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 활동하는 요즘, 매일 들떠 있어요”
“도슨트 활동하는 요즘, 매일 들떠 있어요”
  • 이다솜 기자
  • 승인 2013.06.24 16:41
  • 호수 3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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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탑골미술관 실버도슨트 백영자·이명숙·이문섭씨
▲ (왼쪽부터) 실버도슨트 이명숙, 이문섭, 백영자씨가 서울 탑골미술관에서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도슨트, 노인에게 ‘딱’… 치매 예방·소외감 극복
미술관이 친근해지도록 하는 것도 도슨트의 역할
“실버도슨트계의 모범이 되는 개척자로 남고 싶어”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를 설명하는 안내인을 뜻하는 ‘도슨트’(docent). 서울노인복지센터가 노인복지계의 첫 전문미술전시공간을 표방하며 5월 16일 개관한 탑골미술관에는 특별한 도슨트가 있다. 바로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선발한 ‘실버도슨트’. 실버도슨트는 월 40시간 근무, 20만원의 급여를 받는 노인일자리의 일종이지만, 참여자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관람객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 예술을 친숙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미술관 안에서 세대 간의 소통까지 증진하겠다는 포부다. 도슨트를 시작한 이후 인생이 즐거워졌다는 백영자(67)·이명숙(66)·이문섭(65)씨를 만나봤다.

-도슨트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이명숙=저는 지금까지 실버모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실버도슨트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돼 지원했는데요, 사실 도슨트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고 그래서 뜻도 몰랐어요.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미술에 조예가 있지 않아서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했죠. 한데 4주간 교육을 받고 활동하게 되니 할 수 있겠더라고요. 모델은 혼자서 하는 일이지만, 도슨트는 여러 사람들과 하는 일이라 더 색다르고 즐거워요.
이문섭=저 역시 처음에는 도슨트가 무엇인지조차 몰랐어요. 설명을 듣고 나니 해볼 만한 일이겠다 싶었죠. 마침 시간적인 여유도 있어 지원하게 됐습니다.
백영자=지난해 말까지 갤러리에서 일하다가 퇴직했는데, 밖에서 일하는 생활 패턴을 갖고 있던 사람이 집에 있으니 좋지 않더라고요. 가볍게 일도 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하기로 결정하고 구청에 가서 일자리를 찾았어요. 그렇게 탑골미술관을 소개 받아 일하게 됐습니다. 평소 관심 분야인 미술계통에서 일할 수 있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도슨트로서 느끼는 기쁨이 있다면.
이명숙=도슨트로 활동하는 시간이 정말 귀해요. 노년기에 지적인 자산을 쌓을 수 있는 기회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다들 부러워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노인들이 육체적인 활동을 무리하게 하는 건 힘들잖아요. 도슨트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외우고 말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노인도 쉽게 할 수 있는 직업이라 좋아요. 저절로 치매 예방도 되는 것 같고요.
이문섭=이 활동을 하면서 생활이 조금 더 풍요로워진 것 같아요. 미술관에 있다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생기거든요. 동시에 미술 작가나 작품에 대한 지식도 쌓아야 하고, 미술관 내에서는 모범이 돼야하죠. 이처럼 모든 것을 잘하기 위해 신경 쓰다 보니, 평소 생활도 왠지 바르고 성실히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영향을 받는 거죠.
백영자=요즘은 매일 들뜨는 기분입니다. 오늘은 미술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누구를 만나게 될까 기대되거든요. 이런 희망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사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노인이 도슨트를 하는 것이 생소해요. 하지만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노인들이 도슨트로 활동하게 되면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요즘 사회 문제라고 하는 노인일자리 문제도 해결하면서 동시에 문화예술 분야를 성장시킬 수 있으니까요. 또, 실버도슨트들은 늘 관람객들과 소통해야하니 우울감이나 소외감도 줄고요.

-도슨트로서 큰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이명숙=용기 있는 분들은 미술관에 씩씩하게 들어와서 보고 가세요. 그렇지만 대부분은 미술관 앞을 맴돌다가 그냥 지나가세요. 저희는 그런 분들에게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세요”하고 권합니다. 그렇게 한 번 들어와서 작품을 감상하게 되면, 점점 더 미술관을 찾는 게 자연스럽고 쉬워집니다. 이처럼 긍정적으로 변하는 분들을 보면 ‘더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임감을 갖게 되요.
백영자=맞아요. 도슨트의 역할은 작품 해설을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관의 분위기를 편안하고 익숙하게 해주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이문섭=미술관은 여러 세대가 소통하며,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술관에는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산수화부터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요즘 그림도 걸리잖아요. 특히 저희 탑골미술관은 실버도슨트들이 작품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어린 친구들이 관람객으로 오면, 자연스럽게 세대 간의 대화가 이뤄지는 거죠. 사회가 핵가족화 되면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실버도슨트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줄 수 있는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도 노인에 대해 친숙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백영자=비록 지금은 소일거리 겸 봉사로 도슨트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 전문직으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전문 도슨트를 육성하는 기회가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이명숙=이미 미술관에서 인턴 제의가 한 번 왔었어요. 제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은 두려워 거절했지만요. 다른 도슨트들도 탑골미술관에서의 활동이 끝난 후, 다른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종류의 노인 일자리가 있지만, 도슨트는 아직까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시범 케이스라고 생각해 더욱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탑골미술관 실버도슨트를 보니, 노인들도 도슨트 활동을 잘하더라”는 소문이 나야 하니까요. 저희는 올해 12월까지 이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경력을 쌓으며 잘해내고 싶어요. 그래서 실버도슨트계의 모범적인 대선배로 남고 싶어요.
이문섭=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노년기만큼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서 정신적으로 고양될 수 있는 나날로 채우고 싶습니다.

-훌륭한 도슨트가 되기 위해 열정적인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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