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 정금자 지회장 취임 중흥기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 정금자 지회장 취임 중흥기
  • 김용환 기자
  • 승인 2012.11.23 15:06
  • 호수 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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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심 대한노인회장이 정금자 베트남지회장에게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지회장 정금자)가 1대 이순흥 지회장, 2대 조병기 지회장을 거쳐 3대 정금자 지회장을 선출함으로써 중흥기를 맞고 있다.
베트남노인회는 1998년 11월, 12명의 회원이 뜻을 모아 원로회를 조직하고 현 베트남지회 고문인 이성재 초대회장을 비롯해 남정록 회장, 차상덕 회장, 조병기 회장, 이순흥 회장을 중심으로 10여년간 활동해 왔다.
지난 2008년 9월 5일 현재의 노인회관을 설립한 가칭 베트남연합회측과 원로회로 노인사회가 양분돼 있는 가운데 2008년 11월 9일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가 설립되고 이순흥 회장이 초대 지회장이 됐다. 이후 양분된 모습이 주변에 누가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베트남의 노인들은 통합노인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역사적인 대통합에 있어서 이순흥 회장의 값진 양보와 조병기 회장의 통합회장 수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8월 31일 제3대 회장선거에서 정금자 회장(한인회 부회장 겸 한인회 여성가족위원장)이 회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베트남지회는 노인회관에서 독거노인 4명의 숙식 일체를 무료로 제공하는 한편 서예작가인 정정부 부회장이 이곳에서 5년째 한인회 문화센터와 한국국제학교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서예지도를 하고 있다.
호치민시 한인사회에서 헌신적인 여성지도자로 추앙 받고 있는 정금자 베트남지회장은 “무엇보다 노인사회의 화합과 단합을 중시하고, 회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한인사회를 위한 교육과 봉사에 앞장 설 것”이라며 “앞으로는 영어, 일본어교육, 예절, 역사교육은 물론 투자 상담과 베트남 안내, 휴양지 개발 등에 나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용환 기자 efg@100ssd.co.kr
 

[특별기고]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 정금자 지회장 중심 활력 ‘확인’

일본에 이은 두번째 국제교류협력
극진한 환대로 끈끈한 우정 재확인

▲ 베트남지회 임원들이 공항에서 대한노인회 임원들을 영접하고 있다.
▲ 대한노인회 임원진이 베트남지회를 방문,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한노인회 임원들이 베트남총영사관에서 간담회를 하고 있다.
▲ 베트남방문단이 호치민시 한인국제학교에서 간담회를 갖고 있다.
▲ 베트남지회가 대한노인회 임원들을 위한 환영만찬을 베풀었다.

▲ 어호선 대한노인회 이사·수필가
대한노인회 연합회장 및 이사 등 모두 25명이 해외 지회를 격려하기 위해 11월 12일부터 4박6일 일정으로 베트남지회를 방문했다. 지난해 국제교류협력차 방문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와는 2시간 밖에 시차가 나지 않았으나, 한 밤중에 도착해 3시간 정도 하롱베이로 이동한 관계로 일행들은 다소 피로한 기색이었다.

첫날에는 크고 작은 3000여개의 기암괴석과 섬들로 이뤄진 하롱만의 절경을 감상했다. 이곳엔 이름이 붙여진 섬만도 790개에 달한다고 한다. 유네스코가 1994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오래 전에 보존가치가 높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일행은 ‘풍동 16호’ 배에 탑승해 키스바위섬과 땅콩바위섬 사자바위섬 등 수많은 섬 사이를 누비면서 자연의 신비감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곳의 특징은 아무리 성난 파도가 몰아친다 해도 수많은 섬들로 둘러싸여 있어 물결이 잔잔하다는 점이다. 배에서 잠시 내려 426개의 계단을 밟고 티토섬 정상에 올라, 세계 절경인 하롱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 몸에 만끽하기도 했다. 대한노인회 송영복 부회장 겸 광주연합회장, 한두현 부회장 겸 전남연합회장, 김준배 감사 등 ‘88삼총사’는 티토섬 정상을 밟은 것부터 구찌터널 견학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선상에서 다금바리회로 맛있는 오찬을 마치고 승솟섬에 위치한 동굴 감상에 들어갔다. 석순과 석주 등은 여느 동굴과 다름이 없었으나 규모도 크지 않고 원형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천장이 특색이었다.

