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문화공간 홀대 이대로 좋은가
노인극장 폐관·실버문화벨트 중단…
여가 공유 가능한 ‘통합공간’ 필요
어르신 문화공간 홀대 이대로 좋은가
노인극장 폐관·실버문화벨트 중단…
여가 공유 가능한 ‘통합공간’ 필요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07.20 11:39
  • 호수 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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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지난 2007년 제80~82호에 걸쳐 ‘노인 문화의 거리’조성을 강력히 주장, 그 결과 2009년 종로 일대에 노인 문화의 거리인 ‘실버문화벨트’가 생기는 것에 일조했다. 이 사업은 노인 문화 거리 조성을 위해, 수도권 어르신이 즐겨 찾는 서울노인복지센터~탑골공원~종묘공원 구간에 노인전용극장, 노래방, 북카페, 노인용품점 등을 건립하는 것으로, 당시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했었다. 하지만 사업 추진 3년이 지난 현재, 어르신들이 여가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을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오히려 기존의 노인전용 문화공간까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르신들의 여가문화공간의 현 실태와 나아갈 방향을 분석해 본다.

▲ 어르신들이 종묘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담소를 나누거나 장기, 바둑을 두는 것이 여가활동의 전부지만 “이런 공간이라도 있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사진=백세시대DB
노인전용극장 서대문아트홀이 7월 11일 문을 닫았다. ‘자본의 논리’ 때문이었다. 지난해 8월 건물주가 바뀐 뒤, 서대문아트홀을 철거하고 관광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이 나온 것이 발단이 됐다. 서울시는 서대문아트홀의 대안으로 은평구 소재 멀티플렉스 ‘메가박스’ 극장에 상영관 한 개를 대관, 노인전용극장인 ‘청춘극장’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대문아트홀 한 곳이 없어졌을 뿐, 이로 인해 노인문화공간이 축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현재 낙원상가에 위치한 노인전용극장 ‘허리우드 클래식’도 (이용 어르신이 많지 않아) 항상 매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은평구에 노인전용극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르신들의 수요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허리우드 클래식’ 극장의 한 직원은 서울시와 전혀 다른 상황을 전했다. 그는 “평일 500명, 주말 700~ 1000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주로 고전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고 계신다”며 “주중에도 네다섯 차례 매진이 될 정도로 수요가 많다”고 밝혔다.

과연 서울시 관계자의 말처럼 어르신들의 여가문화공간이 충분한 것일까. 서울시가 서울노인복지센터와 함께 지난 2009년 ‘9988어르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추진했던 ‘실버문화벨트’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 거리로 나가봤다.

▲노인복지시설, 발디딜 틈 없어
날이 흐린 7월의 한낮인데도 ‘실버문화벨트’ 해당 구역의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실버문화벨트 사업 계획대로라면 노인관련 시설, 상점 등이 즐비하고 어르신들의 인파로 붐벼야할 거리다.

반면, 서울시가 계획했던 실버문화벨트의 중심에 자리한 서울시노인복지센터(이하 센터) 내부는 어르신들로 가득 차 ‘인산인해’였다. 센터 안은 출퇴근 시간대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객차처럼 1~3층까지 발 디딜 틈 없었다. ‘실버문화벨트’란 이름이 무색하게 한산한 거리에 비해 건물 내부는 시장통을 방불케 할 만큼 붐볐다.

어르신 대부분은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를 위해, 또는 각종 여가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김모(71) 어르신은 “공간이 협소한 점이 가장 아쉽다”면서 “사실상 우리 세대의 모든 문화 활동이 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 밖에는 즐겨 찾을 만한 장소가 없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재준(76) 어르신은 “여가문화 프로그램 수강생도 많지만, 무료 식사를 위해 센터를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 더욱 붐빈다”고 말했다.
노인복지센터의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었다. 정영자(76) 어르신은 “태극권, 민요, 부채춤 등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면서도, 협소한 공간에 대해서는 불만을 토로했다. 어르신들에 따르면, 센터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참여하기 위해 줄서 대기하는 시간이 최소 20분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의 수요에 비해 여가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빚어지는 현상이다.

