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법의학자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
1호 법의학자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7.12 10:55
  • 호수 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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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 감정서로 인해 감옥 가는 거 보면 안됐기도 해요”

국과수 창설 멤버, 15년 동안 1500회 부검
“남편 정액 통한 페니실린 쇼크로 사망한 부인도”

 

▲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정년 퇴임 기념으로 받은 자신의 흉상 옆에 서 있다.

‘1호 법의학자’ ‘한국 법의학의 태두’라는 칭호를 받는 문국진(89) 고려대 명예교수의 여의도 아파트 거실에는 커다란 흉상이 있다. 문국진 교수가 퇴임할 때 제자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솜씨가 출중하다. 국내 초상조각가 1인자 백문기 선생의 작품이다. 백 선생은 아무나 흉상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실력이나 인품이 자기 마음에 들어야 손을 댄다고 한다. 문 명예교수는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틀을 세웠고,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두벌죽음’(주검에 손을 대면 두 번 죽인다는 의미)이라는 부검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과수 창설 당시 규모가 어땠는가.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에 총무처란 부서가 있었어요. 거기에 딸린 창고에서 시작했으니까 알만 하지요. 서울대 의대 3학년 때 우연히 일본 법의학 책을 봤어요. 거기에 ‘사람에게 중요한 두 가지는 생명과 권리이다. 그 중 임상의학이 생명존중의 의학이라면 법의학은 권리존중의 의학이다’ ‘법의학은 민주적인 문화사회에서만 발달할 수 있다’는 말들이 쓰여 있었어요. 그걸 보니 그만 가슴이 뛰지 뭡니까.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부검이란 개념조차 없어 공부할 곳도 마땅치 않았어요. 마침 졸업하던 해(1955년)에 국과수가 만들어졌고, 주임 교수님이 국과수에서 보내온 공문을 보여주며 ‘의사가 필요하다는데 가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렇게 해서 조수 몇 명 데리고 시작한 겁니다.”

1970년까지 15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변사사건의 부검은 모두 문 명예교수가 처리했다. 문 명예교수는 “당시는 부검이 많지 않아 1년에 60건 정도였어요. 내가 있는 동안 1000~1500건 정도 했어요”라고 기억했다.

-처음에 한 부검은.
“겨울에 한강에 빠져죽은 남자였어요. 실족 아니면 자살이었지만 묘하게 된 사건이었지요. 의정부 미군부대에서 달러를 사다 서울에서 팔던 달러 장사였어요. 이 남자가 군복차림이라 헌병에 붙잡혀 가던 중 소변이 마려워 한강변에서 볼일 보다 물에 빠졌다는 겁니다. 가족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해 부검을 하게 된 겁니다.”

부검 결과는 익사였다. 외상은 없었다. 문 교수가 해야 할 일은 익사를 무엇으로 증명하는 가였다. 요즘은 물속의 부유미생물을 가지고 하지만 1960년대는 폐만 가지고 했다. 조직검사를 해 폐포(폐를 구성하는 단위)의 변화를 살폈다. 공기 대신 물을 들이켜면 폐포가 팽만 되고, 사후에 물이 들어가면 폐포가 꽉 차지 않고 허술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남자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물을 들이켜 익사한 것으로 판명났다고 한다.

-3공화국 최대 스캔들‘정인숙 사건’의 정인숙도 부검했는가.
“내가 하지 않고 내가 나온 다음에 다른 분이 했어요. 그거 부검한 해에 고려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국과수에 정인숙 성기가 보관돼 있다고.
“아니요, 없어요. 일본사람들이 기생 것을 가져다 놓았어요. 우리도 잘 몰라요. 경기도 경찰국에 있던 게 치안국 감식과에 갔다가 감식과가 국과수로 독립되면서 그냥 있던 겁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검은.
“1967년인가 68년인가, 한강에 나루터가 있을 때에요. 한강 백사장에서 여인네 변사체가 발견됐어요. 나룻배를 타고 귀가하는 딸을 마중 나갔던 40대 부인이 죽은 겁니다. 마침 그날은 딸이 친척집에서 자 딸을 만나지 못했어요. 주변에 벽돌 찍는 인부들이 50여명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당연히 용의선 상에 올랐지요. 부검을 해보니 이빨자국이 턱과 가슴, 성기 세 곳에 남아 있었어요. 턱에 있는 건 선명했고요. 인부들은 물론 부인의 남편까지 치과에서 이빨 석고를 떠가지고 오라고 해 대조를 해봤더니 남편의 것과 딱 맞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수사반장의 별명이 독종처럼 사건을 물고 늘어진다고 해 ‘세파드’였다. 그는 문 명예교수에게 “다시 한 번 조사해 보시오. 부인을 잃은 참담한 남편을 어떻게 범인으로 몰아 갈 수 있느냐”며 문 교수 모르게 치의대 교수에게 의뢰했다.
“연말이라 크리스마스, 신정 명절 다 쇠고 감정서를 쓰려고 했어요. 그 전에 나도 치과의사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어 소공동에 있는 치의대 교수를 찾아갔지요. 그런데 그 교수 하는 말이 ‘경찰이 나에게도 이런 걸 알아봐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 교수는 이빨 흔적이 남편의 것이 아니라고 경찰에 알려줬대요. 그래서 내가 한 방법을 봐 달라고 그랬지요. 치흔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르고, 바뀌지가 않아요. 그 치의대 의사는 상한 이만 치료했지 그런 건 모르고 있더라고요. 내 얘기를 듣고 나더니 자기가 ‘잘못 알았다’면서 그 자리에서 경찰에 전화를 하더군요. 그렇게 양심 있는 사람은 첨 봤어요.”

