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적극적인 노년의 권리
[금요칼럼]적극적인 노년의 권리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10.25 11:34
  • 호수 2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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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여성인권, 장애인인권 등에 비해 뒤늦게 조명되는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효를 중시하고 경로사상이 깊긴 하지만 나이의 벽이 커서인지 현실에서는 노년층이 따돌림을 받는다는 느낌마저 종종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노인 이미지 자체가 사회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활동적이기보다 관조적인 계층이라는 것도 한 몫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노인이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는 잊은 채 눈에 띄게 침해받는 권리에 대해서만 지적하곤 한다. 하지만 신체상의 억압 등 물리적인 침해뿐만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 또한 노인인권을 침해하는 요소다.

특히 우리나라 노년층은 불편함을 스스로 감내하며 세태에 따르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자신 탓으로 돌리는 등 권리 주장에 소극적인 것도 사실이다. 노년층의 당연한 권리를 국민 입장에서 대변해야 할 공익언론들만 봐도 어르신들을 위한 환경 개선을 주장하기보다 젊은이들 대열에 뛰어들어 도전하는 어르신들을 칭송하는 게 보통이다.

나이가 든 노인이라는 것만으로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시선은 분명한 인권침해다. 게다가 그 능력유무를 노동능력에 근거해 해석하는 게 보통인데 청장년 중심, 즉 노동능력자 중심의 사회시스템은 결국 사회전반에서 노인을 소외시키고 결국 노인을 ‘하지 못하는 존재’ ‘할 수 없는 존재’로 도식화한다.

우리 사회가 ‘복지’적 마인드보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굴러가고 있다는 것은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현상이다. 온라인뱅킹만 해도 그렇다. 사용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겠지만, 노년층은커녕 장년층도 사용하기 쉽지 않은 환경인 것은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 장애유무나 연령, 국적, 성별 등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의 평등한 편의를 지향하는 디자인)을 적절히 고민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게다가 ‘경제활동인구’에서 벗어나 있는 노년층은 더욱 큰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인들은 그런 서비스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의 중심에는 ‘사회적 가치관’이 자리해 있다. 어르신들은 보통 공식 석상에서 ‘노인티’를 안 내려고 애쓰는데, 이는 노인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인 필자는 제32대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엘리노어 루스벨트의 말을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으로 시작하는 ‘사회복지사 선서’와도 일맥상통한다.

필자는 21세기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은 ‘사회복지’에 있다고 단언한다. 지금껏 황금만능주의에 젖어 단지 경제활동능력에 따라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판단했다면, 이제는 국가의 사회적 책임부터 돌아봐야 할 때다.

문제는 노인 인권에 대한 당연성을 실감하는 이들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어르신들이라는 데에 있다. 즉,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노인인권 침해를 없애고 정상화하려면 노년층 스스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년층이 책임을 전제한 권리에 눈을 뜨고 스스로의 행복을 조직적으로 주장할 때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또 노인인구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수년 안에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 예측되는 시점이므로, 국가적으로도 노인 인권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준비해야 한다. 헌법 총강의 마지막 조항 9조는 국가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형의 문화뿐만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몸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무형의 문화들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견실하게 다져온 노년층에 대해 국가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덧붙여, ‘경제활동능력’에 따라 현재 어떤 형태로든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이 예비노인임을 잊어선 안 된다. 예비노인임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작은 일일지 모르나, 그것 역시 국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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