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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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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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복지 향상위해 실천하는 사회운동가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매우 뜻 깊은 국제행사가 열렸다. 제8차 국제노령자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n aging) 국제회의. 전 세계 52개 나라 노인 관련 민간단체는 물론 정부, 학자, 일반 시민 등이 대거 날아와 머리를 맞대고 고령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심각한 고령화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할 만한 국제회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참석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이었다. 주 회장은 이 자리에서 60세 이상 장노년층과 일자리에 관한 주제로 2시간 동안, 그리고 연금과 세대갈등을 내용으로 1시간 30분 동안 주제발표를 했다.

 

세계적인 석학들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주 회장의 발표를 경청한 뒤 한국의 고령화에 대해 진지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들의 충고는 한 마디 한 마디 놓칠 수 없는 선진국의 전례였고 해결책이었다. 현장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던 주 회장은 답답한 마음을 비울 수가 없었다.

“고령화에 관한 한 내로라는 세계 석학들과 민간단체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고령화라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 오지 말라 해도 찾아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와 같은 모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덴마크 대사관에 연락해 같이 가자했더니 나중에 식사나 하자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대한은퇴자협회는 지난 2001년 11월, 미국에서 국내로 건너온 조직이다. 2002년 1월 창립 이래 고령화와 관련된 각종 정부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고령화와 관련된 선진적인 사회운동 모델을 소개하는 것도 대한은퇴자협회의 몫.

 

대한항공 승무원에서 뉴욕한인회장까지 입지전 펼쳐


“쉽지 않았습니다. 불과 4년 전이었지만 당시 고령화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미국에서 불편 없이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귀국해 비정부기구를 만들겠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것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노인 문제를 다루겠다니….”


그랬다. 주명룡 회장은 1994년과 그 이듬해 뉴욕한인회장을 지낸 성공한 사업가였다. 한인회장 시절 뉴욕에 ‘코리아 스트리트’(한국 거리)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 때 3500여개나 되는 뉴욕의 식품상점에 물건을 대는 조직을 이끌기도 했다.


“1970년초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날아다니며 인생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지요.”


1980년 12월, 그는 사직서를 냈다.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그것도 오대양 팔대륙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항공사에서 ‘범법자’가 되지 않는 한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과감하게 미국 뉴욕을 향해 이민길에 올랐다. 그리고 현지 생활에 적응하며 열심히 생활했다. 식품유통 분야에서 성공했고, 뉴욕한인회장도 맡았다.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뿌리를 내리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무시당했습니다.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기여하면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미국은퇴자협회를 알게 됐습니다.”

연령차별금지·임금피크제·정년연장 등 선진제도 주장

 

미국은퇴자협회의 실상을 처음 접했을 때 주 회장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단체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회원수 3650만명, 상근직원 2200명, 430만명의 활동가, 150여명의 로비스트…, 한 해 경비만 6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우리나라 정부청사만한 건물에 자체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을 비롯해 신문사까지 갖추고 있었다.

 

1996년 뉴욕에서 대한은퇴자협회를 설립한 뒤로는 고령화에 대처하는 선진의식과 문화,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비정부기구의 무서운 힘을 고스란히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미국은퇴자협회에서 나오는 정보를 한인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러던 중 고국에서 IMF사태가 터진 겁니다. 거리로 내몰리는 수많은 가장들, 어제까지 단란했던 가정이 가장을 잃고 신음하는 모습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결심했지요. 대한은퇴자협회를 고국으로 옮겨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말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20여년 피땀 흘려 일궈 놓은 반석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결심만으로 몇 해를 보낸 뒤 문득 스스로의 비겁함에 치를 떨었고, 2001년 11월 결국 귀국길에 올랐다.


“마포에 200평이나 되는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근직원도 15명이나 뒀지요. 2002년 1월 프레스 센터에서 정식으로 창립식도 치렀습니다. 당시 복지부장관, 주한미국대사도 초정했고, 미국은퇴자협회장도 방한해 축하했습니다. 돕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안가서 다들 떠나더군요. 돌이켜보면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어려운 살림살이가 시작됐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생전 처음 하는 일에, 그것도 미국에서 살다 온 사람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영경비가 없어 쩔쩔매야 했다. 하지만 뜻은 굽히지 않았다.


창립 초기부터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내시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회 깊숙이 파고들었다. 연령차별금지, 임금피크제, 일자리 공유, 정년연장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밑바탕에는 장노년층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가 깔려 있었다. 세대통합도 현안이었다.
줄기찬 노력 끝에 2002년 11월, 고용에 있어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고령자고용촉진법 국회통과를 주도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고령자 고용촉진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령자 일자리 창출과 적합 직종개발 및 능력별 일자리를 만들자는 사회적 제안을 하기도 했다.


대한은퇴자협회를 설립하기 전부터 사재를 털어 노년유사체험 장비를 구입했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교육법을 공부했다. 대략 8000만원이 들어갔다.

 

2003년 1월 프레스센터에서 국내 최초로 노년유사체험을 소개한 뒤 세 차례에 걸쳐 65명의 강사를 교육, 배출했다. 지금까지 4000여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들이 노년유사체험을 통해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이 뿐 아니다. 2004년부터는 고령자를 많이 채용하는 회사, 정부나 가족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생활하는 고령자를 찾아 연례행사로 시상식도 치르고 있다. 어르신들께 희망과 사회적 존재감을 되찾아 드리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국가가 사회적 약자인 어르신들이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적절한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냈다.

 

우리 정부가 1990년 유엔 ‘국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서명했고, 이 협약 9조와 11조에는 ‘국가는 국민들에게 적절하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적 보험을 갖게 해줘야 한다’고 명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협약에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대한은퇴자협회의 입장이다.


‘영 히어로’(young hero) 운동을 통해 장노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불러들여 고령화에 대비토록 유도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고령화 문제는 궁극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겪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세대통합도 노리고 있다. 대한은퇴자협회의 캠페인에 노소가 함께 짝을 이루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정부와 사회를 향해 열정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힘이 부칠 때가 많다.


“무감각하고 무능력한 정부 당국과 이윤이라면 사회적 양심까지 내팽개치는 기업의 냉엄함이 가장 힘듭니다. 정부 당국을 찾아가 아무리 하소연해도 담당업무가 아니라며 일언지하에 고개를 돌릴 때는 주저앉고 싶습니다. 사회적 책임에 무관심한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명룡 회장은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겠다면서 겨우 쉰 중반 밖에 안 된 근로자에게 정년 보장할 테니 임금 삭감하자고 협박하는 기업도 있는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장노년층의 무관심과 안이한 태도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뭔가 해주기 바라는 노년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에 베풀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흔한 자동차 한 대 못 굴리고 있는 주명룡 회장. “그 돈이면 직원들 월급 더 주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더 많이 불러 모아 올바른 은퇴문화 정착과 노년층의 복지향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회운동가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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