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시리즈] 취임사로 본 역대 대통령들의 야심 (2)
[특별기획 시리즈] 취임사로 본 역대 대통령들의 야심 (2)
  • 관리자
  • 승인 2007.01.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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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서 公僕 개념의 ‘저는’으로 몸 낮춰

세계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하면 우리는 압축적으로 민주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전쟁과 혁명, 군사정변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대체로 연착륙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들의 실수와 다음 정권의 격하 운동, 그때마다 동조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제왕적인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권력을 조금씩 해체하여 말 잘 듣는 공복(公僕)으로 조금씩 길들인 면도 있다. 대통령들의 권력에 대한 야심과 고분고분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장면을 역대 주요 취임사를 통해 알아본다. 〈박병로 편집국장〉


최규하 대통령의 취임사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오천만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한 1978년 취임사와는 달리 취임사를 듣는 대상을 우리나라 안으로 한정하는 듯하다.

 

이것이 최 대통령의 뜻이었을까. 오랫동안 외교무대에서 활동해온 외교통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보면 의아스럽다.

 

외교관으로 세계화가 된 대통령에게는 해외와 국내에 대한 구별을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라고 하던 자신에 대한 호칭을 최 대통령이 처음으로 ‘본인’이라고 표현했다.

 

취임사 전체 분량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있었던 여러 번의 취임사들에 비해 길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일국 대통령의 포부나 권력을 장악한 통치권자의 야심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들어서던 때와 같이 다부지게 권력을 잡고, 그것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안 보인다. ‘나’라는 호칭 대신 ‘본인’이라고 한 것이 그 때문일까. 진정한 권력을 잡지 못했음을 알게 해주는 단서로 읽히기도 한다.

 

위엄과 권위를 느끼게 하는 전두환 대통령의 ‘본인은…’

 

전두환 대통령도 자신을 ‘본인’이라고 칭했다.

 

텔레비전 코미디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흉내 내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본인은…’이 될 정도로 무게감 있는 말투로 텔레비전에 등장하여 국민에게 깊이 각인됐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라고 외치는 어법에서도 권위와 권력 장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본인은 민주주의를 이 나라에 토착화하기 위하여 헌법 절차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반드시 확립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규하 전 대통령께서 지난 8월 중순 평화적 정권 이양의 모범을 보여주신데 대하여 본인은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휘하의 스피치 라이터가 창의성이 없어 최규하 대통령의 것과 비슷하게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의 ‘본인’과 최규하 대통령의 ‘본인’은 뉘앙스 차이가 엄연하다.

 

코미디 프로에서 권위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처음으로 국민의 공복개념의 ‘저’라고 낮춰 칭한 노태우 대통령

 

이에 반해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 개념에 가까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자신을 호칭하면서도 ‘나’라고 하지 않고 ‘본인’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낮춰서 ‘저’라고 칭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보통사람, 보통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기 때문일 것으로 보이지만, 이때부터 대통령의 위치가 취임사라 할지라도 국민 아래로 내려간 것은 분명하다.

 

당시 여당 대표위원으로 선거인단에 의한 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정됐던 노태우 대통령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태도였던 것도 같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확대되자 6·29선언이라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하여 대통령 직접선거를 수용했고, 그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니 국민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할 만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를 낮춘 것은 한편으로 전두환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에 취임하던 198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큰 차이의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고,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씨의 야당에 의해 정국이 주도되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전임자, 전두환 대통령을 격하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노태우 대통령이 원치 않았다 하여도 상황을 되돌리기는 어려웠다.

 

국민에게 ‘저’라고 자신을 낮춰 호칭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되었다. 3김씨의 야당에 의해 1980년 5월의 ‘광주항쟁’ 당시의 책임을 묻는 국회가 열리고,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로 유폐되다시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피했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제5공화국 정권은 격하되고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의리가 있든 없든 당시 노태우 대통령 정부가 함께 곤경에 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생산적인 일은 아니었다.

 

아마 정권을 재창출한 셈이 된 전두환 대통령으로서도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자세를 낮추면서 노태우 대통령은 나름대로의 야심을 대내외에 선언한다. 이제까지의 정권이 안정되지 못했으나 이제부터 탄탄대로를 달리게 됐음을 세계만방에 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취임사 서두의 한 대목을 보자.


“이 나라에 민주정부를 세운지 40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를 요청하는 역사의 조류 속에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아득한 옛날 이 땅에 민족의 터전을 일구어 오신 모든 선조들에게 깊이 머리 숙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1963년 첫 취임사에서 엿보이는 야심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상의 영전에 절을 함으로써 원대한 계획을 실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선 정권들이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결국 노태우 대통령은 실제로 행복한 역할을 많이 했다.

 

시민의 민주화 요구에 많은 것을 양보하고, 격화되는 노동운동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며 나라가 결단날 것 같은 위기감이 조성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역대 어느 대통령들보다 행복한 결재권자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오래 적대시하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는 생생한 정보를 지휘하며 아마도 전승국 대통령과 같은 기분을 여러 차례 느꼈을 것이다.


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버린 구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하고 모스크바 등을 방문하면서 우월의식과 함께 자부심을 느꼈을 법도 하다.

 

지난 여름 노태우 대통령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인터뷰에서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우리나라 외교영역을 북방으로까지 확장했다는 것은 집권 기간 동안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처럼 위대하지 않고, 훌륭한 리더십 없이도 축적된 국정운영 시스템으로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도 얘깃거리가 될 만하다.

 

여당과 2개의 야당을 통합한 3당 합당의 정계개편으로 여대야소 국회를 만들어 통치 기반을 든든히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몸을 낮추어 스스로 ‘저는’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이 되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적인 선례를 남겼던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라도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무난히 이끌어갈 수 있음을 보인 것은 어쨌든 선한 일이었다.

 

강인한 인상을 준 김영삼 대통령의 ‘저’라는 호칭

 

노태우 대통령도 물러난 뒤 비난을 받았다. 뒤를 이어 등장한 김영삼 정부에 의해서 끌어내려졌다. 제5공화국 출범 당시의 일로 역시 재판을 받고, 대통령 선거자금 등의 문제로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선고받기도 했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으로서는 섭섭한 일이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군인출신이라는 것에 빗대어 취임사에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 첫머리를 보자.


“친애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여러분,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과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저 자신의 열정과 고난이 배어 있는 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오늘 저는 벅찬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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