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부조리 비판… 전통 중요해도 국수주의는 위험
자본주의 부조리 비판… 전통 중요해도 국수주의는 위험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6.07 13:06
  • 호수 3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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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예술가 1세대 무세중씨
▲ 사진=조준우 기자

춘천마임축제서 ‘밤의 충격…’ 공연
“청년들 목소리 경청하고 품어 줘야”
간암 수술 2번 하고도 예술활동 지속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넉넉한 풍채와 살아있는 눈빛을 가진 사람, 바로 한국 전위예술가 1세대 무세중(77)씨다. 그의 온 몸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간암 수술을 두 번이나 이겨낸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북한산 아래 무세중씨와 그의 아내 무나미(55)씨가 살고 있는 집은 집이라기 보단 고물상이나 박물관처럼 보였다. 아주 한국적이거나 아주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셀 수 없이 많은 물건과 장식품들이 집안에 가득 차 있었고, 그가 무대 위에서 사용했을 법한 소품도 곳곳에 놓여있었기 때문.
온갖 종류의 책과 신문들이 쌓여 있는 그의 서재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의 가장 최근 행보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무씨와 그가 이끄는 대동전위극회는 5월 24일 ‘2013 춘천마임축제’에서 ‘밤의 충격-카피틸’이라는 제목으로 장장 7시간 동안 공연했다. 카피틸(Capiteel)은 자본주의(Capitalism)와 뱀장어(eel)를 뜻하는 영어단어를 조합해 무씨가 만들었다.
그는 “현실에서 가장 큰 무서움을 주는 것은 바로 썩은 자본주의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재벌·족벌·학벌 등 일명 세 가지 ‘악벌’이 자본주의와 결탁해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서민들을 빚쟁이로 만들어왔어요. 이번 공연을 통해 이를 비판하는 몸짓을 선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춘천마임축제의 예술감독인 유진규 마임연기자의 스승이며, 이 축제의 발전을 지켜봐온 장본인인 그는 현대사회에 비판적이다. 공장은 문명을 만들었지만,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했다. 때문에 이를 회복시켜야 했는데, 이는 ‘굿’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 굿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얼싸안으며 회복시킬 수 있다.
1960년대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렵게 대학(성균관대 불문과)을 졸업한 그는 돈을 벌 일터가 아닌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로 들어섰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테지만, 그는 ‘그래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할 일이 있다고 봐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건 무척 중요하죠. 제가 연극아카데미에 간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내 안의 뿌리에 불이 반짝하고 들어오게 하는 그것(예술)을 행했을 뿐입니다.”
그즈음 그는 민속악회 ‘시나위’와 민속극회 ‘남사당’ 등을 만들고 활동하며, 우리의 춤 속에서 민족의 혼을 느꼈다.
“우리 춤을 추기 전까지 저는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사 몇 줄을 알고 있다는 것 외에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싶어 깊이 들어가니 ‘무’(巫)라는 이름 아래 선조들이 꾀했던 정화, 회복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씨의 전위예술은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꽃 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문화에 배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국수주의에 대해 비판하며, 우리 것과 서양 등 타문화와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에게 전통은 견고한 뿌리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이를 단단히 하는 동시에 앞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75년에는 이런 생각이 반영된 ‘전통과의 충돌’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명동 국립극장에서 ‘무세중 창작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1960~1970년대 무씨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타고난 김(金)씨 성을 버리고 무(巫)씨 성을 취했을 때도 그는 이해받지 못했다. 언행도 당시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튀었다. 사람들은, 기득권의 횡포 등 사회의 부조리를 거칠게 표현하는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무씨는 당시도 지금도 망설이지 않고 쓴 소리를 하고 있다. 또,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현재를 진단, 이를 몸짓으로 표현해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제 밥 못 먹어 위험한 처지가 아니라 인격이 상실돼 몰락할 수 있어요. 인간이기에 욕망을 가질 순 있어요. 하지만 자기 어머니 혹은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요즘의 범죄는 일종의 ‘급발진’입니다. 문명이 만들어낸 독기가 사회에 쌓이고 쌓여 이런 비정상적이고 반인륜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숨도 고르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말에 잠시 끼어들어 그 생기의 비결을 물었는데, 대답은 의외로 소박했다.
“우리는 몸이라는 육체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TV를 틀면 잘 가꾼 몸매를 우쭐대며 뽐내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주 자만하고 교만한 겁니다. 자신이 잘나서 건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항상 겸허하게, 또 겸손한 마음으로 내 몸과 대화해야 해요. 오장육부 하나 하나와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 몸과 이를 둘러싼 자연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그는 자신의 또래인 노년층에게도, 장차 미래를 이끌어야 할 청년층에게도 할 말이 많았다.
“먼저 노인들은 자손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넓은 마음으로 품어줘야 해요. 이것은 노인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들도 많지만, 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노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통감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너무 가난해 그랬지만, 아이들에게 밥 대신 정신을 심어줘야 했어요. 또, 요즘 노인우울증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어도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문과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무척 바쁩니다. 우울할 틈이 없어요.”
청년층에게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여행, 정확히는 여행을 통해 자연과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
“대충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밑바닥 인생을 직접 겪고 자연을 느끼는 것이 진짜 여행입니다. 저도 독일에서 8년, 미국에서 1년 등 이런 식으로 여러 곳을 떠돌며 여행했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봐요.”
인터뷰가 끝나갈 때 즈음, 무씨의 집 부엌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아내 무나미씨가 무씨와 기자를 위해 집 앞 마당에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와 나물로 정성껏 밥상을 차렸다. 모든 음식의 맛이 훌륭했지만, 특히 청국장의 맛이 일품이었다.
그들 부부는 매달 보름이면,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자연과 어우러지는 작은 축제를 연다고 했다. 자연과 그 자연의 일부인 자신의 몸에 늘 감사하며 산다는 무씨의 말은, 그저 빈 말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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