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자·춘자, 일본식 이름 싫다”… 개명 증가
“말자·춘자, 일본식 이름 싫다”… 개명 증가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08.17 11:45
  • 호수 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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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노년층의 개명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특히 ‘O자’ 등 일본식 이름을 바꾸려는 개명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대법원에 신청된 개명허가서 접수건수는 매년 20~30%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7만2833건이던 개명허가 신청 건수는 2011년 12만건을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개명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나 법무사들도 늘어나 후불제 등 다양한 서비스로 이름 바꾸기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그리고 수십년 동안 사용했던 자신의 이름을 바꾸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일본식 또는 욕설과 유사하다거나 놀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개명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강이나 경제적 이유도 등장했다. 실제로 “이름 때문에 가정불화가 생긴다” “사업이 잘 되지 않는다” “병치례를 한다”는 등의 이유로 개명신청을 한 경우가 다수 있었다.

구홍덕 한국철학대학 평생교육원장은 “요즘처럼 불경기가 지속되면 이름 때문에 가정·사업문제가 발생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역학적으로 운명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개명을 통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 효과가 크다”며 “최근에는 개명신청이 한층 수월해지면서 평생 놀림을 받았던 이름, 일본식 이름 등을 변경하려는 중장년층의 문의가 크게 늘어난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영자, 순자, 춘자, 말자, 숙자, 금자, 은자, 경자, 정자 등은 여성 노인들에게 흔한 이름들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다보니 끝 자에 ‘子’(자)가 넘쳐나게 된 것이다. 일례로 일본식 이름 ‘하루코’(春子)는 춘자, ‘마사코’(正子)는 정자로 바꿔 호적에 등록했다.

최근 ‘춘자’라는 일본식 이름을 개명한 최나영(73·여) 어르신은 “광복 50년이 넘도록 일본인이 남겨놓은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며 “개명 이후 마음의 짐을 털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법원, 행복추구권 보장… 개명허가율 90%
개명 신청의 증가는 법원의 개명절차가 전보다 쉬워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름을 바꾸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어렵게 서류를 갖춰 개명신청을 해도 법원이 퇴짜 놓기 일쑤였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개명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번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수 백만원의 비용이 드는 게 일반적이었다. 돈이 없으면 이름도 바꿀 수 없어 ‘놀림감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명이 훨씬 쉬워졌다. 개인의 행복추구권 보장 차원에서 국민들의 개명신청을 ‘웬만하면 받으라’고 판결한 대법원 판결(2005년 말) 이후부터 절차·비용은 간소화되고, 허가율은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개명 허가율은 90%에 달했다.

서울지방법원 관계자는 “최근 행복추구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원조회와 신용조회를 거쳐 큰 문제가 없을 경우 본인 의사에 따라 이름 변경을 허가하는 추세”라며 “특히 취학을 앞둔 어린이나 일본식 이름을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 개명신청 대부분이 허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무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는 사람이나 범죄자, 해외불법 체류자가 아니면 이름을 바꾸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2011년 개명 신청자가 가장 선호한 남자 이름은 ‘민준’, 여자 이름은 ‘서연’으로 조사됐다.

▲2만~25만원에 개명… 최종 판결 2~3개월 소요
개명은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방법과 본인이 직접 신청하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법무사 등을 통한 대행의 경우, 기본서류만 제출하면 알아서 처리해 준다. 대신 수임료로 15만~25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최근 개명을 놓고 법률시장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후불제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개명이 성공한 뒤에 법률서비스 비용을 받겠다는 것이다. 물론 개명신청이 기각될 경우 비용을 받지 않는다. 그만큼 개명 허가율이 높다는 증거다.

직접 신청해 처리하는 경우 소요 시간이 길고 절차가 다소 복잡하지만 비용은 2만원 정도의 수수료만 부담하면 된다. 개인이 법원을 찾아 개명신청할 경우, 약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개명 신청서 작성 후 인지세·수수료를 결제하고, 담당 직원에게 서류를 제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개명 신청을 할 때 제출하는 서류는 신청서, 호적등본 및 주민등록등본, 소명자료 등이다. 특히 개명 신청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인 소명자료는 개명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다. 제출된 자료를 판사가 검토, 개명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개명신청이 통과한 뒤에도 할 일이 남아 있다. 법원에서 등기우편으로 보낸 개명허가서를 거주지 시·군·구청에 제출해야 한다. 1개월 내에 허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5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후 동사무소에서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하고, 각종 은행, 신용카드사, 학교, 직장 등 예전 이름을 바뀐 이름으로 일일이 교체 신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개명을 진행하면 통상적으로 2~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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