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저출산·고령화 사회와 100세 시대
[금요칼럼] 저출산·고령화 사회와 100세 시대
  • 관리자
  • 승인 2011.11.11 17:47
  • 호수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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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란 한서대학교 노인복지학과 교수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올해 들어 갑자기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있던 ‘저출산·고령화 사회’라는 말 대신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이제 인생 100세를 기준으로 사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사실 인생이 100세를 바라보게 된 것은 올해 들어 갑자기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무슨 새로운 변화라도 시작된 듯이 대통령의 신년사 이후 정부의 각 부처와 언론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100세 시대’를 외쳐대고 있다.

‘100세 시대’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와 다른 사회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 두 가지 용어는 모두 의학기술의 발달과 경제성장으로 인해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게 된 현 사회를 진단하는 표현들이다.

‘저출산·고령화’라고 하면 낮은 출산율로 인해 새로운 인구의 유입은 줄어들고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전체인구 중에서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해 가는 현상을 말한다. ‘100세 시대’ 역시 의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평균수명이 길어져 급기야 100세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고령 인구층이 두터워짐을 의미한다. 결국 이 두 가지 표현 모두 현 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 중 고령인구의 수나 상대적인 비율 혹은 수명과 삶의 시간과 같이 수량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두 가지 표현 사이에 약간의 차이도 존재하는데 ‘저출산·고령화’는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 사회의 특징을 기술하고 있는 반면, ‘100세 시대’는 같은 현상을 좀 더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측면으로 끌어내려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저출산·고령화’는 사회 전반의 평균적인 출산율의 저하와 그로 인한 전체 사회 내에서의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에 초점을 둔 표현인 반면 ‘100세 시대’는 개개인의 수명이 연장됐다고 하는 좀 더 개인적인 측면에 초점을 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저출산·고령화’가 됐건 ‘100세 시대’가 됐건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 각 부처들은 마치 새로운 큰 변화라도 나타난 듯이 기존의 ‘저출산·고령화’ 대책 옆에 또다시 저마다의 별로 새로울 것 없는 ‘100세 시대’ 대책들을 늘어놓고 있다. 물론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출산’에 가려져 평가 절하돼 왔던 ‘고령화’의 중요성이 이를 계기로 크게 부각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노년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제한된 인적·물적 자원을 한데 모아 앞으로의 사회변화에 대응해도 부족할 판에, 비슷한 대책들을 ‘저출산·고령화’와 ‘100세’에 이리저리 분산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한 일간지가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100세 사회 준비 주요 사업의 2012년 예산안’을 분석한 기사를 게재했다. 내용인 즉, 100세 예산을 검토해보니 관련 부처 간 중복이 많고 ‘출산’과 ‘양육’ 등 ‘100세 사회’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사업까지 끼워 넣고 있으며, 그 원인은 정책을 조정할 ‘컨트롤타워’의 부재에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지적은 부분적으로는 옳고 또 부분적으로는 잘못됐다.

부처 간에 사전에 제대로 조율이 되지 않은 채로 갑작스럽게 부처들마다 100세 대책을 마련하다 보니 정책은 물론이고 사업, 심지어는 부처별로 발주한 연구과제들 간에도 상당한 중복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미 범부처적인 ‘저출산·고령사회정책위원회’가 가동 중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범부처로 ‘100세 시대 포럼’을 다시 조직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위 언론의 지적이 부분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한 이유는 부처 간 중복뿐만 아니라 기존 정책, 즉 고령화정책과의 중복도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간파하지 못했다는 점과 언론에서조차 ‘고령화’와 ‘100세’를 별개의 현상으로 오해했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출산’과 ‘양육’ 등 ‘100세 사회’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사업이 100세 예산에 끼워 넣어 있다는 지적은 ‘고령화’와 ‘100세’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령화’가 됐건 ‘100세’가 됐건 만약에 우리에게 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고, 그 대응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나 인력이 충분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대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여기저기서 중복이건 아니건 많은 부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나설수록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허락된 시간도, 더군다나 사용가능한 자원도 충분하지 않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도 우왕좌왕할 여유도 없다. ‘고령화’나 ‘100세’는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바로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사회’건 ‘100세 시대’건,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됐건 새로운 용어 만들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하루속히 온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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