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업자 반발로 시내버스 무료승차제 폐지
(26) 업자 반발로 시내버스 무료승차제 폐지
  • 박재간
  • 승인 2013.08.09 11:19
  • 호수 3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재간 선생의 한국노인복지 반세기

간담회서 경로사상 고취 위한 경로우대제 주장
전 대통령 질문에 ‘서구사회는 모두 한다’ 둘러대


한국노인문제연구소가 1982년 주최한 대통령 주재 ‘국가원로 초청 노인문제 간담회’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경로효친의 사회규범이 이완되고 있는 원인이 노인들에게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자녀들 가정교육을 잘못 시켰다거나 웃어른으로서 교양 또는 언행에 문제가 있었다면 젊은이들로부터 대접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노인회가 노인들 대상 자체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누구의 잘못이든 참석자 전원은 평등주의와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를 추구하는 서구사회 가치관이 만연된 현대사회에서 과거 조선왕조시대의 효를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필자는 약 10분간 노인문제의 현황을 설명한 후 “우리나라는 현 단계에서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노인복지에 많은 재정을 투입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간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경로사상 앙양을 위한 국민계도활동과 시내버스 지하철 무료이용을 핵심으로 하는 경로우대증제도는 실시해야 한다. 경로효친의 미풍양속을 지닌 국가이므로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국가원로회의에서 경로우대증 얘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모처럼 대통령을 모시고 노인문제를 논의하는 기회를 빌려 노인사회를 위한 선물 하나쯤 따내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간담회가 끝난 후 점심식사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필자에게 “서양에서도 노인들에게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게끔 하냐”고 물었다. 필자는 “그들 나라에서는 진작부터 그런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구사회는 시니어패스(Senior Pass)라 해서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대중교통요금을 할인해 주는 나라가 적지 않지만 무료승차까지는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일부러 설명하지 않았다.
전 대통령은 경로우대증제도를 노인들의 시내버스·지하철 무료이용제도로 생각한 것 같았다. 그해 3월 초 어느 날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노인회로 연락이 왔다. 대통령 특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에게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무료로 승차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었다. 곧 교통부에서도 연락이 왔다. 시내버스업자들을 설득시키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당시 전국 시내버스 회사는 380여개사가 있었는데 그들의 동의를 얻어내느라 장관이 고생한 모양이었다. 천명기 장관을 비롯한 보건복지부 관련부서도 이 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애를 많이 썼다.
이같은 진통 끝에 전국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보건복지부장관 명의의 경로우대증이 발급됐다. 1982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기해서 전국 노인들은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게 됐다.
그 후 노태우 정권 때인 1989년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전국 시내버스업자들이 더 이상 노인들 무료승차를 시킬 수 없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 해 10월 1일부터 시내버스 무료승차 제도는 폐지됐다. 그래서 당시 대한노인회 이병하 회장과 필자는 교통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청와대의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차례로 방문하고, 시내버스 무료승차제도 폐지에 따른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노인단체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힌 정부는 그 대안으로 정부 예산을 배정해 노인들에게 시내버스 무료승차표를 1인당 월 30매씩 배포하는 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도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자 1994년부터는 무료승차표 대신 매월 현금 1만2000원씩 주는 제도로 전환했다. 그 후 2008년 기초노령연금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버스요금 지급제도 자체가 소멸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는 2013년 현재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필자는 경로우대증제도의 탄생과 성장에 함께 했지만 1982년 초 전두환 대통령에게 노인들의 무료 대중교통 이용을 건의하다가 서구사회에 대해 사실과 다른 말을 했던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물론 그것은 노인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선의에서 나온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