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 위해 ‘배우고, 투자한다’
신(新) 노년세대, 지갑열 때 과감히 열어
자아실현 위해 ‘배우고, 투자한다’
신(新) 노년세대, 지갑열 때 과감히 열어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3.01.18 13:09
  • 호수 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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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퍼머머리 ‘옛말’ 외모 투자 과감
활기차고 당당하게 ‘서드에이지’ 보내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노인들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다. 재취업·자원봉사 등을 통해 활동적으로 노후를 설계하는‘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인 동시에 자신에게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신(新) 소비세대’로 급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활기차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고 애쓴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영원한 현역’을 꿈꾸며 적극적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노년세대의 특징을 표현한 다양한 신조어들까지 생겨났다. 활기차고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는 장노년층 신조어를 통해 새로운 노년세대의 특징과 성향을 살펴본다.

 

▲ 활기차고 당당하게 노후를 설계하는 노년세대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취미, 영어, 컴퓨터 배우기에도 적극적이다. 사진=임근재 기자
# 대기업 임원으로 은퇴한 김갑을(67)씨는 캐주얼 의상을 즐겨 입는다. 펑퍼짐하게 큰 옷보다는 체형에 맞는 청바지나 스포츠 브랜드 의류를 선호한다. 그는 매주 3~4번 직장 근처 스포츠센터를 찾아 수영과 헬스를 즐긴다. 장년 남성들의 상징인 ‘똥배’가 아닌 균형 잡힌 근육을 자량한다. 무엇보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등산과 컴퓨터 배우기에 열심이다. 그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한다”며 “보다 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지금부터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용자(65·여)씨는 아직도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40~50대 나이로 본다. 주름 없는 하얀 피부에 짧고 세련된 헤어스타일, 얇은 뿔테 안경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세 명의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만의 건강·몸매관리 비법은 꾸준한 자기관리와 ‘평생현역’을 가능케 한 일자리다.

김 씨와 박 씨처럼 은퇴 후에도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은퇴 후 주어진 20~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다 가치있게 활용하려는 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활기차고 당당하게 인생을 즐기고 자신을 가꾸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재취업·창업, 자원봉사 등의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평생 가정주부로 생활했던 60대 여성들이 자녀 출가 후 일자리를 얻어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문화적 욕구가 높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등 정보기기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이처럼 자아실현을 통한 삶의 질 향상에 적극적인 노인들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머츄리얼리즘’ (Maturialism)과 ‘서드에이지’(Third Age)다.

머츄리얼리즘(Maturialism)은 성숙하다는 의미의 ‘머츄어’(mature)와 현실주의라는 의미의 ‘리얼리즘’ (realism)을 합성한 조어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쏟는 소비 행태’를 뜻한다. 2000년대 초반 자아실현 욕구가 높은 중장년층을 지칭해 사용된 용어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이 장노년층이 돼서도 동일한 욕구가 존재하자 이제는 신(新) 노년세대를 설명할 때도 사용된다.

신조어에 나타난 새로운 노년세대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요즘 노인들은 자신만의 품격을 유지하고, 여가를 즐기며, 취미를 개발하는 등 자신의 삶을 가꾸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러한 삶의 방식의 변화는 소비로도 나타나 자신의 품격 및 관심사에 걸맞은 상품 소비를 위해 프리미엄급 제품이나 전문가용 제품에도 흔쾌히 지갑을 연다. 아껴쓰고 인색한 것으로 인식됐던 노인들도 이제 ‘쓸 때는 쓸 줄 아는’ 소비층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서드에이지(Third Age)는 제3 연령기, 즉 은퇴 이후의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다. 생의 주기가 80세였던 시기에는 제3 연령기가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은퇴 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일과 여가활동을 영위하는 제2의 전성기로 표현된다. 이 단어는 미국 오클랜드 홀리네임스 대학(사회학)의 윌리엄 새들러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청년기인 10~20대를 ‘퍼스트 에이지’(First age), 일과 가정을 위한 30~50대를 ‘세컨드 에이지’(Second age)라 했다. 그리고 은퇴 후 건강하게 활동이 가능한 50대 중후반에서 70대까지를 제3의 연령기, 즉 ‘서드에이지’(Third age)라고 칭했다. 그 이후는 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인 ‘포스 에이지’(Fourth Age)이다.

패션·외모 관심높아…“자신에 대한 투자 아깝지 않다”
요즘 노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란 호칭을 스스로 거부한다.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것을 원하며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패션과 외모에 관심이 높다. 칙칙한 양복과 튀어나온 배가 상징적이었던 장노년층의 남성들도 캐주얼 의상을 즐겨 입는다. 자신이 직접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심지어 피부과나 마사지 숍을 찾는 이도 크게 늘었다. 특히 대중매체에서 50대 ‘꽃중년’들이 인기를 끌면서 고령의 남성들도 외모에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는 데 일조했다.

꼬불꼬불 파마머리에 펑퍼짐한 옷차림으로 상징됐던 ‘아줌마’ ‘할머니’들의 변신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들은 꾸준한 피부 관리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쉽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또한 젊은이들 못지않게 유행에 민감하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최근에는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사람을 뽑아 시상하는 ‘동안선발대회’까지 열리고 있다. 더불어 젊은이들과 당당히 경쟁하는 실버모델로 활동하는 이들도 많다.

이처럼 장노년의 삶을 멋지게 그려가는 이들이 늘면서 ‘루비족’ ‘노무족’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루비족은 상쾌함(Refresh), 특별한(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 젊음(Young)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신조어다. 젊은이들처럼 멋과 패션, 젊음을 추구하는 장노년 여성들을 일컫는다. 노무족(No more uncle)은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실용성과 멋을 추구하는 50~60대 남성들을 지칭한다.

루비족과 노무족은 달라진 장년층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들은 자신을 가꾸고 투자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건강과 젊음 유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사고와 생활을 추구하며 다른 세대와 융합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과거 억눌렸던 욕구가 많았던 여성 노인들에 대한 신조어들은 더욱 많다. 대표적인 신조어는 ‘나우족’과 ‘줌마렐라’다. 나우족(NOW, New Old Women)은 새로운 시대의 나이든 여성들이란 의미고, 줌마렐라(Zoomarella)는 아줌마와 신데렐라의 결합어로 아줌마면서도 신데렐라를 꿈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밖에 문화생활과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은 건강하고 매력적인 노년층을 가리켜 ‘하하족’(HAHA족, Happy Aging Healthy&Attractive), 영원한 젊음을 추구한다는 ‘샹그릴라족’, 노후를 즐기며 신중한 소비로 웰빙을 추구하는 ‘WINE족’(Well Integrated New Elder) 등의 다양한 신조어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장노년층의 가치 및 인식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억눌린 욕구해소 및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언급한다. 서울대 김난도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1940~50년대에 태어나 새롭게 노년세대에 편입된 노인들은 경제 성장의 결과 높은 소득을 누리면서 소비에 대한 욕구도 큰 편”이라며 “앞선 세대에게 근검, 절약이 미덕이었다면 이들은 가치있는 소비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녀출가 및 은퇴 후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 및 소비욕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자신을 돌아보고 가꿀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멋쟁이 노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변화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고운세상마케팅연구소 임현진 이사는 “노인들이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과거와 달리 오히려 감각 있고 앞서 나가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며 “자녀양육에 대한 부담이 없고, 경제력까지 갖춘 신세대 노인들은 ‘웰빙’(Well Being·심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함) 트렌드와 맞물려 자신을 가꾸고 꾸미는 데 많은 투자를 한다”고 설명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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