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지도자들] 김수환 추기경 ⑤
[장수하는 한국의 지도자들] 김수환 추기경 ⑤
  • 관리자
  • 승인 2006.11.1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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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항쟁 때 명동성당 경찰진입 막으며 민주화 꽃피워

가톨릭 신자인 소설가 박완서 씨는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나는 평소 추기경님을 뵐 때마다 어릴 적 할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며, “가까이 다가가기 싫은 것 같으면서도 좋고, 어쩐지 우쭐해지는 느낌과 큰 빽이 있는 사람과 가까이 한 것 같은 든든하고 훈훈한 느낌이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하다”고 했다.

 

젊은 독자를 배려한 작가의 감수성 짙은 추천사일 수도 있으나 김 추기경의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여서 이름이 젊은 듯하지만 이 작가도 이제 김 추기경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다.

  카톨릭 회관 하늘.땅.물.벗 행사에서 과자를 들고 있다(2001).

 

그런 작가가 이런 든든함을 느꼈을 때 억압 받으며 억울한 일 당하는 기층 민중은 어떠했을까. 김 추기경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만도 든든한 ‘빽’이 됐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철거민이나 뿌리 뽑힌 농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던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찾아 살피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많이 있다.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 사회운동가, 인기스타 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모두가 아름다운 일이지만 김 추기경과 같이 진심을 다하고, 곁을 내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김 추기경을 만나면 더 큰 위안이 되고, 아직도 세상을 살아볼만 하다는 희망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눈빛, 부드러운 손길 등 김 추기경 만의 특별한 친화력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분에서 우러나오는 존귀함의 힘은 아닐 것이다.

 

가까이 가기 싫은 것 같으면서도 좋고 든든하고 훈훈

우리와 마을을 구하기 위해 돌아온 우리 마을 출신의 영웅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큰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닐까. 김 추기경의 회고록이나, 수많은 언론보도 기록사진들을 보면 어색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먼 데서 귀환한 영웅처럼 사람들이 편안하게 곁을 내주고 진심어린 대화를 하고 있다. 마치 물처럼 자연스럽게 섞여 하나가 된 듯하다. 이것은 결코 이상한 얘기가 아니다. 김 추기경도 바로 그곳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톨릭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200년에 이른다. 유교적 전통사회의 가치관과 달라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 밝혀져 불순분자라는 명목으로 처형된 신자가 부지기수였다. 김수환 추기경의 할아버지도 그 때 순교했다.

 

할머니도 처형될 처지였으나 임신부를 처형하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구사일생 살아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의 부친은 순교자의 아들로서 옹기장수를 하며 생업을 꾸려갔다. 김 추기경은 옹기장사의 아들로 자랐다.

 

먼 곳으로 옹기를 팔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일을 김 추기경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전도활동 수단으로 옹기장사를 했고, 김 추기경을 천하에 드물게 귀히 키웠다 하여도 어려서의 정서적인 바탕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비슷하다.

 

  서울지하철 노조파업 농성장 방문(1994).

 

그래서 도시빈민이나 착취당하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할 때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더욱 친근감을 느끼고, 더 많은 위로를 받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험한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귀족이 아닌 목수 집안에서 성장하였다는 사실이 보통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동료의식을 느끼게 하는가.


김 추기경의 이런 종교지도자로서의 정신은 사회가 극단적인 대결 국면으로 치달을 때 파국을 피하고 아름다운 결론에 이르게 하는 데도 영향을 준다. 1987년 6.10 민주항쟁 시기에 보여준 김 추기경의 단호한 처신과 중재자로서의 입장은 돌아볼수록 아름답다.

 

6.10항쟁은 가톨릭,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을 말하지 않고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1987년 6월 10일, 도심에서 시위를 하던 일단의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농성투쟁을 하면서 비로소 사실상 완결됐기 때문이다.

 

“학생들 체포하려면 나와 신부, 수녀들 밟고 가시오”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 의하면, “명동성당으로 진입한 학생을 비롯한 시위대에게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며 각목과 화염병을 버리라고 했다”며, “다행스럽게도 내 말에 시위대가 순순히 따라 주었다. 나와 명동성당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학생들을 보호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때였다”라고 했다.

 

김 추기경의 그런 뜻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함세웅 신부의 모습을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김 추기경의 비서 신부였던 함세웅 신부는 시위대들이 투석하기 좋은 위치에 돌멩이와 화염병이 담긴 바구니를 가져다 놓으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끙끙거리며 “폭력은 안 돼요”라며 바구니를 끌어다가 치웠다.

 

그러면 시위대는 다시 그것을 가져다 놓았고 함 신부는 시위대 앞을 막아서면서 못하게 했다.

그런 원칙이 섰기 때문에 김 추기경은 정권에도 강력하게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제가 하는 말을 당국에 전해주십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겨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 나오는 일화다. 이 때의 결정은 김수환 추기경 개인으로서나, 한국 가톨릭 전체로 보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전두환 정권 비사나 보도를 보면 1987년 6.10항쟁 기간 동안 군대를 동원하여 “싹 쓸어버리자”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종교라 할지라도 탄압할 수 있던 권위주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시대에 단호하게 막아선 한국 가톨릭, 김 추기경의 모험의 대가는 수치화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결국 그해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의 ‘6.29 선언’이 나왔고, 온 국민이 감동적인 승리감을 느꼈다.

 

  연세대생 이한열군 빈소 찾은 김 추기경(1987).

 

피를 흘리지 않고도 이렇게 민주주의가 되는구나! 당시 국민이 느낀 카타르시스는 온몸에서 엔도르핀을 샘솟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김 추기경이 오죽했겠는가. 그 때의 희열만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고 장수할 만하다.


그것은 김수환 추기경과 가톨릭, 그리고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경찰을 명동성당에 진입시키지 않은 당시 정권 최고 상층부도 결과적으로 이겼다.

 

체육관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로 돼 있던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최고위원이 게임에서 진 것 같지만,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 차원의 도덕성까지 확보했다. 일부에서 ‘6.29’를 이른바 ‘속이구’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으나 민주주의 역사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면이 있다.

 

하루 2갑 피우던 담배도 모질게 마음먹고 끊고 담소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혁명적 상황으로 치닫지 않고 민주사회로 연착륙할 수 있었지 않았는가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우연히 되는 것도 아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뜻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파국을 막고, 대화를 유도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역사가 축적되어 달성된다.


어떻게 김수환 추기경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우리와 가까운 이웃, 군중들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옹기장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 정서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 추기경은 참으로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많이 남기기도 했다.

 

소설가 박완서 씨는 회고록 추천사에서 “그래서 그분은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구름 위에 떠서 지당하고 거룩한 소리만 하는 성자가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좋으면 좋다고 열렬히 좋아하고, 하루에 2갑을 피우던 담배를 모질게 마음먹고 끊으면서 가까운 신부들과 농담하는 모습을 보면 이웃집 누군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호에서 보겠지만, 한 달 동안 피정을 하고 난 뒤, 영적인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우리 시대의 예수는 아니지만 신심이 두터운 겸손한 ‘성자’임을 알게 해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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