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외롭지 않게 교회, 사회단체가 앞장서야”
“노인들 외롭지 않게 교회, 사회단체가 앞장서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3.08 10:26
  • 호수 3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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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전문서 6권 완간 정원식 유한재단 이사장

“후학·제자와의 약속 지켜 소임 다한 기분”
청소년에게 가치 교육 어떻게 할건가 모색


교육학 교수, 문교부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정원식 유한재단이사장(85)이 최근 6권짜리 교육 전문서를 펴냈다. 12년 전부터 인간을 주제로 한 교육서를 써오기 시작한 정 이사장은 이번에 마지막 6번째 책을 탈고함으로써 학자로서 또 하나의 큰 업적을 쌓았다. 정 이사장은 장관서부터 복지재단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지난 3월 초 동작구 대방동의 유한재단 이사장실에서 정 이사장을 만나 책을 완간한 소감과 ‘롱런’ 현역의 비결을 들었다.

-전집 완간을 축하드린다.
“후학과 제자에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정리해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지켜 소임을 다한 기분입니다. 12년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그만두고 복지재단 일을 보면서 시간이 좀 생겨 교육을 위한 여러 가지 심리적인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해왔어요. 책의 제목은 ‘인간과 교육’ ‘인간의 동기’ ‘인간의 성격’ ‘인간의 인지’ ‘인간의 환경’ 그리고 오는 5월에 나오는 ‘인간의 가치관’입니다. 한 권 당 200자 원고지로 1300장 분량이니까 6권이면 총 8000장 가까이 됩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가치관 특성을 비교해보면, 우리 문화의 가치 특성은 외관, 외형주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중국의 경우는 중용-극단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고 알맞은 행동을 강조하고, 일본은 ‘기리’, 우리말로 의리를 중시하는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가치관을 심어줘야 하겠는데 그 가치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 책의 주제입니다.”

-유한재단은 어떤 곳이고, 하는 일은 무엇인가?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는 돌아가시기 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우리 사회에 많이 알려진 기업인입니다. 유일한 박사가 세운 재단이 바로 유한재단입니다.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교육 사업을 하고, 어려운 분들을 위한 사회복지사업 등을 해요. 1970년에 설립됐으니 벌써 43년이 됐군요. 3년 전 재단이사장을 맡아 사업을 많이 했어요.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장학 사업으로 올해도 재단에서 32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수여 전에 제가 학생들을 직접 만나 가정환경도 물어보고 생각하는 것을 듣기도 합니다. 우리 재단의 특수성이 일단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졸업 때까지 지급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가 빨라지고 노인의 자살도 늘고 있는데.
“고령자의 자살이 늘어나는 건 수치로도 나타나 있지요. 노인 자살의 원인은 고독감이라고 봅니다. 정신적인 고독감이 자살의 근본 원인 듯해요. 저도 대한노인회 고문으로서 이 문제를 고민해왔어요. 대응책으로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한노인회가 관장하는 전국의 경로당을 좀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어르신들이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아는 사람과 담소하고 점심이나 먹는 장소가 아니라 거기서 노령 인구를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전문적으로 레크리에이션을 공부한 젊은이들이 노령인구를 위한 오락이나 음악 심지어 사이코드라마 같은 연극도 포함해서 그런 걸 많이 개발했으면 합니다. 또, 백세시대에도 할 말이 있다면, 이 신문이 노령 인구에게 널리 읽히려면 재밌는 만화나 오락 프로를 더 많이 실었으면 해요. ­교회와 사회단체가 노인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하고, 신앙도 가지게 만들고, 새로운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어요.”

