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전두환 前대통령 ④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전두환 前대통령 ④
  • super
  • 승인 2006.08.25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터가 센 청와대, 적게 먹지 않으면 소화도 잘 안 돼”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우리 역사입니다.
본지는 정치적 평가나 정파적 편향성을 지양하고 전직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지는 나라와 민족에게 불의한 일이나 좋지 않은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의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획시리즈로 미뤄두고, 기왕의 기획시리즈를 계속하며 ①이승만 ②윤보선 ③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4번째로 전두환 전 대통령 편을 4회 연속 게재합니다. 백세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 노년·문화 노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획 취재팀〉


「명심보감(明心寶鑑)」 치가(治家)편에 ‘자효쌍친락 가화만사성(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자 그대로 자식이 효도하면 부모가 즐겁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핵가족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인지 모르나, 노년에 이르러 건강하게 사는 법으로 이만한 명약이 다시없을 것 같다. 퇴임 후 18년 동안 전직으로 있으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얘기가 될 터이다.

 

가장이 대통령까지 지낸 집이라면 웬만하면 화목하게 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 그 화목함이 남다르다는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아들인 재국씨는 지금도 매주 주말이면 자녀들을 데리고 연희동을 찾아 전 대통령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손자들을 무척 좋아하는 자상한 할아버지라는 것.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손녀와 지내는 것만큼 몸에 좋은 기운이 더 있을까.


대통령 재임 중에도 전 대통령은 자녀들이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하면 절을 받고, 손자와 손녀가 보고 싶어 공항에 마중을 나가기도 했다.

 

손자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여 몸살이 날 지경이라거나, 자신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는 농담도 여러 차례 했다. 손자손녀들과 함께 있을 시간을 배려하고 좋아하는 장면이 대통령 재임 중 기록물에 자주 나온다.


어린 자녀,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취미생활을 중단하기도 했다.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들과 오찬 자리에서 성냥을 수집하다가 자제들이 위험할 것 같아 접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손녀 앞에서는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표현대로 ‘대통령의 굴욕’이라 할 정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요새 내 손녀는 내 담배피우는 흉내를 그대로 해.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려고 해요” 그래서 손녀가 보는 데서는 담배를 안 피우고 화장실에 가서 피웠다는 것이다. 바쁘게 살던 재임 중에 그랬으니 퇴임 후에는 오죽하겠는가 싶다.

 

취미로 권총 30종 수집한 적 있어

수집 취미 이야기가 나왔으니 전 대통령의 수집 취미를 알아보자. 재임 중에도 세계 각국의 국가원수들과 식사했을 때의 메뉴를 수집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뜻을 비친 적이 있다.

 

청와대를 방문하여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청와대에 온 기념으로 메뉴, 성냥, 담배를 가져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군생활을 할 때 취미로 수집한 것은 권총이었다. 30종 가량을 수집했다고 한다. 김성익씨가 기록한 「전두환 육성증언」에 의하면 군인도 총기의 소지는 경찰의 통제 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경찰서에 전부 신고하고 항상 경찰에 맡겨놨어요. 그 후에 군부대에 다 기증해 버렸어요. 여자 손가방에 들어가는 작은 것도 있는데, 총알이 성냥 알맹이만한 장난감 권총 비슷한 것도 있고 아주 재미있어.”

 

김성익씨는 전 대통령이 무엇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때 처음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잡기는 어땠을까. 밝고 쾌활한 리더십을 발휘한 전 대통령이어서 얼른 와 닿지 않지만, 바둑도 꽤 잘 둔다. 인터넷에 있는 기록사진을 보면 국수 조훈현 9단과 9점을 깔고 바둑을 두는 사진이 있다.

 

서예 솜씨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나이 들어 서예를 하게 되면 대개 스승을 흉내 낼 뿐 자기 체가 없다고 하는데, 전 대통령은 ‘전두환체’가 있다는 얘기다. 노래는 바이브레이션 같은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부르며, ‘사나이 맹세’는 즐겨 부르는 18번 곡이다.


