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노인취업지원 우수사례⑭
기대치 낮추고 도전의지 높이면… 재취업의 문 좁지 않다
2011년 노인취업지원 우수사례⑭
기대치 낮추고 도전의지 높이면… 재취업의 문 좁지 않다
  • 관리자
  • 승인 2012.08.03 10:07
  • 호수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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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층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일자리다. 은퇴 후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최고의 노인복지’란 말까지 등장했다. 노년기의 일자리는 소득기회 제공뿐만 아니라 심리·사회네트워크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인들의 사회참여 확대와 노하우 전수의 측면에서도 그 효과는 탁월하다. 이에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는 전국 조직망을 활용해 양질의 일자리를 어르신들에게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2만여명의 어르신들이 ‘일할 수 있는 기쁨’을 선물받았다. 백세시대은 노인일자리의 필요성을 알리는 한편 다양한 취업 사례를 공유하고자 2011년 노인 취업 우수사례를 매회 2편씩 연재한다. <편집자주>

▲ 유용근(71) 어르신은‘청춘6065, 이제시작! 구직자 성공 취업 특강’을 통해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경비직에 취직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용인기흥구노인회, 눈높이 낮추면 제2의 인생길이 보인다
세월이 쏜살같다고 했던가. 눈 깜박할 사이 내 나이 일흔 하나가 됐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굴곡이 많았던 삶이었다.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작은 기업의 대표도 맡았다. 그렇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다가 IMF 경제위기 이후 생활고에도 시달렸다. 부채를 떠안은 채 건설현장 노무자 생활도 해봤다. 하지만 나이가 예순을 훌쩍 넘기니 건설 현장에도 나갈 수 없었다.

본디 몸을 가만히 두는 성격이 아닌지라 무작정 전주 시청을 찾아가 할 일을 달라고 요청도 해봤다. 이를 계기로 완산구청 녹지과 산불감시원 3년, 공원 가로수관리 2년, 고속도로 잔디관리원으로 6개월을 근무하게 됐다. 최근엔 전주 금암복지관 발행지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고, 또 열심히 생활했지만 가는 세월을 잡을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일흔을 넘겨서도 내가 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결국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용인에 살고 있는 아들과 함께 살게 됐다. 70년 동안 생활했던 정든 고향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노후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공기가 좋고, 노후복지가 아무리 잘 돼 있어도 낯선 풍경, 생소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남들은 아들 내외와 지내며 걱정 없이 살게 됐다고 부러워들 하지만 마음 속 허전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할 일이 있을까 매일 지역신문을 뒤지곤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문을 보고 있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를 보게 됐다. 대한노인회 용인시 기흥구 지회에서 노인 구직자 특강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찾아가 상담을 한번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다음 날 이력서와 주민등록증을 챙겨 들뜬 마음으로 기흥구 지회를 찾았다.

지회 앞에 걸린 “보람찬 생활, 행복한 노후는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와 함께 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송재숙 취업지원센터장과의 상담을 마치고, 특강 신청까지 마쳤다. 노인 재취업 특강은 마치 날 위해 마련된 것만 같았다.

이윽고 특강 날이 다가왔다. 나와 형편과 처지가 비슷한 20여명의 교육생들이 함께 교육을 받았다. 전문 강사들에게 △노년기 재취업의 의미와 현황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 요령 등 취업기술 △이미지 관리 및 업무예절 등 실질적인 취업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만 더 일찍 취업지원센터를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눈높이를 낮추세요. 제2의 인생이 열릴 겁니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특강 내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건강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경비직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새로운 곳에 이사 왔기 때문에 체면을 버리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교육 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재취업을 준비했다. 취업지원센터를 찾아가 경비직 취업알선을 부탁하고, 상담도 받았다. 이후 센터의 소개를 받아 3번의 면접을 치렀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일에 대한 열정이 많아도 일흔을 넘긴 나이와 경험이 없다는 게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3전 4기만에 아파트 경비직에 취업할 수 있었다. 물론 관리소 직원들의 간섭, 입주민들의 하대, 하찮은 일로 꼬투리 잡혀 면매를 당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업실패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건설현장에서 쌓은 육체적 피로에 피하면 충분히 견딜 만 했다. 노인일자리사업(20만원)보다 5배가 넘는 월급을 받고 있으니 오히려 고맙고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제 경비로 근무를 시작한지 벌써 1년여가 지났다. 취업 후 모든 일상이 변화됐다. 매월 3만원씩 적금도 들고 있다. 그 동안 어려운 형편 때문에 가지 못했던 아내와의 여행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올해 2박 3일 정도의 홍옥혼식(45주년) 이벤트를 준비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가정에서도 떳떳한 가장역할을 하고 있다. 손자녀 용돈을 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연히 알게 된 용인기흥구지회 취업지원센터를 통해 노년기의 작은 설렘과 꿈을 안게 됐다. 밝은 미소로 주민들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활기찬 하루를 그려가고 있다.


