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제2의 전성기 누리는 어르신들
“우울증 극복하고 잊고 있던 꿈도 찾아”
연극으로 제2의 전성기 누리는 어르신들
“우울증 극복하고 잊고 있던 꿈도 찾아”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2.11.30 12:30
  • 호수 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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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여가생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어르신들의 여가 활동에 대한 관심 또한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전국 각지의 복지관 및 문화원 등을 중심으로 어르신 대상 연극반과 동아리 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젊은세대에게 사회라는 무대를 내주고, 무대 뒤편으로 움츠러들던 어르신들이 다시 무대 위에서 호령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어르신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크고 우렁찬 목소리, 당당한 태도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편견을 걷어내기에 충분하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방문화원 어르신문화학교’ 공모사업에 선정돼 연극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성북문화원 어르신 연극놀이교실 ‘희喜낙樂’(희희낙낙)의 단원들을 만나 연극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성북문화원 연극놀이 교실 ‘희희낙낙’의 어르신들이 11월 28일 정독도서관 시청각실 무대 위에서 연극 ‘할머니도 꿈이 있어’를 공연하고 있다.
11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은 어르신들의 활기찬 몸짓과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방문화원 어르신문화학교’ 공모사업에 선정된 성북문화원 어르신 연극놀이 교실 ‘희희낙낙’의 주인공들이 ‘할머니도 꿈이 있어’라는 연극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

올해 5월 신청을 받아 꾸려진 ‘희희낙낙’은 11월까지 7개월 동안 25회 이상의 교육을 진행했다. 이날 공연은 그 이후 가진 세 번째 공연이었다. 주인공 ‘할머니’를 열연한 송양헌(77) 어르신 등 10여명의 어르신들은 60세부터 80세까지의 고령층이지만, 열정만큼은 그 어떤 신인배우 못지않게 뜨거웠다.

한 할머니가 가족과 이웃들의 만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에 대한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해 끝내 이뤄낸다는 연극의 줄거리도 어르신들의 아이디어를 하나씩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온 어르신들을 만나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연극 활동 이후의 삶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Q.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송양헌(77)=초등학교 4학년 학예회 때 연극 무대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워 포기했던 것이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이런 미련을 품고 있다가 우연히 지역신문에 실린 연극교실 공고를 보고 신청하게 됐다.

김혜자(70)=중학교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해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시작한 연극인데 지금은 후회 없이, 정말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혜양(69)=연극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서지도교육을 했다. 책을 읽어줄 때 단지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연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

Q. 연극을 시작한 뒤 달라진 것이 있는지.
손경옥(73)=사실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하루 종일 살림만 하다 보니 살맛이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연극을 하게 됐고, 그 뒤로 우울증이 없어졌다. 아이들을 키울 적에도 낙엽만 봐도 울적할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었다. 관객으로서 연극을 볼 때도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렇게 늦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돼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요즘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젊어졌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손완순(65)=65세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다. 일은 생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따분하고 답답한 느낌이 많다. 하지만 연극을 시작하게 된 뒤로는 연습을 하면서 정말 많이 웃는다. 웃겨서 웃고, 틀려서 웃는다. 그러다보니 무척 즐겁고 스트레스도 많이 풀리는 느낌이다. 또, 이번에 무대에 오른 연극은 참여자들이 직접 만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표현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임화숙(80)=어릴 때는 학예회나 방송에 참여해 연기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연기와는 점점 멀어졌는데, 친구를 통해 연극 교실을 소개받아 참여하게 됐다. 연극 교실 활동을 통해 ‘내게도 이런 끼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돼 기쁘고 즐거웠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좋다. 연극 교실 이름이 ‘희희낙낙’인데, 정말 이름처럼 희희낙락하게 됐다.

임은숙(66)=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됐는데, 연극을 통해 없던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 또, 함께 연습하고 공연하는 단원들과 마음이 잘 통해서 무척 재미있다. 연습 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결석이라도 하게 되면, 그날 극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지곤 한다.

박혜양(69)=연극을 지도하는 장재화 선생님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 장 선생님은 젊고 톡톡 튀는 성격이라 늘 활력이 있다.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지시할 때도 강압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한다. 참여자들이 이러한 선생님의 영향으로 더욱 밝아졌다.

Q. 청일점인 이영근씨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이영근(65)=보시다시피 연극에 참여한 남자는 나뿐이다. 남자들은 어디에서든 모이면 술을 마시거나 등산하는 정도가 문화생활의 전부다. 이런 식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우울증이 생긴다고 하지 않는가. 최근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성, 감수성을 강조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나 역시 평생 근엄하게 살아왔는데, 연극을 통해 살아보지 못했던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자유롭게 표현하게 됐다. 이를 통해 타인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연극을 하면서 ‘힐링’(치유)이 되는 것 같다.

Q. 연극 교실 활동을 통해 캐스팅이 된 분도 있다고 들었는데.
윤정호(62)=최근 학생들이 촬영하는 단편 영화의 할머니 역할로 캐스팅이 됐다. 그들이 나의 연기력을 보고 놀랍다며 선발해 기뻤다(웃음). 사실 어려서부터 배우가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보수적인 편이라 꿈을 접고 내내 전업주부로 살았다. 하지만 ‘희희낙낙’을 통해 연기를 하게 됐고, 지금도 연기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배워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이제는 TV 드라마를 볼 때도 ‘저 배우 참 힘들겠다’ ‘눈동자는 저렇게 해야 하는 구나’ 생각하면서 보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연극을 통해 존재의 이유, 살아가는 이유를 찾았다.

Q.‘희희낙낙’이 순항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의 소감도 남다르겠다.
김정현(성북문화원)=어르신 프로그램을 담당한 지 올해로 3년차다. 이번 어르신 연극놀이 교실은 특히 남다른 의미가 있다. 무사히 교육과정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문화나눔봉사단’을 결성해 연극 봉사활동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연극 공연을 선뵐 예정이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점차 이분들의 생각을 들으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실, 연극 연습이나 공연을 보면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어르신들은 이제 내 삶의 활력소가 됐고, 어디 가든 자랑스럽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

장재화(‘희희낙낙’ 강사)=모두가 한 식구처럼 돼버렸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우리 엄마인지 이모인지 친구인지 모르겠다. 사랑스러워 깨물어주고 싶을 때도 있고 미워서 때려주고 싶은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결과물을 떠나서 이 관계 자체가 소중하다. 어르신들이 “뒷방 늙은이로 남은 생을 쓸쓸하게 살다 갈 줄 알았는데, 여기에 나와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껴 행복하다”고 말하실 때 정말 가슴 벅찼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현대인이 우울하고 외로운 이유는 모든 것을 ‘혼자’ ‘따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은 함께 하는 작업이다. 연극 교실에서 함께 소통하다 보면, 우울증은 저절로 나을 수 있다.

Q. 끝으로 연극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임화숙=연극을 통해 큰 즐거움을 느꼈다. 헌데 이 즐거움이 내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가족, 이웃 등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됐다. 연극으로 기쁨전도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모임이 활성화 되고, 어르신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사회 전체가 젊어지고 기뻐질 것 같다.

손경옥=내게 연극은 보약이고 청량제다. 앞서 말했듯 연극을 시작한 뒤로 우울증이 가셨기 때문이다. 연극 활동이 웬만한 약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박혜양=사실 우리 노인들은 살날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한 없이 절망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지막 그 날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면 두려움, 절망은 잊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나는 젊다’ ‘소녀 같다’고 생각하며 산다. 모두 힘들수록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글=이다솜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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