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죽는 福’을 예비하는 일
‘편안하게 죽는 福’을 예비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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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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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사람이 자기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을 ‘고종명(告終命)’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옛날부터 인간의 오복(五福) 중 하나이다.

 

지난 1986년에 타계한 유명한 사학자 김성식(金成植) 고려대 명예교수는 원고를 쓰던 중 잠시 쉬려고 자리에 누었다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향년 78세였으므로 당시 기준으로는 장수와 고종명이라는 오복 중 두 가지 복을 함께 누린 셈이다. 

 

최근의 예로는 지난 1월 별세한 민관식(閔寬植)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경우다. 그 역시 세상을 뜬 바로 전날 테니스를 치고 자택에서 헬스운동까지 한 다음 저녁에 잠을 자던 중 운명했다. 아침에 깨지 않아서 가족이 방에 들어가 보니 숨을 거둔 다음이라 한다. 그는 88세에 타계했으므로 그 역시 오복 중 두 가지를 모두 누렸다고 할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지난 20년 사이에 8.4년이나 늘어났고 연장속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년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78.2세로 미국보다 길며 유럽 국가들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민들이 옛날보다 오래 살게 된 사실은 분명히 축복할 일이지만, 문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앞에 예를 든 두 분의 경우처럼 건강하게 오래 살고 죽을 때 편안하게 숨을 거둘 수 있느냐는 데 있다.

 

노인이 병석에서 신음하면서 생명을 연장한다면 아무리 장수를 하더라도 가족들에게는 물론이고 본인에게도 축복할 일이 못된다. 병든 노인은 자식에게 많은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준다.

 

과거에는 노부모를 모시는 것이 자식의 당연한 의무였지만 지금은 세상이 크게 변했다. 아마도 지금의 60, 70대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의 봉양을 받지 못하는(또는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 첫 세대가 될지 모른다.

 

아시아에서 우리보다 평균수명이 긴 나라는 일본 이외에 홍콩(82.2세), 이스라엘(80.6세), 싱가포르(79.4세) 등 3개국뿐인데,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는 부모를 양로원에 모셔 놓고 자식들이 찾아가지 않는다 해서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은평구에 사는 어느 40대의 가장이 지난 구정 때 부인이 친정에는 가면서 시댁에는 안 가려 한다 해서 부인에게 폭행을 가했다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 부인은 그냥 남편에게 폭행만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남편을 폭행해서 함께 입건되었다 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서양처럼 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사는 풍습이 사라지게 되면 늙은 부모는 따로 살다가 결국에는 양로원이나 호스피스의 신세를 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게다가 머지않아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다고 해도 부부가 모두 장수한다는 보장은 없다.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뜨면 남은 쪽은 과부나 홀아비가 되어 독거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4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기준으로 사람들이 평균수명(남자 72.8세, 여자 81.1세)까지 살 경우 각종 암에 걸릴 확률이 남자 29%, 여자 20.2%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노인이 걸려 죽게 되는 병은 암 이외도 얼마든지 많다. 결국 노인의 많은 수가 병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령화사회에서 각종 노인문제가 제기되지만 노인이 고통스럽지 않게 생을 마감하는 일은 중요하다.

 

한국은 유엔이 정한 기준대로 하면 2000년에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로 들어섰으며 지금부터 12년 후인 2018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aged society)’가 되고, 그보다 6년 후인 2026에는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제는 국민들이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도 평안하고 깨끗하게 죽는 방법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연구해야 할 시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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