 

▲ 송준호(75) 어르신은 2명의 고교동창생들과 함께 구로구지회가 운영하는 아파트 실버택배원으로 일하고 있다.

구로구노인회, 동창들 뭉쳐 아파트 택배사업 손발 ‘척척’
“친구야, 나랑 아파트 택배배달 한번 안해 볼래?”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는 택배 일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며 놀라운 제안을 했다. 처음엔 “이 나이에 무슨 택배 일이냐… 나이를 생각해야지”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계속적인 친구의 권유에 조금씩 생각이 바뀌게 됐다. 소일거리 없이 집에만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 건강도 유지하고, 용돈도 마련할 수 있다는 친구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일흔 다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한노인회 구로구지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파트 택배 일을 하게 됐다.

취업을 결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족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힘들면 바로 그만 둔다”는 약속을 하고 가족들에게 동의를 얻었다. 이어 구로구지회 취업지원센터를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취업기회를 요청했다. 노인회에서 흔쾌히 허락을 해 곧장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신도림의 한 아파트에서 5일간의 견습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택배 업무를 맡게 됐다. 실버택배는 대한노인회 구로구지회가 민간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사업이었다. 업무는 크게 어려운 것이 없었다. 오전 10시경, 신도림 하치장에 모인 택배상자를 아파트 별로 분류하고, 시간 내에 배달하는 일이 전부다.

이젠 노하우가 쌓여서 택배상자에 우리만 알아볼 수 있는 분류 번호를 작성하기도 한다. 누락된 주소나 배달 순서를 기록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렇게 물품하차와 분류가 끝나면 실버배달원들은 각자의 차에 할당된 물건을 싣고 배달 업무를 시작한다.

사실 처음 배달 일을 시작했을 때는 주변을 굉장히 많이 의식했다. 혹시 아는 친구들을 만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불혹의 나이에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져 오히려 더 당당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 동창생 3명이 함께 호흡을 맞춰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10시에 구로역에서 만나 함께 출근하고, 역할을 배분해 배달 업무도 같이 한다.

배달이 시작되면 고교동창 3인방의 위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한 친구는 운전을, 다른 친구는 동호수를 찾는다. 물품 나르고 물건을 분류 하는 일은 필자의 몫이다. 손발이 척척 맞아 다른 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정도다. 우리는 가끔 서로 얼굴들을 쳐다보면서 아무 이유없이 웃는다. 옛날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더러는 이렇게 일하고 있는 우리가 신기하기도 해서다.

택배업무가 활동량도 많고, 근력을 요하는 일이지만 동창생 3명이 함께 하니 힘든 것도 덜 하다. 옛 추억과 고교시절 에피소드를 늘어놓다보면 하루 일과가 금방 지나갔다. 무엇보다 내가 편하자고 조금이라도 나태하면 다른 친구들이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먼저 움직이게 됐다. 이러다보니 능률도 배가 되고 피로는 반으로 줄었다.

특히 택배업무를 시작하면서 세 친구 모두 건강이 이전보다 좋아졌다. 3~5kg정도 살이 빠지면서 나왔던 배도 들어갔다. 당뇨가 있던 친구는 체중을 관리할 수 있어 좋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친구는 약이 없어도 금세 잠을 청하게 됐다.

“만약 택배 일을 시작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으면 어떤 모습일까?”
고교 동창생들이 나이 70이 넘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로구지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고교 동창생인 우리 3총사도 건강하게 이 일을 계속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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