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살아야 국가 미래도 밝아진다“
"어린이문학 살아야 국가 미래도 밝아진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9.28 18:11
  • 호수 2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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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화진흥회 이영호(76) 회장

“지금 이 땅의 아이들은 병든 사회구조가 만들어 놓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입시’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꿈과 희망을 품어야 할 나이에 ‘명문대 입시’를 위한 정답만을 쫓고 있다. 어린이들의 꿈과 감성을 되살리려면 순수성을 가진 어린이문학이 살아나야 한다.”

한국아동문학가협회장과 어린이문화진흥회장을 겸임하며 평생을 아동문학 발전과 부흥을 위해 달려 온 집념의 문학가 이영호(76) 회장은 어린이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 회장은 국내 유일의 어린이 종합문화단체였던 (사)어린이문화진흥회의 태동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그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 작가, 방송인 이금희 씨 등을 문인으로 이끈 실력있는 작가였지만 어린이문화진흥회 창립을 준비하면서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직장도 모두 포기했다. 아동문학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가치있는 투자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어린이 문학의 연구와 보급은 신념있는 개인의 헌신에 의지하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비평가나 연구원도 없었고, 어린이문학 전공학과도 없었다”며 창립 당시의 열악했던 아동문학의 현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만나는 좋은 문학작품은 교육적 측면을 넘어 인격을 형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어린 시절 좋은 문학작품을 만나는 것은 새싹에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다”고 아동문학의 역할과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원대한 꿈을 품고 1986년 첫 발을 내딛게 된 ‘어린이문화진흥회’는 국내 최초로 어린이 문학·음악·미술·출판을 총괄하는 어린이 문화예술인 종합단체였다. 어린이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아동문학의 연구, 비평, 출판 등을 담당하는 전문성을 지닌 공적 기구였다.

진흥회가 정식으로 출범하기까지 회원모집과 기금마련 등 그의 고군분투는 계속됐다. 아동문학인, 동요작곡가, 일러스트레이터(그램책 작가) 등을 찾아다니며 뜻을 함께 할 회원을 모았고, 1년여 동안 회원모집과 자금 모금 운동을 발로 뛰어가며 일궈나갔다. 또 수차례 거절을 당하면서도 대기업 총수들을 찾아가 ‘아동문학 발전 지원금’을 요청했다. 그의 열정을 높이 평가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989년부터 어린이문화진흥회에 매년 1억여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한 사람의 열정이 빚어낸 기적과도 같은 성과였다.

이를 계기로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는 어린이 문화예술인 단체의 구심체로서 다양한 행사와 지원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양서(良書)를 선정해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정기간행물과 어린이 잡지를 제작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동시화전, 동요발표회, 어린이문화 종합세미나, 글짓기·동화구연대회 등을 개최했다. 또 어린이문화발전에 기여한 숨은 공로자를 발굴해 시상하는 ‘어린이문화대상’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굴지의 대기업으로 여겼던 대우그룹이 IMF 금융위기 이후 해체의 비운을 맞게 되면서 진흥회는 기부금 중단이라는 좌절의 늪에 빠져들었다. 10년 동안 시행해 온 대부분의 사업이 중단됐고, 사무실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야만 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어린이잡지를 발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구책으로 자립기반 조성을 위한 수익사업도 벌였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2005년 후임 회장을 선출하면서 단체의 성격을 ‘어린이문화 예술인 단체’에서 ‘어린이를 사랑하는 모든 어른들의 단체’로 바꾸며 재도약을 시도했다. 회원수가 600여명까지 늘어나며 회생의 기미를 보이는 듯 했지만 기업들의 외면과 차기 회장의 부실운영이 겹치면서 진흥회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를 맞게 됐다.

그의 땀과 열정이 담겨 있던 어린이문화진흥회가 창립 25년 만에 고사할 상황에 처하자 이영호 회장은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7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투자 기업을 찾아다니며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려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 문학발전을 위해 나서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진흥회를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린이가 미래의 주역이라고 말은 하지만, 당장의 성과가 나지 않는 어린이 사업에는 어떤 기업도 지원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학교에서도 컴퓨터, 영어, 수학 공부에만 몰두할 뿐 아이들의 정서교육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부모나 국가도 미래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이 없는 게 안타깝다. 먹고살기는 좋아졌는지 몰라도 순수한 아이들이 꿈 대신 현실을 쫓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시울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린이문학 작품은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감동을 전한다’고 말하는 이영호 회장. 그는 어린이와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신의 진실성이 뜻있는 후원자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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