-공직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서너 가지가 떠오릅니다. 자랑 같지만 제가 문교부장관(1988 ~1991년)이 되고 보니까 그때 교육 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노후 교실이 30%를 넘었고, 책걸상은 아이들의 체격에 맞지 않아 불편했고, 학교의 급수시설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어요. 이걸 개선하자니 엄청난 예산이 필요했어요, 1990년 당시 문교예산이 5조였고, 우리나라 전체 예산이 23조였으니까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중 85%가 경직성 예산이었습니다. 교사 월급이나 학교 운영비 같이 한 푼도 손을 못 대는 돈이었어요. 재원 확보를 위해 나름 노력을 해 결과적으로 1년에 3700억 원의 별도 예산을 3년간 받기로 했고 국회통과도 거쳤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마시기에 적합한 식수도 확보하고, 화장실도 만들고 그랬어요.”­­­

1991년 5월, 정원식 이사장이 국무총리 취임 직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정 이사장이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 학생들로부터 밀가루와 달걀세례를 받아 얼굴과 옷이 온통 밀가루로 허옇게 뒤범벅이 된 사건이다. 문교부장관직에서 물러난 정 이사장은 학교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외국어대학에 나가 시간 강의를 하던 중 갑작스레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그 이전에 학생들과 약속한 보충강의를 하기 위해 민간인 신분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갔다가 이 같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사건의 배경은 장관 시절 전교조와의 일이었다. 당시 전교조 교사 수는 1만2천명이었다.
“그때 전교조는 불법 단체였고, 아주 좋지 않은 의식화교육을 젊은 학생들에게 하고 있었어요.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을 조성하거나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고,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잘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전교조 선생은 교실의 태극기까지 떼어버렸습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탈퇴운동을 벌여 1만여 명이 전교조를 나갔고, 1,460명이 마지막까지 남았어요. 이들은 결국 해임됐고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너무 무자비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 이사장을 교실에서 끌어낸 이들은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문교부장관으로서 전교조 탄압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스승에게 집단 폭행을 가했던 것이다.
사건 다음날 기자회견장에서 정 이사장은 ‘내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때리는 심정이다’고 말했고, 이 말이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올랐다. 사설과 컬럼은 연일 학생들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강도 높게 비난했고, 여론은 학생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정작 정 이사장 본인은 학생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학생운동권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남겼고, 극렬한 시위가 주춤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총리직을 그만둔 후 김영삼 대통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거쳐 인수위원장직을 지냈다. 사상 첫 인수위원회로 지금의 인수위원회와는 다르게 조용하고도 부드럽게 정권이양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후 정계 입문을 권유받았으나 고민 끝에 학계에 남기로 했고,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거쳐 대한적십자사 총재직을 맡았다. 총재 시절에는 헌혈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남북이산가족상봉의 결실을 보기도 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는가?
“우리 사회가 그렇더라고요. 총리, 총재를 지냈다는 타이틀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유한재단)도 공개석상에서 저를 소개할 때 앞에다가 국무총리 경력을 꼭 밝혀요. 제가 그거 20년 전의 일인데 자꾸 써 먹지 말라고 해도 아니라고 해요. 그래야만 사람들이 재단을 인정하고 신뢰감을 가진다고 해요(웃음). 제가 총리직을 제의받을 때 특사로서 아프리카 순방 중이었어요. 당시 노재봉 총리가 4개월 만에 그만두고 청와대에서 후임을 고심 했겠지요. 여러 사람이 올라왔지만 마음에 맞지 않아서인지 서울에 있지도 않은 저를 불러들였던 겁니다. 아마 장관 때 열심히 했다는 말을 들었겠지요. 적당히 하는 게 아니고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문교부장관 마치고 총리된 이가 없어요. 장관 마치고 총리가 된 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원식 이사장은 화곡동 자택에서 40여년을 살고 있다. 고향이 황해도 재령인지라 살고 있는 곳이라도 지키자는 마음에서 이사를 가지 않았다.
정원식 이사장은 “이제는 대학동기도 친구들도 다 곁을 떠났어요. 골프 치는 친구도 없어요. 요즘은 헬스클럽에서 새로운 ‘패거리’를 만나 재밌게 지냅니다. 패거리 중에는 은행 고위직 출신도 있고 다양해요. 저녁을 먹게 되면 개인 사업 하는 이가 냅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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