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젊음은 나이 아닌 생각 차이서 온다”
“늙고 젊음은 나이 아닌 생각 차이서 온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10.14 13:35
  • 호수 2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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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책임지는 시니어리더] 서울노인영화제 대상 수상 이현명(70) 감독

“평생을 병마와 싸웠던 내게 영화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대상을 수상한 사실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

제4회 서울노인영화제가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 서대문 어르신 전용극장인 청춘극장에서 열렸다. ‘갈증’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대상을 거머쥔 이현명(70·여·사진) 감독은 남다른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 감독은 이번 서울노인영화제 공모전 출품작 124편 가운데 대상을 받았으면서도 차분하고 속 깊은 소감을 내비쳤다.

수상의 기쁨보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할 기회를 얻은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릴 적부터 허약 체질이었던 그는 잦은 병치레와 사고로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누리지 못했던 것.

그는 “종합병원이라 불릴 만큼 평생 질병을 안고 살았다”며 “30대에 연탄가스를 마시고 1년 가까이 식물인간이 돼 누워 있었고, 3년 전에는 내시경 의료사고로 식도 손상과 골다공증에도 시달렸다”고 회상했다.

특히 연탄가스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사고 후 1년 동안 집에 누워만 있었고, 10년 간 외출도 하지 못했다. 원인모를 무기력감과 체력저하로 30년 넘게 평범한 일상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 그에게 6mm 캠코더 렌즈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문이었다. 작품을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큰 활력이 됐다. 그래서 출연 배우를 섭외해 일일이 찾아가 촬영하는 일도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면서 내게 주어진 순간순간이 매우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몸이 약해 못하는 일들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몸이 약하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기회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화제작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픈 몸 때문에 팀을 이뤄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시나리오부터 연출, 섭외, 촬영, 편집, 자막, 내레이션(해설)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진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20분30초의 단편 영화를 만드는데 1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영화에 넣을 인터뷰 촬영을 진행하던 중 주차장 철제문이 머리 위로 떨어져 3개월간 영화제작을 중단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하지만 치료기간이 길어질수록 작품을 완성하고 싶은 열망은 더욱 커졌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지 그의 영화에는 깊은 여운과 감동이 담겨 있었다.

이 감독은 작품을 위해 유치원 아이부터 노인, 종교인, 문인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인간은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그는 삶과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풀어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시적 내레이션과 철학적 테마, 다양한 영화적 접근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마치 한편의 영상소설을 보는 듯 했다.

“죽음의 문턱을 수차례 넘나들면서 비로소 일흔의 나이까지 와서 진짜 인생을 살게 됐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은 나이라는 한계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다. 순간순간을 즐기며 가능성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고 싶다. 하루하루가 내겐 가장 소중한 순간이다. 그 하루가 연결돼 미래가 되는 것 아닌가(웃음).”

영화와 함께 자신의 진짜 인생을 되찾았다는 이현명 감독. 그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건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그 전까지 이 감독은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30년 전, 사고로 연탄가스를 마신 후 30년 넘게 원인모를 병과 싸웠던 그의 인생이 달라진 건 우연한 기회에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미디어수업을 듣고 부터다. 손자손녀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싶어 듣기 시작한 영상제작 수업이 지금의 대상 수상작 감독을 만든 것이다. 그가 영화를 시작한 건 우연에 가깝다. 아니,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아픔과 시련을 겪으며 지나온 시간이 가장 소중한 삶의 재산”이라며 “남들이 모르는 경험 하나하나가 영화의 스토리가 되고 뼈대가 된다”고 말했다.

그를 힘들 게 했던 건 아픈 몸이 아니라 ‘노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었다. 이 감독은 “노인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위축시키고 가능성을 제한한다”며 “젊고 늙음은 나이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에서 온다. 나이가 젊어도 열정이 없고 몸이 아프면 노인이고, 나이가 많아도 열정으로 도전하며 살면 젊은이”라고 강조했다. 70세 젊은 감독, 이현명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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