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시리즈] 취임사로 본 역대 대통령들의 야심(3)
[특별기획 시리즈] 취임사로 본 역대 대통령들의 야심(3)
  • 관리자
  • 승인 2007.01.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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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세 낮추면서 권력의 힘 드러내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에 나타난 ‘문민 민주주의’는 아마도 군 장성 출신이 아닌 정치인 출신의 대통령이 실로 오랜만에 취임하는 것을 이를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 장성으로 예편했으니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에 전역하여 엄밀히 말한다면 군인정부는 아니지만, 제5공화국 정권과 태생적인 연고가 있으니 이런 관점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전역한 지 8년 만에, 그것도 국민의 직접선거 방식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점은 배려가 되었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문민정부라는 이 선언으로 노태우 정권과 차별성은 분명해졌다. 나중에 보다 더 불명예스런 일들로 노태우 대통령이 뉴스를 장식하게 되지만 취임사에도 이미 이렇게 차별성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이 처음 쓴 그대로 ‘저는’이라고 자신을 낮춰 호칭했다. 문민 민주주의 시대를 열게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본인’이나 ‘나’라고 호칭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꼬박꼬박 자신을 ‘저는’이라고 하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타나는 야심 비슷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듯하기에 가져보는 생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3년도 취임사에서 대혁신운동을 제창했고, 1972년에는 10월 유신으로 대통령에 다시 취임하면서 유신과업 완수를 표명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은 정의사회 구현을 부르짖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그런 강한 권력의 계보를 잇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대통령 취임사는 분명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신한국 건설’을 내세운 것이다. 또 취임사에서 “한국병을 앓고 있습니다”고 하기도 하고 “이대로는 안 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국가 기강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라고도 했다. 말은 낮추었지만 권위적인 취지의 취임사를 낭독한 것이다. 윤보선 대통령 당시의 취임사와는 달랐고, 그 점에서 문민으로서의 강한 권력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자신을 ‘저는’이라고 낮춰 칭했다. 오래 고대하다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기간 동안 권력을 행사할 계획이 많았을 것이다. 그 점은 취임사 서두에 감동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감격 면에서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사가 압권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대통령의 취임사를 차례로 보자.


“기쁨이 극하면 웃음이 변하여 눈물이 된다는 것을 나는 글에서 보고 말로 들었던 것입니다. 요즘 나에게 치하하러 오는 남녀 동포가 모두 눈물을 씻으며 고개를 돌립니다. 각처에서 축전 오는 것을 보면 모두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본래 나의 감상으로 남에게 촉감될 말을 하지 않기로 매양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석간장이 아닌만치 나도 뼈에 사무치는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오,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이어서 표명되는 까닭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수립 50년 만에 처음 이루어진 여야간 정권교체를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면서, 온갖 시련과 장벽을 넘어 진정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 여러분께 찬양과 감사의 말씀을 드려마지 않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둘 다 오래 지도자 생활을 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소감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1971년 대통령 선거 때로부터 치면 30여년 만에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감격이 김영삼 대통령에 못지않고 이승만 대통령에도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IMF의 도움으로 경제를 겨우 꾸려가는 당시 상황에서 감상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었다. 권력자로서의 야심을 보이며 국민을 다잡을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오래 꿈꿔왔던 소망을 신은 끝까지 인색하게 이루게 해준 것 같다. 마침내 도달한 그 목표에 이르러 보니 막중한 책임이 부과돼 있고 전도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두 부분 곳곳에 잠깐씩 집권의 감상을 드러내는, 조금은 차별화된 취임사가 된 것도 같다. 열성적인 지자들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 모르지만, 국민을 부를 때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했다. 국민을 한없이 받들어 모시는 의미로 읽히지만, 우리말이 주는 느낌은 때로 그 반대로도 들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하는’이라는 표현 없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했다. 자신을 ‘저는’이라고 낮춘 것도 물론이다. 그런데 오래 고대해 왔던 집권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혹독한 경쟁을 치렀기 때문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는 집권에 성공한 대통령으로서의 기쁨이 절제돼 있거나 소박하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으로, 저는 대한민국의 새 정부를 운영할 영광스러운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를 올리면서, 이 벅찬 소명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완수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감성적인 면이 많았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성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 물론 겸손한 가운데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적 캐치프레이즈로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제창했다. 김대중 대통령 정부를 격하하거나 부정하는 듯한 언급은 취임사에서 거의 찾기가 어렵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 집권 기간에도 국민들 사이에 반 김대중 대통령 정서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남북 정상회담과 노벨 평화상에 대한 평가를 인색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퇴임한 김대중 대통령도 국민의 시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다른 전직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정당(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민주정의당 후보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이 민자당이 되고, 민자당으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당이 되고, 거기서 다시 한나라당이 만들어졌듯이.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처럼 영속적인 정당으로 계속 남는 집권당이 생기는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래야 ‘나’에서 ‘본인’, 그리고 ‘저’라고 자신을 낮춰 칭하는 뜻이 완성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경제정책에 대한 비전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얘기 중에 ‘정치와 경제상’이라고 슬쩍 넘어간 것이 전부다. 해외에서 오래 독립운동을 해온 대통령으로서 경제를 챙기지 않은 것은 특이한 일이다. 미국 동부의 명문대에서 박사학위까지 소지한 대통령으로 경제발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만큼 나라를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취임사도 있었다.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북한관련 언급이 없었다. 북한의 남침 야욕을 경계한다거나 6·25동란의 책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족상잔의 아픔을 씻어내는 문제에 대해서도 표명하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의 취임사에는 빠짐없이 북한과 관련된 항목이 들어간다.

‘5월 광주’가 있었던 1980년 5월 이후에 모두 6번의 취임사가 나왔다. 전두환 대통령이 2번,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까지 4명이 한 번씩 취임사를 낭독했으나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언급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1963년 취임하면서 4·19혁명과 5·16 정신을 동시에 언급한 데 비하면 뜻밖이다. 국민적 화합 여망이 이렇게 작용한 것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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