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리더 / 30년 고사리 연구, 희귀 고사리 구하다 죽을 뻔한 적도…
시니어리더 / 30년 고사리 연구, 희귀 고사리 구하다 죽을 뻔한 적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3.08 10:54
  • 호수 3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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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박사’김정근 서울대 명예교수

고사리는 독성 강해 날로 먹으면 암 걸려
230평 마당에 엄마고사리 등 1천종 가득



‘희귀 고사리를 보고 싶으면 식물원보다 정릉골짜기를 찾아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빌라촌 사이에 끼여 대문만 겨우 난 단독주택에 들어서면 눈앞에 쥬라기공원이 펼쳐진다. 사방이 양치식물천지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마당은 물론 담벼락에도 고사리가 제비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안은 아예 온실이다. 커다란 녹색 잎을 매단 고사리나무가 가득하다.
“30년간 전 세계에서 날라다 심은 것들입니다. 고사리가 대부분이지만 ‘황연’ 같은 백두산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도 있어요. 우리에겐 자식들이나 마찬가지에요. 힘든 순간에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납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고사리박사’ 김정근(80)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의대를 나와 서울대에서 35년간 교수로 지냈다. 의료통계학과 인류생태학을 연구한 보건학박사로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자문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의 집 마당 230평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엄마고사리, 잔고사리, 꿩고비, 헬라클래스고사리 등 1000종에 이른다. 개수는 김 교수도 모를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00종이 확인됐고, 세계에는 1만2000종이 넘는다.
“우리 집에서 가장 귀한 고사리는 ‘남방고사리’에요. 희귀해서지요. 우리나라에 서너 개밖에 없고 일본에도 미야자키하고 가고시마에만 몇 개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고사리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김 교수가 고사리에 미친 건 정년퇴임 후 서울대 농대의 ‘식물대가’ 이창복 교수를 따라다니면서부터. 처음엔 식물에 관심도 없었다. 이 교수로부터 식물 이름을 하나, 둘 배우면서 재미가 들렸고, 고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시작했다. 고사리를 기르기 위해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어딜 가든 눈에 띄는 대로 가져다 심었다. 죽지도 않고 잘 자랐다. 고사리는 물만 적당히 주면 잘 큰다고. 까치가 문제였지만 낚시 줄로 간단히 해결했다. 까치가 낚시 줄에 한 번 놀라면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희귀종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을 뻔 한 적도 있다. 파푸아뉴기니 섬에서의 일이다. 섬의 동쪽은 치안이 괜찮았지만 서쪽은 인도네시아령으로 원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총을 들고 투쟁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이곳에 ‘7편쪽고사리삼속’이라는 희귀종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김 교수는 분쟁 지역이란 사실도 모른 채 한발 한발 들어가다 원주민에게 붙잡힌 것이다. 결국 간신히 풀려났지만 하마터면 총에 맞아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사리에 들어간 비용만도 1억 원 이상이다. 부인 김영란 씨도 고사리 마니아다.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부인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고사리를 연구하는 곳은 김 교수가 창설한 한국양치식물연구회와 동호인 모임 ‘고사리 회’ 등 두 곳이다. 김영란 씨도 동호회 회원이다.
김 교수가 찾아낸 신종도 몇 가지가 된다. 미 기록종도 많이 알아냈다. ‘선녀고사리’는 제주도에서 발견했다. 개고사리는 가장 흔하고 예쁘다고. 여름에는 마당의 고사리를 잘라다가 데쳐서 먹거나 상추와 함께 쌈 싸먹는다.
“먹는 고사리는 20~30종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사리를 먹을 줄 몰라요. 일본사람들이 봄 산나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청나래고사리예요. 미국사람들은 고사리로 샐러드를 해먹지요. 그냥 고사리는 독성이 강해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립니다. 반드시 삶아서 먹어야 해요.”

▲ 김정근 교수의 고사리연구서 ‘세계양치식물’(양동출판사 刊) 표지.

‘정말 고사리를 먹으면 정력이 약해지느냐’고 묻자 김 교수는 “우리는 (고사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 몰라요”라며 웃었다. 김 교수는 고사리를 재배하면서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한데 모아 최근 ‘세계양치식물’이란 식물도감을 내놓았다. 400쪽 분량의 이 책에는 전 세계 고사리 125속 730종을 수록했다. 컬러 사진과 함께 생육환경, 특성, 지리적 분포 등을 기록했다. 사진은 부인의 몫이었다. 김영란 씨는 “잎사귀가 같은 고사리라도 인편(털)과 포자로 분류해요. 천장이 넘는 슬라이드 필름을 몇 번씩 확대기로 들여다보느라 몇 년은 더 늙었을 겁니다”며 웃었다.
고사리는 겨울 동안 얼어 죽지 말라고 낙엽을 덮어준다.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엔 낙엽 위에 캐시미어를 덮어주었다. 지난 3월 초 어느 날, 김 교수 부부는 캐시미어를 걷어낸 후 낙엽을 솎아내고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앞으로 한 달 간 이 작업을 더 해야 한다. 김 교수는 한손에 전정가위를 들고, 흙이 잔뜩 묻은 다른 손으로 커피 잔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 봄이 가득해요. 청개구리가 사방에 뛰어다니고, 도롱뇽이 알을 낳고, 바람꽃도 막 피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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