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락원' 사태로 본 노인요양시설, 무엇이 문제인가
인천 '영락원' 사태로 본 노인요양시설, 무엇이 문제인가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2.02.10 11:16
  • 호수 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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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연수구 동춘1동 일대 대지 약 2만3000여㎡에 인천영락원, 영락요양원, 영락요양의 집 등 5개 노인복지시설을 갖춘 인천영락원. 1977년 시설허가 후 국내 ‘노인복지의 메카’로 세간의 이목을 끌어왔다. 하지만 지난 2002년 경영진이 수익사업으로 착수한 노인전문병원(가칭 소망병원)이 2006년 7월 총 750억원의 부채를 안은 채 부도를 냈고, 영락원은 그 이후 5년 가까이 파행 운영되다 2월 현재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300여명의 어르신과 200여명의 종사자가 더 이상 영락원에 머물 수 없게 됐고,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이 같은 상황을 빚어낸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고, 제2의 사태를 막기 위한 예방책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글=이호영 기자/사진=임근재 기자

▲ 2월 3일 인천시청이 영락원 입소 어르신들의 전원조치 및 종사자 해고 통보를 하자 영락원 노조측은 이에 반발하며 이날부터 한 달 동안 집회를 통해 영락원 운영정상화 촉구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무리한 사업확장·석연찮은 의회 개입이 문제 원인”
전국적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인천 영락원이 현재 파산 직전에 다다른 직접적인 원인은 과거 경영진이 수익사업으로 추진했던 노인전문병원 건립에 의한 과다한 채무로 지목된다. 공익성보다 수익성만 추구한 과도한 사업투자와 함께 이를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었던 뒤떨어진 경영 마인드가 문제란 지적이다.

영락원 경영진은 2002년 6월 수익사업 차원에서 노인전문병원인 ‘소망병원’ 신축 허가를 받았고, 2004년쯤 관할 관청 허가에 따라 영락원 5개 시설의 기본재산을 담보로 83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러나, 2007년 완공 목표로 진행되던 공사는 경영 부실로 인한 750억원 가량의 부채로 인해 2006년 6월 30일 최종부도와 함께 공정률 85%에서 중단됐다. 잔여공사에는 3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이후 영락원은 2009년 5월, 인천지법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했고, 회생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확정 채무액을 280억원까지 줄였다.

문제는 엉뚱하게 인천시의회에서 불거졌다. 2010년 10월 27일, 인천시의회 민주통합당 소속 13명의 의원이 법원 파산부에 ‘인천 영락원 관리인 교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시의원들이 ‘영락원 운영 정상화’ 명목으로 제출한 진정서에는 △영락원의 공익법인 육성 방안을 담은 조례 제정 △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에 영락원 법정관리인 선임권한 위임 △220억원 이상의 영락원 시설을 매각, 당시 영락원 대표가 제출한 회생계획안 이상의 보상을 채권자에게 약속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었다.

영락원 노조측은 “당시 영락원 채권자였던 모 시의원 주도로 시의원 13명의 서명으로 진정서가 제출됐다”며 “민의가 아닌 채권단 입장 대변에 가까웠고, 채권단의 기대심리로 인해 영락원 대표의 회생계획안에 대한 채권단 지지율이 11% 가량 철회되면서 (회생계획안이) 최종 폐지됐던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인천지법도 채권단 충족비율 부족을 이유로 2010년 11월 26일 영락원 대표의 회생계획안 폐지를 결정했다.

영락원 노조 측은 이 과정에서 인천시의 관리감독 소홀을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았다.

박충래 영락원 노조위원장은 “부도 당시 곧바로 법인 인감이라도 회수해서 차후 빚이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당시 인천시의 대처는 방관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안일함이었다”며 “사회복지법인 대표의 파행 경영을 내버려둔 인천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영락원 측의 항고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1월 17일, 또 다시 회생계획안 폐지를 결정했다. 영락원 측이 대법원 재차 항고했지만 기각될 가능성이 높아 파산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20~30년 지낸 어르신·종사자 길거리 나앉을 판
불똥은 고스란히 입소 어르신들과 영락원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떠안게 됐다.

인천시는 2월 3일 영락원 입소 어르신 440명 중 요양급여를 지원받는 어르신 290명과 자부담 이용 노인 22명 등 312명에 대해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했다. 또, 200여명의 영락원 종사자들에게는 해고를 통보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입소 어르신들과 노조원들이 이날부터 시청 앞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고, 6일에는 삭발식을 감행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노조 측은 생존권 차원의 절박함을 호소하며 우선 3월 2일까지 집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영락원에서 25년 동안 거주했다는 박병필(81) 어르신은 “(영락원의 부도에도 불구하고) 7층 건물에 150명 가량이 입소, 규모가 가장 컸던 ‘영락전문요양원’은 최근 5년 동안 운영상태도 좋았고 생활도 괜찮았다”며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리가 잘 잡혀가고 있었고, 법원에 항고 이후 영락요양원 리모델링도 진행하던 중이었는데 서울고등법원에서 그렇게(항고기각) 결정했다고 다들 시청 앞에 있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충래 영락원 노조위원장은 “기초생활수급자만 300명 가량인 입소 어르신들은 보통 10~20년 이곳에서 생활한 분들”이라며 “영락원에서 뼈를 묻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전원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 “200여명의 종사자들은 한국노총에서 활동한 경력이 꼬리표가 돼 타시설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측이 인천시에 요구하는 조건은 단순하다. 영락원을 매입, 시립화하거나 운영정상화를 위해 지역 기업자본이 투입되도록 송영길 시장을 비롯해 인천시가 대책을 수립하라는 것.

