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자나무 분재(盆栽)
[기고] 유자나무 분재(盆栽)
  • 관리자
  • 승인 2012.04.27 14:17
  • 호수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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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원 경기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30년이 넘도록 길러온 유자나무 분재가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라는 나무를 크기에 맞춰 분갈이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자라나는 아이들을 큰 옷으로 갈아입히는 느낌이랄까. 매일 수형을 다듬고 물을 주면서 정성껏 길렀더니 이제는 제법 아담한 분재가 됐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고목다운 품격도 지니게 됐다.

유자나무에 유독 정성을 들이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유자 분재를 보고 있으면 옛 시골집의 향수에 젖을 수 있다. 필자의 고향 시골집 북쪽 모퉁이에는 오래된 유자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추위에 특히 약한 유자나무는 겨울나기가 퍽 어려웠다. 동사(凍死)를 예방하기 위해 가마니를 둘러줘도 이듬해 죽은 가지가 생겨났다. 고사된 가지를 잘라내고 비료를 주며 온 가족이 정성을 들였지만, 한 번도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아련하고 안타까웠던 시골집 유자나무의 추억 때문에 지금 그와 같은 종류의 분재를 베란다에서 키우게 됐다.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어릴 적 추억과 향수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유자를 4계절 내내 맛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희귀한 과일이었다. 유자는 귀한만치 대접을 받았다. 제사상에서도 배나 사과보다 서열이 높았다. 신맛 때문에 과일로 이용하기는 어렵지만 예로부터 한약재나 감기에 좋은 차로 사용됐다. 특유의 깊은 향 때문이다.

어릴 적 유자나무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유독 유자 분재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분갈이 때 마다 묵은 뿌리를 정성껏 잘라주고 좋은 비료도 덮어줬다. 하지만 아직까지 꽃은 피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른 봄에 묵은 잎을 따 주면 새 잎은 돋아난다. 이렇게 30여년을 길러 왔더니 친자식처럼 돈독한 정이 느껴질 정도다.

비록 꽃을 피우지는 못 하지만 유자나무의 고유한 향기는 그대로다. 향을 맡을 때마다 나는 고향 땅, 텃밭 언저리에 홀로 서 있던 유자나무가 불현듯 그리워진다. 그 때의 우람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유자에 대한 향수(鄕愁)는 이 뿐만이 아니다. 시제(時祭)를 모시러 고향에 가면, 유자 하나 얻어오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제사상에 오른 몇 안 되는 유자는 언제나 형들의 차지였다. 어쩌다 삼촌이 유자 하나를 챙겨주면 그 삼촌이 그렇게 좋았다. 그렇게 얻어 온 유자는 보물과도 같았다.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책상에 오래토록 놓아두고, 까맣게 돌덩이가 되도록 간직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당시를 추억하며 가을이면 유자를 사다 책상 위해 올려놓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는가 보다. 아마도 다시는 찾기 어려운 추억을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꿔 온 유자나무 잎이 최근 말라 떨어졌다. 한 달 동안 물을 주지 못 해서다. 필자가 거실에서 쓰러져 뇌출혈로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느라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병원에서 생사를 헤맬 때 유자나무 역시 집에서 고통을 겪은 것이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미안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회생시켜 보려고 말라버린 잎을 따고 매일 같이 물을 줬다. 작은 희망을 품고서.

2주가 지난 오늘, 유심히 살펴보니 파란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너무 반가웠다. 어려운 병상에서 필자가 쾌유됐듯 유자나무도 회생된 것이다. 다시 살아나 생명을 이어준 게 고맙고, 고향의 그리움을 느끼도록 끈을 이어줘 더 고맙다. 꽃도 열매도 맺지 못 하는 유자나무지만 내겐 더 특별하고 소중하기만 하다. 내년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추억을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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