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부부의 애틋한 봄나들이
[기고] 노부부의 애틋한 봄나들이
  • 관리자
  • 승인 2012.04.27 14:18
  • 호수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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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대한노인회 전주시 덕진동 분회장

살을 여미는 엄동설한이 지나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화창한 어느 봄날. 손을 맞잡은 한 노부부가 한적한 공원을 거닐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그들의 얼굴엔 세월의 연륜을 담아 희비고락을 연출하듯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다. 앙상한 손마디와 구부러진 허리는 삶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 했다.

노부부는 곧 행장을 꾸리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 모처럼의 즐거운 나들이라 입가엔 미소를 담고 있지만 거침새가 어딘지 모르게 쑥스러워 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안심한 듯 돗자리를 편다. 마주앉아 뭔가 수군거리며 담소에 젖어든다. 아마도 로맨스를 즐기나 보다. 지난 날의 추억을 더듬어보면서.

이윽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다리를 베개 삼아 돗자리에 눕는다. 여느 여인처럼 누어서 살며시 눈가에 미소도 지어 보인다. 오랜 시간 삶을 같이한 고마움의 답례인지 할아버지 어깨를 주물러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기만 했다. 공손한 할머니의 말솜씨와 호탕한 할아버지의 웃음소리가 지나는 행인의 이목을 끈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그 모습이 참으로 부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면서 수많은 원망과 고통, 아픔의 세월을 이겨내지 않았겠는가. 무엇보다 동고동락하며 인생의 끝맺음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동반자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이 그 길을 같이 걸어가는 사람을 뜻한다. 노부부의 모습은 동반자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들이 우리의 장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지금의 노년 세대들은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다 겪은 세대다. 일제 강점기에 고난의 역경을 겪었고 6·25사변이라는 동족상잔의 쓰라린 아픔도 이겨냈다. 또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면서 구국의 이념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몸 바쳐 일했다. 개인의 노후를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은 미쳐 하지 못 했다.

결국 경제발전의 주역들은 은퇴 후 경제난과 소외감이라는 장벽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노인들의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거노인이 증가하고, 노인우울증과 자살률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노인들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견이불식(見而不食)이란 말이 있다. 보기만 했지 먹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우리 노인들을 일컫는 말 같다. 국가발전의 주역으로 평생을 바쳤지만 그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노인복지시설과 정책들은 크게 늘었다. 하지만 노인이 ‘힘 없어 부양 받아야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한 근본적인 노인소외 현상은 바로 잡을 수 없다. 노인들을 위한 정서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정오가 지나서야 노부부는 주섬주섬 차려온 먹을거리를 펼쳐놓았다. 마주앉아 김밥을 주거니 받거니 입속에 넣어주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띠게 만들었다. 곧 그들은 따스한 봄날의 햇살에 몸을 맡기고, 나란히 누웠다. 중얼거리는 입가에 옅은 미소가 보이고, 봄바람에 흰 머리카락은 춤을 췄다. 꿈 속에서 지난 세월을 추억하는 듯 평안한 모습이었다.

노부부는 늘어지게 잠을 자고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자 부스스 눈을 뜬다. 그제서야 돗자리를 걷고 행랑을 꾸린다. 짐을 다정히 나눠들고 서로를 부추기며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개인적으로 그 노부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노부부들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주변 공원에서 더 자주 접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노후에도 외로움 없이 여생을 즐길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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