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노엽고 괘씸해도 사랑으로 용서를”
[활기찬 노년생활] 노엽고 괘씸해도 사랑으로 용서를”
  • 박영선
  • 승인 2007.02.09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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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분통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대해준다” 섭섭
이럴 땐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져야

 

일흔 다섯의 연모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괘씸해 죽을 지경이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떠받들어야 할 하늘같은 존재인데, 소 닭 보듯이 별관심도 없이 무덤덤하게 대하는 게 영 불만이다.

 

아제만 해도 그렇다. 오전에 등산 갔다가 출출해져서 집에 들어왔는데 며느리가 “아버님 시장하시죠?”하고 묻기는커녕 이웃집 여자와 여전히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칠거지악감이라는 생각에 분통이 터져 나왔지만, 이웃집 여자가 있는 것을 감안해 분을 삭이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예순 여덟의 강모 할머니는 딸 때문에 화병이 날 지경이다. 주말에 할머니들과 온천으로 여행 갈 계획을 짜놓았는데 금요일 저녁에 불쑥 손자, 손녀, 사위와 함께 나타나 회사에서 갑자기 부부동반 스케줄이 생겼다며 주말에 아이들을 맡아 달라고 통보(?)를 했다.

 

늙은이도 사생활과 계획이란 게 있는데 딸은 매번 그런 식이다. 회사 일을 핑계로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육아를 아예 친정어머니인 자신에게 강제로 떠넘기다시피 한다. “안돼” “싫다” 퉁박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마음이 약해져 딸의 부탁을 들어주곤 한다. 손자, 손녀가 가여워 응낙을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엔 짜증이 묻어난다.

 

‘사랑으로 세계를 품어라’의 저자이며 의학박사인 황성주씨는 사람의 내면세계에는 과거의 온갖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나이테가 있다고 한다.

 

생각과 정서의 필름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아픈 상처와 불행했던 과거는 결코 없어지지 않으며, 또 그 기억들은 살아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의 나의 사고와 정서, 행동에 깊은 영향을 주고 그가 맺고 있는 모든 대인관계의 영역 속까지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사실 ‘며느리가 자신을 잘 대접해 주지 않는 것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되어서다’하며 저녁내 끙끙거린 연 할아버지의 분통은 저녁에 퇴근해 들어온 아들에게로 이어진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들어온 아들은 집에 들어와서도 편히 쉴 수가 없다. 당연히 아들은 삶이 고달프다는 상념에 빠지고, ‘울컥’하는 심사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이어진다. 결국 연 할아버지의 분통은 부메랑처럼 돌아간다.

 

황성주 박사는 피해자의 입장으로 잠재되어 있는 깊은 상처들은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가해자로 만드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면 될 수록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기는커녕 좌절감과 증오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깊어간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정서적인 상처를 어떻게 건설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증오와 두려움의 감정 대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 봐야 한다는 것. 칠십여 년간의 세월을 살며 인생의 거친 세파를 헤치고 나온 성숙한 자아로써 포용력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며느리도 오십이 넘었는데 다른 주부들 같으면 가사와 육아에서 조금 손을 놓을 나이다. 그런데 홀시아버지를 모시느라,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다. 모처럼 옆집 여자가 놀러 와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중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밥쯤은 배가 고픈 내가 챙겨 먹어야지. 한 끼 식사 정도는 며느리 손을 빌지 않아도 얼마든지 챙겨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 요즘 직장생활하기가 얼마나 어려워.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우스개 말도 있다잖아. 아무래도 남보다는 부모가 낫지.’

 

이런 마음이면 충분히 며느리와 딸, 사위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게 상처를 주고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가해자도 병든 자아와 쓰라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내가 그런 상황이었더라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상황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노엽고 괘씸한 상황이 늘 수 있다. 이럴 때마다 분통을 터뜨리지 말고 상대를 반복해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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