▲실버문화벨트, 사실상 중단
서울시가 실버문화벨트 조성을 장담했는데, 거리는 왜 텅 비어있고 이 센터만 붐비는 것일까. 우선, 이 센터는 수도권 어르신들이 소일을 위해 즐겨 찾는 탑골공원 및 종묘공원과 인접해 접근성이 좋다. 또, 센터가 어르신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어 어르신들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어르신들이 여가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고, 시설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탑골공원 근처에서 만난 송모(72) 어르신은 자신의 여가생활에 대해 “기껏해야 센터에 가서 밥을 먹고 공원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탑골공원과 인근 종묘공원은 송 어르신과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수도권 전역에서 몰리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집합소’로 여겨졌다. 예나 지금이나 이 공원을 찾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삼삼오오 모여 바둑이나 장기를 즐기고 있다.

어르신들이 모이면서 부작용도 속출했다. 엉터리 식품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속여 고가에 판매하거나 싸구려 물품을 비싸게 되파는 상술은 고전적인 수법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어르신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일삼는 이른바 ‘바카스 아줌마’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 보건당국이 대대적인 실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의 어르신들에게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일대는 흔치 않은 쉼터이자 사정이 엇비슷한 노인들끼리 만남의 장소로 자리잡고 있다.

일부 어르신들은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늙은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모여 있을 공간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여가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난 2009년 초, 음성적으로 확대되는 탑골공원 및 종묘공원 일대를 아예 노인을 위한 ‘문화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본지가 ‘노인문화의 거리를 조성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한 직후 전격 발표된, 매우 신선한 계획이었다.

서울시의 실버문화벨트 사업은 매일 수도권 어르신 1만여명이 즐겨 찾는 서울노인복지센터~탑골공원~종묘공원 구간에 노인전용극장을 비롯해 공연장, 노래방, 북 카페, 노인용품점 등이 들어서는 노인문화의 거리로 조성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나 다시 찾은 서울 종로에 실버문화벨트는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거리는 없었다. 계획만 무성했을 뿐, 오세훈 전 시장이 물러나고 이런저런 이유가 끼어들면서 유야무야 ‘없던 일’이 돼버린 것이다.

실버문화벨트사업 관계자는 사업추진 여부에 대해 “완전히 중단됐다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사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애매모호하게 답했다. 이 관계자는 “찻집, 노인용품점 등은 있던 대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상 이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정책적 지원·관심은 소강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실버문화벨트로 계획된) 거리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콘텐츠·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탑골 공원이 쉼터 역할을 하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관계자도 “실버문화벨트는 사실상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현재는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와 함께 어르신을 위한 새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시설·공간보다 콘텐츠 중요”
‘실버문화벨트’ 사업이 중단된 이유는 무엇일까. 실버문화벨트사업 관계자는 “넓은 거리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한계를 많이 느꼈다”며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건축물 안에 여러 시설을 배치시켜 어르신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로부터는 “담당자가 바뀌어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서울시는 실버문화벨트 사업 초기, 주관기관 등을 통해 기자간담회를 여는 등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사업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실상 폐지됐다. 게다가 사업이 중단된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분석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윤소영 박사는 “사실 ‘노인 문화의 거리’와 같은 노인전용공간이 현실적으로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며 “하지만 최근 폐관된 서대문아트홀의 경우처럼, 최소한의 노인전용공간마저 없어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되, 이를 이용하는 구성원이 다양하도록 해야만 사업운영의 효율성과 함께 세대통합도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명대 이금룡 교수(가족복지학)는 “‘실버문화벨트’ 사업은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에 비해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며 “탑골공원 등 이미 어르신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거창하게 시설을 세우기보다 기존의 공간을 활용, 여가문화 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키고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미 여러 복지관에서 여가활동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교육 이후 어르신들이 배운 것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으려면 여가를 공유할 수 있는 통합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다솜 기자 soyo@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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