다음날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로 이동했다. 박병용 대구연합회장은 “46년 전 육군 대위로 주월한국군사령부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이 더욱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또, 송태진 부회장 겸 충남연합회장은 달리는 버스 속에서 간밤에 쓴 ‘베트남의 하늘’이라는 시를 낭송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일행은 이 나라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이 살았던 집과 시신이 안치된 ‘호치민광장’을 찾았다. 일명 ‘바딘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광장 한 편엔 일주사(연못에 기둥 하나를 세워 지은 아주 작은 사찰)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의 오른쪽으로 돌면 아들, 왼쪽으로 돌면 딸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인지,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어 ‘씨클로’(세발자전거)를 타고 ‘되돌려 준 칼의 호수’로 유명한 호암끼엔공원과 하노이 번화가를 둘러봤다.

둘째 날 오후 늦은 시간, 과거 월남의 수도였던 호치민시(사이공시)로 이동하기 위해 국내선 항공기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는 대로 양쪽엔 우리나라 대기업의 대형 광고 간판들이 촘촘히 달려 있었다. 은근히 자긍심이 발동되기도 했다. 2시간여 비행 끝에 호치민 공항을 나오자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 정금자(鄭今子) 지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이미 마중을 나와 있었다.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 방문 환영’이란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종원(이충근 한인회장 부인)씨를 비롯해 신경선 탑건설 대표, 이원자 여성가족위원회 부위원장, 이영미·이난실·신채연 회원 등이 방문단 전원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등 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베트남지회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금호아시아나 빌딩 내에 있는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이 자리엔 오재학(吳在學) 주호치민 총영사를 비롯해 베트남지회 정금자 회장과 임원, 그리고 호치민 여성회 이은숙 회장, 전대주 민주평통 베트남지회장, 강충식 전 호치민상공인 연합회장, 이희승 한인회 사무국장 등 모두 50여명이 동참했다.

먼저 이 심 대한노인회장이 베트남지회 제3대 회장으로 당선된 정금자 회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상호 참석 인사들을 소개했다. 이후 간담회를 겸한 만찬에 들어갔다. 양측 참석자들은 금방 오랜 친구처럼 호탕한 웃음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노이에서도 오토바이 행렬이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호치민시에선 아예 물결을 이뤘다. 이곳의 오토바이 등록 대수만 무려 900만대에 달한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승용차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어디를 가는지 잘도 빠져나가는 오토바이들. 내가 운전기사라면 얼마 못가 사고를 낼 게 뻔했다.

셋째 날은 공식적으로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를 방문했다. 현재 베트남지회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4층인데,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 월 2500달러(약 270만원)의 임대료를 충당하고 있단다. 특히 자랑할 일은 의지할 데 없는 독거노인 4명에게 숙식 일체를 무료 지원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일행은 베트남지회를 방문한 뒤 기념품 증정 및 사진촬영 등 간단한 행사를 길거리 공원에서 진행했다. 이 심 회장은 현지 독거노인들을 위해 금일봉을 전달했다.

그런데 인근 주택가에서 불법 집회를 한다면서 신고하는 바람에 공안들이 들이닥쳤다. 집회의 자유가 없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절감했다. 시민들의 신고정신은 철저했다. 황급히 행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행선지인 호치민 총영사관으로 향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로 알려진 총영사관 2층 소강당에서, 이 심 회장을 비롯한 일행과 오재학 총영사 등 직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대한노인회는 경기 화성시지회의 자랑스러운 짚공예품인 ‘지프로’를 전달했다. 이어 베트남의 이해를 돕는 비디오를 시청한 뒤 대화를 나눴다.

베트남은 1970년대 우리나라 수준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한 나라임을 실감했다. 베트남은 인구 8700만명으로 세계 13번째로 인구대국이다. 특히 20대와 30대 젊은층 인구가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베트남의 밝은 청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1975년 통일 이후 하노이에 수도를 내주긴 했지만, 경제의 중심지이자 최대 도시는 역시 호치민시였다. 김재천 영사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데 그 숫자가 1700여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4년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도 무비자 입국이 허용됐지만, 어느 나라 국민이건 영주권 부여가 아닌 3개월 단기 비자로 허가되기 때문에 교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어, 호치민시 한인국제학교(이사장 전종규·교장 정회택)를 찾았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정직·봉사·개척’이란 교훈이 첫 눈에 들어왔다. 규모로 봐선 세계 각국에 설치된 30개 국제학교 가운데 가장 큰 학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6000평 대지 위에 신·구동으로 건축된 국제학교는 초·중·고교를 비롯해 유치원과 한글학교·특수학교 등 모두 6개의 학교로 나뉘어 운영 중이었다. 원어민 교사 50명을 포함해 모두 148명의 교사들이 1520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초등학교의 경우, 담임교사가 2명이라고 하는데 1명은 원어민 교사이고, 1명은 한국인 교사라고 한다. 이 국제학교 학생들의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이 갔다. 3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식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한 식사는 여느 식당에서의 식사보다 맛이 있었다. 이어 교장실에서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이 심 회장은 정회택 교장에게 금일봉을 전달했다. 이곳의 고등학교 졸업생 80% 이상이 서울 등 고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이 하나의 사실만 미뤄 봐도,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가 창의적이고 건실한 글로벌 인재육성이란 목표 달성에 조금도 차질이 없을 것이란 데 공감하며 교문을 나섰다.

