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존재역할(存在役割)
노인의 존재역할(存在役割)
  • super
  • 승인 2006.08.24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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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雪景)이 아름다운 산골마을. 칠순노모는 버릇처럼 “겨울이 오면 곧 저산으로 가 눈을 맞을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어느날 아들은 끝내 흉년을 견디지 못하고 노모를 업고 산을 오른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말 것, 뒤돌아보지 말 것, 아무도 모르게 이른 새벽에 떠날 것’ 노모는 지게에 업혀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행여 아들이 다칠까 걱정하고 아들이 돌아가는 길을 잃지 않도록 나뭇잎을 흘려 놓는다.’


먹고 살기 어려워 노인을 산에 버린다는 고려장(高麗葬)의 풍습은 영화나 전설로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고려장의 장소가 산이었지만 요즘에는 치매환자 요양시설이나, 효도관광객으로 붐비는 명승지가 늙은 부모를 내다 버리는 장소로 악용된다.


오늘의 부부들은 맞벌이를 하면서 애를 키워야 하고 독신과 이혼이 증가하며 핵가족화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다.

 

각박한 현실을 감내하느라 내 코가 석자다. 그런 가운데 노인들은 길가에 버려지고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매를 맞기도 한다.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절대 빈곤의 비참한 시대가 지나고 복지사회를 표방하는 풍요의 시대에 ‘노인 버리기’가 사회문제를 떠오르고 ‘노인학대’가 다반사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조사」 자료는 한국의 고령화 진행 속도가 세계 최고이며 정부의 예측마저 훌쩍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고령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의료기술의 발달, 식생활과 주거환경의 선진화에 따른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장수는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나이 드신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고령화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최대문제로 대두되고, 노인들을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노인배제 이데올로기가 널리 펴져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령화가 너무 짧은 기간에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그에 따른 적절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우리나라의 제도나 사회구조, 복지재원은 턱없이 미흡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2005년도 노인복지관련 예산은 3301억원으로 정부예산 대비 0.25%에 불과하다. 이것은 2004년의 0.42%에 비해 오히려 0.17%가 줄어든 셈이다. 노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비해 노인복지 예산의 증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문제를 제도나 돈만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노인관(老人觀)이다. 언제부터인가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敬老)사상 보다 늙은이를 홀대하는 경로(輕老)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가정에서 노인의 위상은 애완견보다도 하위에 놓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정도다. 노인복지정책을 무게 있게 다뤄야 할 여당의 중진이 “노인은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투표 할 필요 없이 집에서 쉬어도 된다”고 대중 앞에서 공언하는 세상이다. 이런 사고의 근저에는 노인을 성가신 존재로 보는 경로(輕老)의 시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가정과 사회의 중심가치로 자리해오던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규범은 실종됐다.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있어야 할 차례가 무너졌다.

 

집안에서도 70세 할아버지나 10살의 초등학생이나 다같이 평등한 한표가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등학생의 한표가 더 힘을 쓰는 장유의 역전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정의 한 단면이다.


오늘의 한국을 구축하느라 평생을 헌신한 노인들, 자식농사를 위해 노후대책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그들에게 돌아온 보상 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한 사회의 역동성이 앞을 보고 달리는 젊은 힘에서 나온다면 그 사회의 성숙성은 뒤를 돌아보고 사회적 경험을 중시하는 여유에서 생긴다.


낙엽이 비료가 되어 토양을 살찌우듯 노인에게도 중요한 존재역할(存在役割)이 있다. 아무런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뭔가 달라고 울기만하는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모성애를 키우고, 아버지로 하여금 일에 정진케 하는 결의를 다지게 하듯, 아무 일을 안해도 가족들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이 존재역할이다. 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상의 묘지조차도 귀중한 존재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단지 하나의 흙무덤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대대로 이어지는 선조공경의 상징물로, 살아있는 우리들과 선대를 연결하는 정신적 고리로서 역할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아기의 존재역할→청·장년기의 행동역할→노년기 존재역할의 인생역정을 밟게 돼 있다. 늙는다는 것은 다시 어린이와 같은 존재로 돌아간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한다. 노인은 예나 지금이나 집안의 어른이고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후대로 전승하는 사회의 존장으로 마땅히 대접받아야 한다.


현대가족제도에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각종 범죄와 청소년의 탈선도 노인의 역할과 기능이 약화되고 소멸된 데서 찾을 수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곧 내일의 노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닥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자녀들 앞에서 노부모를 바르게 섬기는 본을 보이는 마음가짐과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옛날 어느 집에서 늙은 아버지를 그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속에 내다 버렸다. 지게를 버리고 막 돌아서려 할 때 따라왔던 그의 아들(노인의 손자)이 지게를 다시 가져 가려했다. 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더니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로 다시 져다 버려야지요”라고 대답했다-「기로전설(棄老傳說)」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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