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생 맞이하는 마음으로 노년을 개척합시다”
“새 인생 맞이하는 마음으로 노년을 개척합시다”
  • 관리자
  • 승인 2012.06.22 16:02
  • 호수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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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

안녕하십니까. 정운찬입니다.

저는 지난 30여년을 대학에서 일했습니다. 젊은 학생들과 생활하다보니 제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벌써 사회원로나 노인 대접을 받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 역시 ‘노인의 삶은 우울하다’ ‘희망이 없다’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노인’은 ‘어르신’으로, ‘실버’란 말도 흰머리를 뜻한다 해서 ‘골든에이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단어 몇 개 바뀐다고 사회가 갖고 있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달라지거나 노인의 삶이 갑자기 황금빛으로 변할 리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인 고령화사회에 돌입했습니다. ‘9988’이라 해서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는 말이 유행입니다. 각종 과학 및 의학 기술 발달 덕분에 평균수명이 연장돼 2030년이면 100세 무병장수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오래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현재 우리나라 노인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평균수명 증가와 함께 각종 암과 성인병도 덩달아 늘어나 질병과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홀몸노인의 비참한 삶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이 100만부 이상 팔렸답니다. 그런데, 어디 청춘만 아프겠습니까. 노인들은 더 쑤시고 저리고 아프지요. 그런데도 이 사회는 청춘들에게만 어른들 탓에 아프니 미안하다고 위로해 줍니다. 진짜 몸과 마음이 아픈 어른들의 문제에는 고개를 돌립니다.

저는 현재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인들을 위한 이런저런 복지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전직 국무총리로서 우리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자는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이와 어르신도 동반성장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들과 의사들이 세계 장수촌을 직접 찾아 수년간 머물며 연구한 각종 자료를 참고하면 해결책도 있다고 봅니다.

에콰도르의 빌카밤바 계곡, 파키스탄의 훈자지역, 일본의 오키나와 등지의 노인들은 대부분 80~90대에도 청춘의 열정을 보이며, 죽는 날까지 또렷한 정신과 판단력을 갖고, 잠자리에 들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치매란 단어조차 생소할 만큼 환자가 거의 없고, 암 환자도 드물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깨끗한 청정지역에서, 거칠지만 영양가 풍부한 통곡식과 제철 채소, 가끔 육류를 곁들이는 건강한 식생활에, 계속 몸을 움직이며 밭이나 논을 가꾸는 운동량 등 의사나 학자들이 권장하는 건강생활의 기본을 준수했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들의 장수비결을 그와 같은 물리적 환경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뉴욕 시립대학 헌터칼리지 인류학과의 술라 베넷 교수가 쓴 ‘압하지야, 장수하는 코카서스인’을 비롯, 다른 장수촌을 찾은 학자들이 기록한 공통점은 환경이 아니라 ‘문화’였습니다.

이들 지역의 주민들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존중받아야 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흰머리와 주름은 지혜롭고 성숙하며 오랫동안 힘들게 수고했다는 표시로 여깁니다. 오히려 ‘동안이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모욕으로 여겨진답니다. 심지어 가장 심한 욕이 “어려울 때 조언해 줄 어른도 없는 주제에…”라고 합니다.
내가 돈 벌어 부양해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로 노인을 보지 않는 사회, 노인을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헌자 또는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나눠주는 존재로 여기는 사회풍토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회의 인식을 바꾸기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이 노인 스스로의 변화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노년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적 노화’나 ‘신노년’ 같은 서구적 노년담론에서 벗어나 동양과 한국의 고전담론 속에서 현대에 유용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노년담론을 인문학적 가치로 재구성하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의료산업과 생명과학의 항노화 기술 발전이나 연금제도 개선과 복지확대, 구색 맞추기 위해 마련된 복지관의 프로그램만으로는 노인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도적인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개개인이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심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노인은 ‘성숙하고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가치의식을 전제한 인간학적 성찰을 담은 ‘노년 인문학’을 국가 차원에서 보급하는 것이 노인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보약, 건강보조제를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시험이나 성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건강을 위해 부지런히 신문과 책을 읽고 인터넷도 서핑하면서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신기하게도 운동선수보다 피터 드러커, 갈브레이드 등 평생 꾸준히 공부한 학자들이 장수합니다.

또, 본격적인 고령화시대가 되면 어르신들의 일자리도 창출될 것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앵커 월트 크롱카이트는 90대에도 노인 방송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지난해 ‘쎄시봉’ 공연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는데, 그들의 평균연령이 67세입니다. 60대 후반에도 어린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인기와 돈을 버는 세상이 옵니다.

이렇게 건강하고 활발한 노인들이 많이 등장해 노인은 힘도 없고 잔소리 많은 존재란 인식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연연하거나, 지난 청춘을 아쉬워하지 맙시다. 앞으로 살아갈 밝고 건강한 인생을 위해 항상 자긍심을 갖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험난한 현대사회에서 무사히 버티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 우리나라의 노인문화 발전, 그리고 어르신들에 대한 복지는 물론, 사회적 편견을 깨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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