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서울 시니어 일자리 엑스포
“경비원 뽑는데 무슨 엑스포냐”
…“편협한 직종·낮은 보수는 현실”
2012 서울 시니어 일자리 엑스포
“경비원 뽑는데 무슨 엑스포냐”
…“편협한 직종·낮은 보수는 현실”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09.28 16:14
  • 호수 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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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유한킴벌리가 주최하고 서울노인종합복지관협회, 서울시고령자취업알선센터협회,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주관한 ‘2012 서울 시니어 일자리 엑스포’가 9월 25~26일 이틀 동안 서울 강남구에 자리한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개최됐다. ‘풍요로운 노년, 변화의 시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펼쳐진 이번 박람회는 일자리 정보교류관, 일자리 서비스관, 일자리 채용관 등 모두 3개 전시실로 나뉘어 진행됐다. 지난해까지는 여성과 노인 등 취약계층을 아우르는 행사로 진행됐지만 올해는 ‘중고령 근로자’를 위한 일자리 행사로 진행됐다. 엑스포를 방문한 어르신들은 이런 행사가 마련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면서도 규모에 비해 실속 있는 채용정보는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르신들이 느낀 엑스포의 개선점들, 구인 업체들이 선호하는 인재상 등 엑스포 안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현장에서 들었다.

▲ 오전 10시 개장에 앞서 길게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는 어르신들.
▲ 어르신들이 3전시실 ‘일자리 채용관’에 마련된 채용 공고 게시판을 주시하고 있다. 이번 엑스포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6000여명의 어르신이 방문했다.

9월 25일 오전 9시 50분, ‘2012 서울 시니어 일자리 엑스포’가 열린 SETEC(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 정문. 오전 10시 예정된 개장까지 10여분이 남았지만 구직을 위해 이른 시각부터 집을 나선 어르신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전 10시 정각, 200여명의 어르신들이 줄을 맞춰 입장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끝이 날 듯, 끝이 날 듯 하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긴 줄이 어르신들의 취업의지를 대변하는 듯 했다.

이틀 동안 치러진 이번 박람회는 1전시실 ‘일자리 정보교류관’, 2전시실 ‘일자리 서비스관’, 3전시실 ‘일자리 채용관’으로 진행됐다. 정보교류관은 어르신들이 다양한 일자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서비스관은 외모 등 이미지 컨설팅을 비롯해 취업과 관련된 기본 교육, 각종 상담 등이 이뤄졌다. 이번 엑스포의 핵심인 채용관에서는 공공부문 및 민간기업의 일자리 채용이 진행돼 구직 어르신들과 구인 업체가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자원봉사자들도 사진촬영 및 문서 작성을 도우며 열기를 더했다.

정보교류관과 서비스관은 다소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로 참관하는 어르신들이 적었다. 당장 구직이 급한 어르신들이 1·2전시관 관람을 생략한 채 곧바로 채용이 이뤄지는 3전시관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새로운 일을 체험하거나 교육받는 것보다는, 구인업체에 서둘러 지원하기를 바랐다. 김모(64)씨는 “체험관을 둘러봤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없어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처럼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정보교류관과 서비스관에 마련된 콘텐츠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1·2전시관에 마련된 프로그램 가운데 구직 활동과 전혀 상관없는 네일케어(손톱관리), 카페 등 무료 편의서비스에만 사람이 몰렸을 뿐이다.

▲관리·미화직에 한정된 직종…
용돈 수준의 저임금에 ‘한숨’

어르신들은 서울시가 마련한 이번 엑스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어르신들께 다가갔다.

김화자(73) 어르신은 “노인들은 몸이 불편해 일자리를 구해도 먼 거리를 이동할 수는 없는 만큼, 자신이 사는 지역 내의 구인 정보만을 보게 된다. 그런데 구인정보가 지역별로 정리되지 않은 채 넓은 전시관에 흩어져 있어 찾기가 불편했다”고 말했다. 김 어르신의 말 대로 전시관 안의 구인업체 배치는 지역이 아닌 직종을 기준으로 구분돼 있었다.

김화자 어르신은 “일자리 종류가 많은 것 같지만 내 지역에 한정해 보면 사실 손에 꼽힐 정도여서 하나도 지원하지 않았다”며 “집 주변 복지관을 찾아가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허탈감을 숨기지 않았다.

