다.

38년 동안 농협중앙회에서 근무한 뒤 지난 2월 퇴직 후 현재 농협중앙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는 명현근(58)씨는 “그동안 노후설계를 위해 책도 뒤져보고 강의도 들어봤지만 대부분 주먹구구식의 수박 겉핥기 수준에 그쳤다”며 “그러던 차에 제3기 인생대학 과정을 수료한 지인의 소개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서 스타급 전문 강사와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해 체계적인 노후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데다 다양한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현직 초등학교 교장인 박준호(55)씨도 “저명한 교수님들의 수업을 통해 제3기 인생에 대한 개념 정립은 물론 구체적인 노후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진다”며 “특히 다양한 분야 출신의 동료들과 1년 동안 함께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설렌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막연했던 은퇴 후 삶을 본격적으로 설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내년 6월 퇴직은 앞두고 있는 최덕희(59·여)씨는 “그동안 정신없이 일하느라 노후를 구체적으로 계획할 여유가 없었다”며 “퇴직이 얼마 남지 않다보니 은퇴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창수(58·여)씨는 “스포츠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다 올 중반 문을 닫고 무엇을 해야 하나 막막하던 중 신문에서 제3기 인생대학 강좌 소식을 듣고 ‘이거다 싶어’ 원서를 접수했다”며 “특히 그동안 경제활동을 하느라 챙기지 못했던 건강과 여가활동 분야의 강의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은행원인 정만수(58)씨는 “퇴직 2년을 남겨 두고 어떻게 하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해왔다”며 “자원봉사 설계 등 좋은 강좌들이 많아 앞으로 노후 설계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새로운 노인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축이 되길”
‘제3기 인생대학’ 한경혜 주임교수 

고령화 시대를 맞아 예비노년층인 40~50대 중장년층의 노후준비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우리나라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중장년층의 노후설계를 돕는 강좌를 마련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서울대의 선도적 정책이 여타 대학에도 영향을 미쳐 고령화 극복을 위한 새로운 교육체계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마련한 ‘제3기 인생대학’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한경혜 교수(아동가족학과)를 만나 중장년층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한경혜 교수는 현재 서울대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장이자 한국노년학회 회장 등 노인복지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Q. 제3기 인생이란.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라스렛(Peter Laslett)은 인생을 4단계로 나눴다. 태어나 교육과 훈련을 받는 기간을 제1기 인생, 취업과 결혼 등 가정과 사회를 책임지는 기간을 제2기 인생, 은퇴 후 건강하게 생활하는 기간을 제3기 인생, 건강이 나빠져 남에게 의존하는 동안을 제4기 인생이라고 봤다. 제3기 인생은 노년기의 성장과 성숙의 시기다. 즉, 퇴직 이후 또는 40대 이후 건강하게 지내는 시기를 말한다.

Q. 선진국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은.
선진국에서는 주로 퇴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3기 인생대학'을 개설한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에서는 '제3기 인생대학'을 이보다 빠른 중년기부터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40~50대를 주요 대상으로 했다. 노년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 40대 이후 중장년층의 재교육을 통한 이전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노후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Q. 중장년층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노인 문제는 노년기에 발생하는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노인문제는 전 생애에 걸쳐 발생한다. 막상 노년이 닥쳤을 때 대처하는 것보다 미리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본격적으로 노년기에 진입하기 전인 현 40~50대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인구는 712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노인사회가 달라진다. 중장년층이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Q. 제3기 인생대학의 목표는.
제3기 인생설계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선진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꼽을 수 있다. 영국은 퇴직자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강사가 되기도 한다. 상호작용의 방식을 취하면서 서로를 가르친다. 이를 테면, 사진작가 출신인 퇴직자가 일반 노인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고, 철학자 출신 퇴직자는 철학을 강의하는 형태다. 반면 프랑스는 전문 강사가 집단의 노년층에게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제3기 인생대학'은 프랑스 교육방식에 가깝다. 교육방식에 있어 궁극적인 목표는 점진적으로 인프라가 구축돼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서로를 가르칠 수 있는 영국의 교육방식으로 나아가는 가는 것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제3기 인생대학’이 새로운 노인문화를 선도하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강생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면서 역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수강생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사로 나설 수 있는 자생적인 모임을 만들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그렇게 된다면 서울대학교 ‘제3기 인생대학’이 새로운 노인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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