박 위원장은 “시의회가 진정서를 제출할 때 공익법인화를 주장했는데 우리 주장도 그렇다”며 “시비를 들이지 않고도 5개 시설 중 2개 가량을 매각하고, 소망병원을 완공해 매각하면 미확정 채권까지 포함해 310억원 가량의 채무액이 변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06년 부도 당시 병원 건립 자금 70억원의 장기차입 허가권을 내준 곳도 인천시”라며 “이후 자금 부족으로 인해 자체수익사업이란 계획도 변경, 인천시 기부채납 형태로 갚겠다고 약속하고 대출 받아 지었는데 그 과정에서 보인 인천시의 관리감독 소홀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인천시가 최근 결정한 입소노인 전원 조치나 종사자들에 대한 해고 통보도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 2006년 6월 부도 이후 영락원은 채무를 줄이면서 회생 절차를 밟으려고 했지만 인천지법에 이어 지난 1월 17일 서울고법도 회생계획안 폐지를 확정해 파산위기를 맞고 있다.최근의 상황은 영락원 측이 인천시 산업평화대상과 노사상생협력 우수사업장 인증 간판을 무색케 한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주무관청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인허가 등 행정행위, 법인 이사회 행위에 대한 선도 등이지, 절차를 무시하고 개별적으로 시행하는 폐해까지 계도하는 감지 시스템도 없고 불가능하다”며 “시로서는 관리감독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또, “영락원 사태는 어디까지 경영진의 책임”이라며 “법인 차원에서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으려면 어려운 데다 자금 조달이 급한 상황에서 자구책으로 개인 채무를 많이 졌다”고 반박했다.

인천시는 “현재 시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시가 영락원 시설에 입소 의뢰한 어르신들의 보호 문제”라며 “영락원 종사자들도 어르신들이 옮기는 곳에 일자리가 생길 테니 연계할 계획”이라고 전한 뒤, “확정채무가 280억원인데 (노조 측의 시립화 주장처럼) 시가 이를 매입, 고스란히 떠안을 이유가 없어 재고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향후 영락원의 미래는 대법원 판결이 가장 큰 변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파산신청으로 인한 파산, 법적 청산 과정을 통한 법인 해산과 부채 상환, 또는 채권단의 회생계획안을 통한 회생 절차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락원이 사회복지시설 본연의 기능과 사회적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회복지법인, “경영마인드 변화 절실”
영락원 사태의 근본적 문제는 사회복지법인 운영 주체의 도덕성과 운영상 투명성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의 수익사업을 위한 자금 조달이나 집행과정에서 법인자격으로 처리하면 여러 가지 규제에 걸리다보니 부도 시점까지 법인대표 개인자격의 편법적 사무처리 탓에 문제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또 사회복지법인 이사회나 감사 등 법인 내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 규칙’ 등을 통해 사회복지법인체의 관리감독기관인 주무관청은 직간접적으로 법인의 예산 등에 대해 관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인 경영 주체의 경영마인드 변화가 사회복지법인의 경영 효율성을 꾀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이라도 기업 등 영리조직에 준하는 재무보고 등 재무상태와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회계기준의 효율성을 평가하면서 이해 관계자에게 유용한 회계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회계감사제도에 개선 방안 등이 제시돼 왔다.

최성재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사회복지법인체가 수익사업을 추진할 때는 전문성을 갖고 타당성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는 등 세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며 “일종의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수익사업을 통상적인 복지시설 운영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행정에 대한 일반 지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회계나 재정관리도 일반 기업체가 요구하는 수준이어야 하는데, 복지법인은 수입이나 지출을 맞추지 못해 종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이 같은 재정 문제는 사업의 존립과 직결된다”며 “아직까지 (대부분의) 복지시설 운영자들의 경영마인드가 단순히 헌신적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말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돼 앞으로 1년 후엔 자치단체장의 임명이나 위촉으로 지자체에 두고 있는 사회복지위원회 또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가 사회복지법인의 이사 중 2명 이상을 추천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개정법이 시행되면 법인 경영에 타 법인 또는 사회복지전문가의 의견과 지역민의 등 민간의 의견도 반영될 전망이어서 노인복지시설의 파행 경영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호영 기자 eesoar@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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