신 호(63)씨도 “원하는 구인업체를 찾지 못했다”며 “3개 업체의 입사지원서를 작성해 왔지만 1개 업체에만 제출했다”고 했다. 신씨는 퇴직 전, 관리직에 종사했던 경력을 살려 관련 업종에 취업하기 위해 엑스포를 찾았다. 그러나, 엑스포에 참여한 대부분의 업체가 경비원을 비롯해 환경미화원 등을 원했기 때문에 신씨의 욕구를 채워줄 업체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노인 개인의 재능과 특성이 모두 다른데, 구인업체들은 모든 노인을 단순 업무를 담당하는 저가 인력으로만 활용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황중평(69)·김수자(69)씨도 비슷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황중평씨는 “다양한 업체가 구인을 한다고 해서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대부분이 경비원과 미화원이었다”며 “젊은 시절 조경계통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리고 싶었지만, 관련 업종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내게는 실속 없는 박람회였다”고 말했다.

김수자씨도 “은행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취업하고 싶었지만, 온통 요양보호사 구인정보뿐이었다”며 “요양보호사로 취업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는데, 솔직히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자격증을 따서 취업하겠냐”고 반문했다.

어르신들은 구인업체의 근무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대부분의 구인업체들은 하루 8~9시간의 종일근무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중고령자의 체력적 특성을 감안, 급여가 다소 적더라도 4~5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근무하는 파트타임 근무제가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수자씨는 “대부분의 업체가 오전 8~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근무하길 희망하고 있는데, 이처럼 긴 근무시간을 감당할 만큼 체력이 뒷받침되는 노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도 문제가 됐다. 조모(75) 어르신은 “근무시간에 비해 임금은 많아야 80만~100만원 수준이고, 20만원인 곳도 있었다”며 “이처럼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로 생활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주최측이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엑스포를 홍보했지만, 노인들이 실제로 느끼기에는 일자리의 질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형식적 행사”라고 잘라 말했다.

▲업체 측,“이력보단 태도 고려”
한편, 어르신을 고용하기 위해 엑스포에 참가한 업체들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가장 많은 어르신들로 북적였던 대기업 직종의 업체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기업 이미지 개선 등의 차원에서 어르신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구분 없이 구인업체들이 고용하기 원하는 고령근로자의 기준은 비슷했다. 업체들은 ‘자기 일처럼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일하며, 젊은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어르신’을 원했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도 어르신들을 고용한 적이 있었는데, 함께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권위적인 태도로 대한다거나 원만하게 지내지 못해 오히려 젊은 직원이 퇴사한 경우가 있었다”며 “어르신들이 일자리를 통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면, 나이 어린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도 “사실 어르신들을 고용할 때는 이전의 이력보다는 면접 시 얼마나 용모가 단정하고 적극적이며 건강하신지를 눈여겨보게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업체 관계자들은 젊은 시절의 경력을 활용하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많은 현실에 대해 “사실상 어르신들을 고용하고 있는 업종이 단순 업무직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능력을 바라지는 않는다”며 “아직까지는 업체들이 어르신들을 고용하는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엑스포측, 일자리 발굴 시급 공감
… 25개 구 센터서 사후관리 계획

시니어 엑스포 주최측 관계자는 전시관 내에 지역별 구인정보가 흩어져 있어 어르신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지적에 대해 “이번 엑스포는 서울시 전역의 어르신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행사인 관계로 지역별이 아닌 직종·직군별 구분으로 구성했다”고 해명했다. 또, “이번 행사를 통해 구직을 신청한 어르신들은 엑스포 행사가 끝난 직후, 각 25개구에 분산된 고령자취업알선센터가 사후관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어르신들께 가장 접근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인 업체의 직군이 보안관리 및 미화직종에 편중돼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일부 직군에 많은 일자리가 분포돼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앞으로 어르신 신규 일자리 발굴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범국가적 차원에서도 새로운 일자리 발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하지만 올해 엑스포에는 영화관 직원, 맥도날드 매장직원 등 13개의 대기업군이 참가해 어르신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이 관계자는 구인 업체의 급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 청장년층 일자리의 경우도 ‘80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계약직 고용이 만연해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이는 비단 어르신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어르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전문적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점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답했다.
글=이다솜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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