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한 나는 여전히 청춘이다”
“도전하는 한 나는 여전히 청춘이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7.04 19:56
  • 호수 37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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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자전거로 13년간 세계 15만㎞ 누빈 차백성씨

뉴질랜드 여행중 만난
68세 여성 라이더
행복한 모습 눈에 선해
 

‘자전거여행가’라는 직업은 우리나라 직업사전에 없다. 그렇지만 그걸로 밥을 먹고 사는 이가 있다. 차백성(63) 전 대우건설 상무다. 그게 가능할까. 자기가 좋아서 타는데 누가 돈을 준단 말인가. 그는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 인세가 들어오고, 학교, 기업에서 받는 강연료를 보탠다”며 “국민연금이 아주 효자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메리카와 일본을 다녀와 각각 ‘아메리카 로드’(2008년), ‘재팬 로드’(2010년)란 여행기를 펴냈다. 요즘은 작년에 자전거로 다녀온 유럽여행을 쓰고 있다. 유럽은 이미 한 차례 다녀온 적이 있다. 책을 쓰려면 적어도 두 번은 갔다 와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7~9월, 석 달간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런던에서 시작해 유럽 10개국을 돌았다. 런던에서 배를 타고 아일랜드 더블린을 들렀다 다시 배 타고 영국으로 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갔다가 배 타고 유럽으로 와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을 돌았다. 다뉴브 강을 따라 슬로바키아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여행을 종료했다. 하루 70~80km씩 5000km를 주행했다. 하루 경비는 15달러(7만5000원)를 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3개월 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다. 노르웨이의 경우 대사관에 찾아가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행선지를 정할 때는 우리나라 사람이 알고 있거나 우리나라와 관련된 나라와 도시를 우선한다.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영국의 지배에 눌려 살았던 나라로 일본에 강점당한 우리나라 처지와 비슷해요. 거기에 우리의 서대문형무소 같이 애국자를 처형하고 가두었던 ‘칼 마이너’란 교도소를 찾아가봤어요. 이 나라는 또, 노벨상 수상 작가를 5명이나 배출했어요. 어디서 그런 저력이 나오나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절규’의 화가 ‘뭉크’와 탐험가 ‘아문센’이 살았다는 오슬로도 찾았다. 그는 아문센을 가장 존경한다.
“아문센은 남극 탐험에 대비해 잘 때도 웃통을 벗은 채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고 합니다. 준비하는 데는 아문센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3년 전 일본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관련 책을 100권이나 읽었다.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의 취미가 골동품수입이었다. 당시 그가 일본으로 가져간 우리나라의 국보급 유물만 1000점이었고, 경복궁의 한 건물을 통째로 이관해 개인박물관을 지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데라우치의 유물을 기증 받아 보관하는 야마구치대학을 찾기도 했다.
낯선 여행길에서 만나는 따듯한 손길을 이번 여행에서도 여러 차례 느꼈다. 자전거 바퀴가 펑크가 나 수리를 하려고 세우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 ‘도울 게 없느냐’고 물어보는 통에 고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수리를 했다. 어떤 이는 말없이 물통을 놓고 가기도 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유럽은 자전거문화가 발달해 승용차 등이 자전거여행가를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새롭게 느낀 점도 있었다. 체력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여행 중에는 집에서처럼 샤워하고 침대에서 잠을 푹 잘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텐트에서 자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요. 하루 이틀 자는 건 낭만이겠지만 비오면 습기 차고, 좁은 데서 먹고, 바닥도 배기고 그러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불편하고 힘든 점 때문에 여전히 자전거에 올라탄다. 힘들기 때문에 가치가 있고, 예순 넘어 이 일을 하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다.
차씨는 지금까지 힘든 일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며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인하공대를 나와 1976년 공채 1기로 대우건설에 입사했다. 마침 아프리카 수단에 건설현장이 생겼다. 그는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중동 등 비교적 편한 건설현장보다는 뜨겁고 열악한 현장을 지원했다.
남들이 회피하는 일을 일부러 찾아 한 덕분에 회사에서 조그만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서울대 출신이 아닌 학력으로 입사 19년 만인 44세 나이에 이사가 됐다. 그러나 임원 생활도 오래가지 않았다. 6년 후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연봉 1억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와 자유인이 됐다. 아내에게는 ‘지금까지 먹여 살렸으니 앞으로는 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달라’고 설득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보고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기도 했다.
“우연히 손에 쥔 ‘김찬삼 세계여행기’는 나를 미지의 세계로 나가게 한 교과서였어요. 그 책처럼 나도 여행책을 써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더 나이 들어 힘 빠지기 전에 그 꿈을 이루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요즘 행복하다고 말한다. 노년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젊었을 적에는 부양할 가족도 있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은퇴 후에는 그런 책임감이 없어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노년이 인생의 황금기라고도 했다.
“노년에 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핑계 대지 말고 과감히 도전해 노년을 멋지게 보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가 노년의 도전과 관련해 자전거 여행 중 겪은 일 가운데 늘 머리에 기억되는 장면을 들려주었다.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 엘리자벳 비터라는 68세 된 할머니를 유스호스텔 주방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석 달째 자전거여행을 하던 중이었고 3개월을 더 할 거라고 했어요. 그 나이에 나와 비슷한 무게의 자전거를 끌고 말이지요. 더구나 들리는 도시마다 카약, 요트, 루지 같은 아웃도어 스포츠도 즐긴다고 했어요. 비결을 물었더니 ‘욕심 없이 즐겁게 여행하는 것, 유 투!(You, too!)’라고 대답했어요. 그의 행복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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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금 2013-07-14 09:42:00
너무 멋 있으세요. 제가 항시 꿈꾸며 잠못이루고있지만 선생님은 실행하고 즐겁게사시는 그용기 박수를치고 응원하고있어요! 부럽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