점심식사 후에는 전용 버스를 이용해 메콩 델타(Mekong Delta) 지역인 ‘미토’로 이동했다. 가장 큰 섬 중의 하나인 유니콘섬에서는 과일농장 방문과 전통가옥촌을 둘러보고 열대 과일을 시식하는 기회도 가졌다. 열대 과일과 차를 시식하는 짬을 이용해, 농장의 합주단이 아리랑을 연주하고 불러줘 감명을 받기도 했다. 이어 4인이 1조가 돼 정크선(소형 보트)에 나눠 타고 물 양쪽으로 야자수가 무성한 열대 우림 속을 빠져나가는 스릴도 만끽했다. 이날 오찬은 선상 식당인 쫄룽레스토랑에서 가졌다. 코끼리 귀를 닮은 생선을 정통 베트남 쌈에 싸서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마지막 날은 베트남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구찌터널 관광에 나섰다. 이곳은 프랑스 식민통치를 반대했던 베트남인들이 게릴라 활동을 위해 처음 만든 터널이다.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상대적으로 모든 면으로 열세였던 베트남인들이 미군과의 효과적인 전투를 위해 이 터널을 이용했다고 한다. 터널의 총 길이는 250km로 마을과 마을이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지하 4층 규모를 갖추고 있어 전쟁 당시 베트남인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입구는 체구가 작은 베트남인들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을뿐더러, 나뭇잎 등으로 위장해 노출을 막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일행 몇몇은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터널 입구로 들어가 출구로 나오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특히 전태식 부회장 겸 충북연합회장은 다소 육중한 체격에도 수직으로 된 소형 터널을 들어갔다 나오는 용감함을 보여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오후에는 베트남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전쟁기념관을 관람했다. 3층까지 둘러보면서 전쟁의 처참함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되새겼다. 이어 프랑스에서 모든 자재를 수송해 건축했다는 노트르담성당과 웅장한 외관으로 기차역을 연상케 하는 중앙우체국을 둘러보면서 베트남의 뼈아픈 역사의 상흔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저녁 시간에는 선상에서 베트남 야채볶음과 해산물, 샤브샤브 그리고 생선탕수육 등을 들면서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특히 이 선상 식당의 전용 연주단과 미모의 가수가, 아리랑과 소양강처녀 등 우리 가요를 열창하는 가운데 우리 일행에게도 마이크를 넘겨줘 더욱 흥겨운 한마당이 됐다. 특히, 정금자 베트남지회장을 비롯한 임원 다수가 저녁 만찬장에 또다시 자리를 함께 해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일행은 황인한 서울연합회장이 마련한 반주를 곁들이면서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베트남 거리의 야경을 전용 버스로 둘러보면서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탓에 활기에 찬 면모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저녁 길거리 공원엔 남녀 연인은 물론, 삼삼오오 가족들이 나와 더위를 식히며 다정히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베트남지회 일행은 호치민 공항까지 배웅 나와 떠나는 일행에게 빨간 장미꽃 한 송이씩 안겨주는 등 끝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염수환 울산연합회장은 “한국에 오면 이 신세를 꼭 갚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해외지회 방문은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한 뜻있고 보람찬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대한노인회 베트남지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본다.

베트남의 하늘
송태진

오천광년 우주의 중심축 사이로
이 한 몸 티끌 되어
이국땅 하늘의 별빛을 보다.
사십 여 년 전 패권주의자들의 포화는 베트남 지축을 흔들고
붉은 피 천지에 뿌렸다.
고엽제로 말라죽은 나무처럼 5000여명의 대한민국의 아들들과
수백만 명의 베트남인 비명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오늘도 패권주의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종교와 이념을 내세워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며 모든 것을 삼키려 하고 있다.
생과 멸을 넘어서면 열반인데 말이다.
패권주의자들은 지금 지옥에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으리라.
소각할 수 없는 기억 떠올리며 고해의 마지막 시간되어
나 누구의 노예로 밥도둑만 되지는 않으리
하늘의 뜻을 따른 진솔한 삶, 그 자취를 내 영혼의 벽에 걸어 장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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