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수발보험, 단지 노인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노인수발보험, 단지 노인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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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0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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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수발보험, 단지 노인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안 종 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지원 상임이사/보건학 박사)

이제 80세에 사망해도 장수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90세 정도는 돼야 그런 말을 듣는 사회가 됐다. 인간이 90세, 100세까지 사는 사회, 노인이 넘쳐나는 사회, 이른바 고령(화)사회는 축복과 동시에 위기가 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우아하게 오랫동안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건강하고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적절한 돈과 건강이다. 이 둘 가운데 건강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 나이가 들어서 건강이 나빠지고 돈이 부족한 것을 두고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의 우리 노인들은 젊어서 돈도 열심히 벌고 죽으라고 일했다. 이들은 자신이 번 돈을 모두 자식들을 위해 사용했으며 이 때문에 나이가 들어 건강도 잃었다.


또 젊어서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대개 건강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은 그 사람의 책임도, 가족의 책임도, 국가의 책임도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노화 현상의 하나다. 이는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지고 돌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아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여기에 재원 타령을 하거나, 노인시설 기반을 운운하거나 하는 것은 사치스럽다.

 

100% 완벽을 기한 뒤에 이들을 돌보는 시스템, 곧 노인수발보험을 하겠다는 주장은 이들이 겪는 아픔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중증 치매로 고통을 겪는 어르신과 일주일만 함께 지내보면 그는 자신의 입장을 180도 바꿀 것이다.


오랜 언론인 생활을 하다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들어와 노인수발보험 시범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전국 여러 곳의 시범지역을 방문해 치매, 중풍 등으로 고생을 하는 어르신과 그 가족을 많이 만났다. 그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중증 치매 가족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40대 초반의 딸은 중증 치매에 걸린 70대 아버지가 걸핏하면 밖으로 나가 남의 집이 자기 집이라고 우기며 들어가 행패 아닌 행패를 부리고 집안에서도 불을 켜놓고 끄는 것을 깜빡하고 잊는 바람에 냄비를 태워먹는 등 눈물겨운 고통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함께 간 우리 일행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는 지금 외출할 때마다 아버지를 홀로 방안에 둔 채 2중 3중으로 자물쇠를 밖에서 걸어 잠그고 식당 보조 일을 하러 나간다. 문을 잠그고 나가는 그녀의 발길은 늘 무겁기만 하다.

 

그녀의 바람은 단 하나. 하루빨리 국회가 노인수발보험법을 만들어 노인시설에서 아버지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만이 자신과 아버지를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국가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보듬고 어루만져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노인수발보험은 이제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시행해야 할 필수제도다. 노인수발보험 제도를 꾸려갈 능력도 없고 꾸려갈 뜻도 지방자치단체에 많은 것을 맡기자, 맡기자 말자로 고민할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가장 쉽게 제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전국적인 조직에 이를 맡겨야 이 제도를 빨리 그리고 원만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노인수발보험에 반드시 장애인을 포함시켜야 한다거나 시작 때부터 경증 치매환자 등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도를 일단 시행해놓고 차근차근 풀어도 될 문제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인수발보험법 제정의 발목을 잡는 행위는 온당치 못하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장애인이 될지 모르듯 일찍 죽지 않는다면 모두가 노인이 될 것이고 그는 언제 어떻게 치매·중풍 노인의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노인 문제는 바로 내 문제, 우리 사회의 문제다. ‘타는 목마름’으로 생명수를 찾듯이 노인수발보험법 제정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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