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과 복제품, 생명은 진품이어야 한다
진품과 복제품, 생명은 진품이어야 한다
  • 관리자
  • 승인 2007.01.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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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시 외곽에 세계적인 거부였던 폴 게티가 세운 박물관이 있다. 전체 규모도 규모지만 건물 양식이 폼페이 유적의 대표적 정원과 건축을 재생한 독특한 분위기의 박물관이다.

 

예약을 통한 절차를 밟고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눈을 빨아들이는 그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그 유명한 ‘난초’(Orchid) 그림이다.

 

움틀 거리는 푸르른 줄기에서 짙은 자주빛의 꽃송이들이 마치 갈구하듯 뒤엉켜 있는 이 그림은 바라보는 이들을 모두 흥분시키는 명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놀라는 것은 그림뿐만이 아니라, 경매에서 사들였을 때의 가격이었다.

 

수천만 달러가 넘는다는 설명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액수였다. 그 그림에서 얻은 흥분을 도저히 달랠 수 없어 출구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모조품을 하나 구하고자 했더니 단돈 2달러였다. 수천만 달러 대 2달러, 바로 그것이 진품과 모조품의 차이였다.


우리는 최근 복제라는 용어를 매우 흔하게 듣고 있다. 복제 양, 복제 고양이, 복제 소, 복제 돼지 등등 하다가 드디어 복제 인간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복제 인간이라는 용어는 저자가 번역한 책 ‘복제 인간’<1978, 홍성사, 책의 원 제목은 ‘In his image:cloning of a man’>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제안되었다).

 

그러면서 복제의 중요성과 학술적 의의까지 크게 부각되고 있다. 마치 복제가 바람직하고 당연한 생명 현상인양 보도되고, 이를 계기로 정책적 혜택을 받으려는 일부의 움직임들도 엿보이고 있다.


이제는 한번 차분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선 복제와 진품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생명 현상을 살펴보자. 왜 사람들은 예술작품의 진품과 복제품의 가치에 대해 하늘과 땅의 차이를 두고 있을까 생각해보자.

 

진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성’이며, 그 가치의 가장 큰 본질은 ‘고유성’이다. 바로 하나 밖에 없다는 고유한 가치가 작품의 위대함을 설명하는데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의미가 생명체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존재, 바로 그것이 생명체의 거룩함을 다져주는 의미다. 생명을 가진 모든 개체는 같은 종들 간에도 무척 비슷한 듯하면서도 결코 똑같지 않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같은 개체에서도 좌우는 매우 비슷하지만 똑같은 것은 거부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니 선험적으로 복제가 아닌 고유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복제동물(인간 포함)을 거론할 때는 우선 이를 가능케 한 생명과학의 기술적 혁명, 즉 ‘체세포 복제기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식물에 널리 이용되어 왔고, 무척추동물에서는 물론 척추동물인 개구리 등에서도 그 가능성이 밝혀져 왔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부각된 것은 포유동물인 양이 복제되면서부터다. 이는 사람의 복제가 눈앞에 다가 온 듯 하였기에 새삼 느끼게 된 두려움과 설레임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후 돼지, 소, 고양이 등이 복제되더니 급기야 어떤 종교 단체에서는 믿거나 말거나 인간 복제 성공을 선언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기술자체는 전혀 문제되지 않은 채 일찍 개발이 완료되었는데, 이 시기에 와서 적용 대상을 사람까지 확대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변명하고 나서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인간의 복제품 제조는 바로 인간의 가치 하락을 가져 올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복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대안이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체세포 복제의 허용여부 문제다.

 

줄기세포가 인류에게 비쳐 주는 광명은 대단하다. 마치 모든 생명현상을 조절해 항상 새롭고 밝게 유지시켜 줄 듯 장밋빛으로 포장되고 있고, 이를 얻기 위한 수단의 정당성과 체세포 복제가 인정돼야 한다는 논리가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고유함에서 비롯된 가치를 그런 이유로 훼손시켜야 할 만큼 의미가 있을까. 정말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간의 뇌·간·신장·심장 등의 모든 장기를 오래 써서 닳아 졌다고, 병이 들어 고장 났다고, 다른 사람보다 기능이 떨어져 있다고 그리고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꾸면 정말로 더 오래 살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이를 조금씩 개선해 고쳐 나가려 하지 않는가. 복제품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진품을 소중하게 고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바로 ‘바꿀 것이냐, 고칠 것이냐’(Replace or Restore)의 명제는 ‘복제품이냐, 진품이냐’(Copy or Genuine)의 명제다.

 

인간이 만든 예술품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천지 창조주가 만드신 생명의 경우에야 진품의 소중함은 비할 바가 아니다. 존재하는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고 고장 난 부위나, 부족한 기능 그리고 눈에 꼭 맞지 않는 점이 있더라도 이를 고쳐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의무다.


실제로 장수하신 분들을 만나보면 이분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모두 당신들의 삶을 나름대로 성실하고 한결같이 열심히 살아왔으며, 남에게 휩쓸려 무엇을 바꾸려는 상상은 해보지도 못한 본 분들이다.

 

이런 분들의 성실함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고유함’이었다.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100년을 당당하게 살아오신 태도는 진품의 품위를 느끼게 하는데 충분했다. 어울리되 휩쓸리지 않고(和而不流), 스스로 노력해 끊임없이 쉬지 않고(自强不息) 살아 온 백세 장수인들의 모습에서 복제와 모조는 건강 장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상극의 길임을 배운다.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그러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하나뿐인 존재로서의 고유함에서 그 가치가 빛나고 더욱 거룩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새겨 볼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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