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할머니가 부쳐주시던 부채바람
[기고] 할머니가 부쳐주시던 부채바람
  • 홍재석
  • 승인 2013.07.12 11:37
  • 호수 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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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바람은 부드럽고 순해 화사한 꽃바람처럼 만인이 반긴다. 산 너머 시원한 산들 바람은 연풍이다. 땀에 전 베적삼을 말려주는 고마운 바람이 아닌가. 정자나무 그늘에서 쐬는 어른들의 부채바람은, 변한 세상을 한탄하듯 심신을 달래려고 부치는 바람이다.
선인들은 부채를 선자(扇子)라고 불렀다. ‘팔덕선’(八德扇)을 갖고 있다는 것. 즉, 부채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요긴하게 깔고 앉으며, 햇빛을 그늘지게 해준다. 손에 들고 지휘봉으로 사용했으며, 보기 싫고 추한 모습을 가려주며, 심신을 청량하게 한다. 또, 품위와 멋을 내며, 시원한 청풍으로 더위를 쫓아내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국사기에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은 고려 국을 개국한 왕건의 즉위식에 사신으로 하여금 공작새 깃털로 만든 ‘공작선’(孔雀扇)을 선물로 보낸 기록이 있다. 공작선은 조선조 말까지 궁중의 의장으로 옥좌(玉座) 뒤편에 붉은색의 공작을 그린 큰 부채를 세웠다. 그만큼 귀하게 여기고 염천의 더위를 내쫓는 상징적 의미와 위풍의 믿음을 가졌으리라. 그 의미로 청와대에 황금색 공작휘장을 두른다.
옛날부터 서민들은 ‘부들부채’를 애용했다. 주로 버드나무가지, 왕골, 풀잎 등으로 만들었다. 양반들이 사용하던 ‘합죽선’은 대나무 겉대를 얇게 깎아서 한지를 바르고, 접었다 펼쳤다 자유롭게 하도록 만든 부채로서 지금까지 호평을 받고 있다.
부채는 재질과 모양에 따라 붙여진 이름도 70여가지란다. 손잡이 자루부채로 태극무늬를 그린 둥근 ‘태극선’은 국위선양에 이용한다. 일직선 자루는 오동나무 잎 같다고 해서 ‘오엽선’ 이라 했다. 곡선 자루는 ‘곡두선’이라 불렀다. 지금도 명창들은 뜨거운 노래를 뽑아낼 적에 부채로 장단을 맞춘다.
유년시절의 여름철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여름철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들마루 위에서 할머니가 부쳐주시던 부채바람에 단잠을 자곤 했다. 그 버릇 때문에 지금까지 잠자리 머리맡에는 작은 부채를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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