문 명예교수의 감정서에 따라 경찰은 남편을 구속했다. 남편은 사소한 일로 부인과 다투다 잘못 때려 죽였고, 그걸 숨기려고 이빨 자국을 냈던 것이다. 다음날 모든 신문에 ‘과학수사가 경찰수사를 이겼다’는 제목으로 크게 기사가 났고, 며칠 동안 화제가 됐다. 이 일로 국과수는 과학적인 진용을 갖추고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맞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그걸 보고 감정한 이를 오라고 해 들어갔어요. 나보고 ‘수고했다’면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어요. 진급을 원하면 진급을 시켜주고 돈을 원한다면 주겠다는 거지요. 내가 ‘다른 나라에는 법치학이란 게 있다. 우리에게 법치학을 공부한 치과의사를 한 명 달라’고 했어요.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무장관에게 명령했고, 그렇게 해서 온 이가 김정열 교수입니다. 그는 국과수 소장를 지낸 후 연세대 법치학 교수하다 나처럼 정년퇴임했어요.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 법치학을 만들었어요. 그 제자들이 모두 법치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한 게 계기가 돼 우리나라에 법치학이 도입된 겁니다. 그걸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자신의 감정서로 인해 감옥 가는 걸 보면.
“물론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생각을 하지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건은.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는 사건이 있어요. 을지로 6가에 닭을 팔던 ‘닭전골목’이란 게 있었어요. 통행금지 시간에 젊은 여자가 살해된 채 야경들에 의해 발견됐어요. 다음날 부검을 했어요. 여자는 팬티 2장을 입고 있었고 팬티 가운데가 기역자로 찢겨 있었어요. 그리고 질 안이 두 번 칼로 째져 있었고요. 사인은 머리를 맞은 거였고요. 지문으로 신원을 찾아 주변 인물을 알아봤더니 죽던 바로 그날 밤 대학생 남자친구와 같이 근처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헤어졌던 사실을 알아냈어요.”

남자친구는 여자에게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여자가 ‘그냥 가라’고 해서 헤어졌고 그게 전부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의 소지품에서 피가 묻은 가재수건이 나왔고, 혈액형도 여자의 것과 일치했다. 경찰이 추궁하자 남자친구는 키스를 하는 중 잇몸에서 나온 피가 묻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팬티 2장을 찢고 칼을 들이밀려면 그 전에 손가락을 먼저 넣어야 해 손톱 밑에 분명 피가 묻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톱을 깎아다 살폈다. 실제로 혈흔이 소량 묻어 있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또 다시 해괴한 주장들을 폈다. 괴산의 시골 고향집에서 노루를 잡아 그 피를 마시다 손톱 밑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비후성 비염을 앓고 있는데 피가 가끔 나오면 검지와 엄지 두 손가락을 코 안에 집어넣고 지혈한다 등등. 불행히도 손톱 아래서 나온 피는 양이 적어 사람의 피인 지 동물의 피인 지 구분이 안 갔다.
“미궁으로 넘어갔어요. 강간은 아니었고요. 그때 손톱만 제대로 관리했다면 혹시 모르지요. 그래서 경찰대학에 가서 강의할 때 몇 번째 손가락에서 나온 손톱인가 그거 꼭 기입하라고 합니다.”

-‘복하사한 여자’도 부검했다는데.
“마흔 살 된 중년 부인이 남편과 성행위 중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 죽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남자는 복상사(腹上死), 여자는 복하사(腹上死)라고 해요. 복하사라면 뇌동맥류를 지녔던 사람들이 성행위 중 동맥류가 파열돼 뇌출혈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부인은 그런 게 없어요. 급사한 부인의 소지품을 조사하던 수사관이 의사의 소견서 한 장을 가져다주었어요. ‘페니실린 과민성 체질이니 본인에게 페니실린을 절대 주사하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지요. 남편에게 물었더니 편도선염을 치료하느라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는 겁니다. 남편의 정액을 통해 페니실린이 전해진 거지요.”

문 명예교수는 8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책을 쓰고 있다. 총 50여권의 책을 펴냈다. 23년 전 고려대를 정년퇴임 하고법의학과 결부된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시체를 부검해 사인을 알아내는 것처럼 책을 가지고 부검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베토벤의 사인에 관해 책에 쓰인 글을 종합해 보면 베토벤은 매독성 간경변으로 죽은 게 아니라 알코올성 간경변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 있어요. 매독성 간경변은 제3기에 고무종이 형성돼 간이 비대해지는데 베토벤의 간은 위축돼 있었거든요.”
문 명예교수는 “알아봤더니 전 세계에 이런 일을 하는 법의학자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몰랐던 것을 아는 것만큼 기쁜 게 없죠. 지금 이렇게 나이가 많아도 희열을 느끼면 거기에 몰두하게 됩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문국진 명예교수 약력
서울대 의대 졸업/동 대학원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과 과장/고려대 의대 법의학 교수/뉴욕대 의대 법의학 객원교수/대한민국 학술원 회원/고려대 명예교수/저서 ‘최신 법의학’ 등 법의학 전문서적 23권/‘명화와 의학의 만남’ ‘미술과 범죄’ 등 12권/일본어 공저로 펴낸 책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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