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마치 마약 같아… 여운 남아 자꾸 하게 됩니다”
“봉사는 마치 마약 같아… 여운 남아 자꾸 하게 됩니다”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5.10 11:35
  • 호수 3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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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동아리 ‘7080 도토리’ 실버영화관서 재능기부
▲ 실버영화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음악 봉사를 하고 있는 동아리 ‘7080 도토리’의 모습. 왼쪽부터 조병도, 박정순, 홍석봉, 이화숙, 고순희씨. 사진=조준우 기자
▲ 실버영화관 관객들이 ‘7080 도토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박수치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어르신 위해 2년 동안 꾸준히 흘러간 옛 가요 공연
배 호 노래나 ‘고장난 벽시계’ 등 청중들 좋아해

늘 어르신들로 북적이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 실버영화관. 지난해 실버영화관을 찾은 관객만 20만명이다. 영화관이 이토록 사랑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만 55세 이상의 관객이라면 누구나 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버영화관은 단지 영화만을 상영하는 평범한 극장이 아니다. 음악 공연을 비롯해 어르신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열려 ‘어르신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다. 덕분에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수많은 어르신들이 몰리고 있는 것.
특히 이곳 영화관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어르신들께 큰 기쁨을 주는 이들이 있다. 2011년부터 어르신들을 위해 재능 봉사를 하고 있는 아마추어 음악 동아리 ‘7080 도토리’가 바로 그들이다. 매월 첫째·셋째 주 월요일 오후 영화 상영 전에 선보이는 30분간의 무대가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는 것. 멤버들이 옛날식 교복을 입고 통기타, 건반을 연주하며, 흘러간 옛 가요를 흥겹게 부르면, 어르신들은 짧은 시간이지만 옛 추억에 잠겨 위안을 얻는다.
2년 간 무대 위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음악으로 봉사해온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5월의 어느 월요일 오후, 어르신들의 박수갈채 속에 무대에서 막 내려온 ‘7080 도토리’ 홍석봉(58) 단장과 단원 주병도(56)·고순희(48)·박정순(51)·이화숙(59)씨를 만나봤다.

-먼저 동아리‘7080 도토리’에 대해 소개해 달라.
홍석봉=1970~1980년대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아마추어 음악 동아리로 2011년 4월부터 실버영화관에서 재능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1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는데, 연령대는 40대 중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다양합니다. 모두 본업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되는 대로 교대로 활동하고 있어요.

-어떻게 실버영화관에서 봉사하게 됐는지.
홍석봉=원래 우리 동아리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어요. 그러다가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됐죠. 각종 행사가 있을 때나 연말에는 매우 바쁜 편입니다. 지난해 서울시가 주최한 무대만 150곳에 섰을 정도니까요. 그렇지만, 공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아리 구성원들 모두 음악을 좋아하는 순수한 열정으로 모인 만큼, 이러한 재능을 좋은 일에 나누는 봉사도 많이 하고 있어요. 복지관이나 양로원 등에서요. 실버영화관에서 공연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음악을 좋아하는 실버영화관의 김은주 대표가 저희의 무대를 보고 공연을 제안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죠.

-각각의 멤버들이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고순희=평소에도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30대부터 막연하게 나이 오십이 넘으면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지관이든 양로원이든 방문해서, 비록 음악을 가르칠 실력은 안 되지만, 예쁜 한복을 입고 어르신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이 동아리를 알게 됐고 활동하게 됐습니다. 음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은데, 봉사까지 할 수 있으니 제게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주병도=저는 봉사공연을 통해 단장님과 단원들을 알게 됐는데,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 아름다운 음악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특히 실버세대에게 음악으로 옛 추억을 되살리는 일이 보람되게 여겨져 참여하게 됐습니다. 어르신들이 저희 음악을 통해 잠깐이라도 시간을 되돌려 지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공연에서 주로 연주하고 부르는 곡은.
고순희·박정순=30~40년 전에 유행했던 가요나 실버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부릅니다. ‘모정의 세월’ ‘추억의 소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곡이지요. 그런데 공연을 하다보니 어르신들이라고 모두 다 옛날 노래만 좋아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가수 배 호의 노래나 ‘고장난 벽시계’ ‘잠자는 공주’ 등이 특히 호응이 좋습니다.