그렇다면 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재미있었을까. 전 대통령은 퇴임 무렵 인간적 존재로서의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회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누리는 혜택, 행사하는 권한들이 클 터이므로 그 불편함이야 악어의 눈물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를 ‘흉가’라고 표현하는 얘기를 들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대통령만큼 자유가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대통령이 움직이면 경호원들이 다 지키고 있고 일거수일투족이 통제 속에 있습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할 수도 없고, 친척이고 친구도 없어지고 만날 수가 없어요.”


전임자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청와대에서의 생활 자체가 인간으로서 힘겨웠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청와대가 이상한 곳이라서… 터가 센 곳입니다”라면서 친척이 보고 싶어도 한두 번 부르면 잡음이 생기고 여러 사람이 거기 붙어서 이권 운동을 해서 공중에 뜨더라는 것이다. 친구도 두 번 부르면 이권을 가지고 오더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소식 시작

“밖에 있으면 친척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사람 사는 맛이 그런 거 아닙니까. 대통령이라고 식사 네 끼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 들어와서는 그 세 끼도 양을 반으로 줄였어요. 적게 먹지 않으면 소화가 안 돼요. 등산, 산책도 팔자 좋을 때 하는 거지. 이러다 저러다 보면 참 피곤해요. 매일 보고받고 사람 만나고… 즐거운 보고가 한달에 몇 건이 안 됩니다.”


강해보이는 전 대통령이었지만 7년 동안 적지 않게 내상을 입고 있음을 할 수 있다. 지금도 식사량은 그때와 비슷하다. 전 대통령의 소식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지금도 물론 육식은 거의 안 하고 야채 위주의 쌈을 즐긴다. 그래서 부인 이순자 여사도 퇴임 무렵에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종종 말했다고 한다.


「전두환 육성증언」에 전 대통령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지도자론을 얘기한 기록이 있다.
그중 몇 가지를 보면 첫째 요건으로 건강을 꼽았다. “사람이 살면서 무엇을 하든지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노력, 즉 체력단련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 건강하고 체력이 강하면 매사에 자신이 있고, 상황 판단이나 분석을 할 때 명확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신뢰감을 세 번째 요건으로 꼽았다.

 

언행일치를 강조하면서 “지도자는 우선 그 사람의 부인과 자식 그리고 자기를 보좌하는 측근으로부터 믿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신뢰는 곧 존경으로 바뀔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꼽은 것은 인간적인 매력.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맛이 당기는 사람, 한번쯤 더 만났으면 싶을 정도의 매력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면서, “작은 단체는 물론 나라의 지도자는 항상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이것이 곧 국민을 위하는 마음가짐이다.

 

보좌관이나 휘하 요원들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경제적 문제, 금전 문제에 있어서 손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막역한 지기에게 권력을 넘기고 물러나면서 남긴 이 지도자론은 새겨볼만 하다. 퇴임 후의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스케줄이 거기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듯 하다는 얘기다. 퇴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서 2년 가까이 머물렀다.


백담사의 추위와 여름의 곤충들은 전 대통령 부부가 전직이라는 것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았다. 이순자 여사의 다리는 물것에 물려 부풀고, 방충망 앞에 떨어진 벌레를 전 대통령이 쓰레받기로 가득 받아낼 정도였다. 겨울에는 샘이 얼어붙어 도랑물을 먹기도 했다.


그것이 고난의 끝이 아니었다. 몇 년이 흐른 뒤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무슨 일인가로 27일을 단식하여 23일을 단식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을 깨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 대통령 스스로 지도자로서 첫 번째 요건으로 꼽은 건강을 잃지 않았다.


전 대통령의 퇴임 후의 고난은 따지고 보면, 전두환 대통령의 국민을 위한, 나라를 위한 선의의 결과이기도 했다. 5공화국 출범 과정의 문제는 차치하고 권력의 속성으로 보아 그렇다는 얘기다. 어쨌든 정권연장 유혹을 이겨냈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