-연습도 많이 하겠다.
홍석봉=일주일에 한두 번 합니다. 주로 일요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하는데, 이때 연습도 하고 무료 음악교실도 엽니다. 기타, 하모니카, 노래 등을 지도하는데, 어르신들이라면 누구든 저희에게 무료로 강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실버영화관으로 문의하면 됩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음악 봉사를 하며 가장 기쁠 때는.
이화숙=관객들의 호응이 완벽하게 좋은 날이 있어요. 어르신들이 모두 일어나서 노래를 따라하며 박수치는 모습을 보면 ‘아, 음악 봉사가 참 좋은 일이구나’ 새삼 긍지를 느낍니다.
박정순=저는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그렇지만, 동아리 구성원들과 함께 화합하고, 또 많은 분들을 만나니 정말 흐뭇해요. 저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서 듣는 걸 즐기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서니 용기 내 노래할 수 있어 좋습니다.
고순희=음악봉사를 통해 그간 하고 싶었던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 음악만큼이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충족되고 있어요.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어 늘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병도=제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어르신들 앞에 서서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어르신들이 저희 무대를 보는 때만큼은 시간을 거슬러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계속 음악 봉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홍석봉=어르신들이 공연을 보고 정말 고마워하세요. 과자나 과일을 갖다 주시기도 하는데 힘이 됩니다. 지난주에는 공연을 꾸준히 지켜봤던 어르신들 몇 분이 점심으로 생선회를 대접해주기도 했어요. 대접해주신다는 분들이 있어도 웬만해서는 받지 않는데, 저희를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처음으로 고맙게 받았습니다.
이화순=복지관 등에서 공연을 할 때도 좋지만, 단원들끼리 연습하며 마음을 나눌 때도 재밌어요. 봉사라는 것이 우선은 자신이 즐거워서 자발적으로 할 때 더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저 스스로가 음악을 통해 힐링(healing)이 되고, 그렇게 힘을 얻어서 남들에게 힘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고순희·주병도=저희 단원들은 마냥 좋기만 합니다. 큰 어려움은 없어요. 아마 홍 단장이 가장 고생하고 있을 겁니다.
홍석봉=아무래도 돌처럼 모가 난, 개성 있는 개인들이 모여 동아리를 운영해 나가려니 서로에게 맞춰가는 부분들이 때때로 어렵지요. 간혹 각자의 주장이 너무 세서 부딪히거나 겉돌며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 어울립니다. 다만, 예전에는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것이 수월했는데, 요즘에는 경제가 어렵다보니 그조차도 쉽지 않아요. 재력이 있으면 단장으로서 단원들에게 더 베풀 수 있을 텐데, 안타깝기도 합니다. 다들 아무런 대가 없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봉사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고순희=개인적으로는 잠시 쉬고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봉사 공연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또, 음악으로 적게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더욱 좋겠어요.
박정순=저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지만, 그냥 음악이 정말 좋아요.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그래서 동아리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바람이에요. 사실 음악 봉사를 하기 전에는 약간 우울했었어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이유 없이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활동하고 싶습니다.
주병도=저 역시 앞서 말씀하신 분들처럼, 우선은 저 자신이 이 활동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하고 싶어요. 우리는 음악을 통해 봉사를 시작하게 됐지만, 봉사는 마약과 같아요. 봉사를 하고 나면 굉장히 즐겁기 때문에 자꾸만 하고 싶거든요. 또, 환자나 장애우 등을 대상으로 공연하다 보면,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새삼 감사하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정말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을 보며,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깨닫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거죠. 자연스레 성격도 밝게 변합니다. 봉사를 하고 오면, 그 여운이 다음에 다시 봉사를 갈 때까지 지속 되요.
홍석봉=우연히 시작하게 된 음악 봉사가 벌써 6년째를 맞았습니다. 봉사를 통해 삶의 가치를 느끼고, 때로는 치유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숨 쉴 수 있는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참여를 희망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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