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의 만남 (2)] 정원식 前 국무총리 ①
[명사와의 만남 (2)] 정원식 前 국무총리 ①
  • 관리자
  • 승인 2007.02.0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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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장관·총리 경륜, 장애아동 복지 마지막 봉사

경제 여건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가 각박하다고 합니다. 이에 본지는 가슴 훈훈하고 희망과 의욕이 생겨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직 고위관료, 정치인, 성직자, 기업인, 학자, 전문가 등 각계 명사들로부터 들어보는 지면을 마련합니다. 명사들이 가슴에 묻어두고 말하지 못한 뒷이야기와 후인들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를 들어봅니다. 그 두 번째로 이번 호부터는 정원식 전 국무총리를 3회 연속 만나봅니다. 정원식 총리는 1928년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에 오르고,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했습니다.
글 : 박병로 편집국장


 

나이가 들면 새로 생성되는 세포 수는 줄고 세포분열과 사멸의 메커니즘도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때부터는 또 피부와 살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쳐지고 주름이 생긴다. 생명체로서의 이런 노화는 어쩔 수 없는 신의 섭리. 그래서 노년에 이르면 약간 살이 찐 듯해야 보기가 좋은 지도 모른다.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80세이니 상노인이지만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체격이 건장하고 얼굴은 주름이 별로 안 보인다. 총기가 있는 눈빛과 넓적한 갈색 뿔테 안경 때문일까. 지금 재직 중인 파라다이스그룹 산하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그는 청년처럼 정정했다.


정 총리는 “본래 내가 건강체질입니다”며 “다섯 시쯤 되면 퇴근해서 운동을 하든가 친구를 만나든가 하며 한두 시간 지내고 집에 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건강은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이른바 업(業)이 있다는 것, 보람을 느끼는 일이 있다는 것이 크게 건강에 도움이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라고 했다.


업무수행에 80세 나이가 지장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아직 정신 기능이 퇴화되었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 괜찮아요. 또 우리 재단이 내가 힘들어 보이는 일은 알아서 해주는 분위기가 돼 있어요.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젊은이들 업무 페이스를 어떻게 맞추나 걱정했는데 직원들이 배려해줘 별로 지장이 없이 잘 지내요.”

 

80세의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보조를 맞춰가며 불편함 없이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정원식 총리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고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했던 경륜을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사장시키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결코 옳은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작은 재단이지만 의미 있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장학사업이나 교육이 아니라 장애 아동을 위한 특성화된 사업을 하는 재단이지요.”


작다고 하지만 직원이 25명이나 된다. 사업내용 면에서도 장애아동과 관련하여서는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그런 자부심 때문일까. 파라다이스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의 재단에 대한 애착일까. 사업 내용을 하나하나 소상히 말해주었다.


“우선 현장프로그램 지원사업으로 크게 풀뿌리단체 지원, 장애인 인식개선사업, 실명예방 지원, 장애 비장애통합 프로그램 사업, 행사 지원, 장애재활 지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관련 모임·단체·연구회 등 소규모 단체를 지원하는 사업에서부터 장애인 인식개선 사업, 2004년 한국실명예방재단과 협약을 체결하여 지원하고 있는 성장기 어린이ㆍ청소년의 시력회복과 실명예방을 위한 지원 사업, 저소득층 아동을 중심으로 인공와우 관련 재활지원 사업 등 다양합니다.”


정 총리는 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아이소리네트라고 장애전문 포탈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전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장애아동의 치료, 교육 및 재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관련자들이 정보를 함께 나누고 그런 활동을 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장애아동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앞장서고 있는 것.
장애관련 전문연수가 많지 않은 국내 실정에서 교육청의 특수분야 우량 연수기관으로 지정받아 특수교사에게 연중 직무 연수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파라다이스 연합봉사활동(홀트일산복지타운 가족들과 봄소풍).

 

또 특수교사를 포함한 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장애관련 전문가들에게 다양한 연수교육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장애아동 가족 및 활동가에 대한 교육도 이 재단 교육사업의 하나.


그 밖에도 비정기 사업으로 장애아동 고정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아름다운 여행(SBS)’ 방송 지원, 중증 장애아 재활용구 지원, 편의시설 지원사업 등 다양한 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서울대 교수로 30년을 재직하고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가 국무총리직에 이르렀던 인물 같지가 않다. 사실 복지사업과 인연이 아주 없던 것도 아니다.

 

본래 교육학을 전공했고 특수교육에 대해서도 잘 알았지만, 무엇보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인연이 컸다. 정 총리는 “거기서 불우한 사람, 재난 당한 사람 돕는 일을 하다 보니 불우한 장애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라며 “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 하던 터에 복지관에서 나를 초청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라고 했다. 벌써 5년째다.

 

정 총리는 “여길 맡아서 제 딴에는 보람이 있는 일로 여기고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며 “나이 들었다고 집에 있어 봐도 그렇고, 조그만 사무실이지만 일을 하면서 서재를 겸해서 글도 쓰고 하니 좋아요.”


장애아동 복지사업에 푹 빠져 있지만 역시 그는 역대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중 근대사에 큰 획을 긋는 사업을 결재하거나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정 총리 스스로 “문교부 장관일 때는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일로 2년을 보냈고, 국무총리 재임 중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남북관련 일로 2년을 보냈어요”라고 할 정도로 민주화 시기, 남북교류의 장이 열리던 시기 동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


그가 어떻게 해서 장관이 되고 국무총리가 됐을까. 원래 특별한 야심이 없었다고 한다. 정년퇴임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하여 저술활동을 하고 강의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문교부 장관이 됐다는 것.

 

정 총리는 “1988년인가… 노태우 대통령이 갑자기 문교부를 맡아주어야 되겠다는 것이에요. 그 바람에 정년퇴임을 못하고 학교를 떠났어요”라고 했다. 민주화운동이 확산되면서 전교조가 생겨나는 등 교육 분야에서 여러 가지 과제가 부각되자 노태우 대통령이 학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그를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때 가장 어려웠던 일이 전교조 문제였습니다. 그때 새롭게 노동운동을 시작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교원들의 노동운동 자체를 썩 좋다고 생각 안했어요. 그런데 무척 걱정스럽게 생각한 것은 이들이 의식화 교육을 시작한 것이에요. 본래 교육이 의식화이지만 편향된 잘못된 방향으로 의식화를 하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중고생이 사회를 보는 시각을 사시적으로 보게 한다거나, 왜곡된 관점에서 보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잘못된 시각을 심어주는 이념교육을 하려고 했던 것이 나로서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 신념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전교조 교사들과 전면적인 대결을 했다. 정 총리는 “주동하는 사람들 중 내 제자들이 많고 그래서 붙들고 호소도 하고, 교원노조를 탈퇴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의식화교육을 중단할 것도 권유했습니다”며, “전교조 교사 1만5000여명을 거의 설득을 했어요”라고 했다.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기대한 바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한 셈이다. 그런데 그때 탈퇴하지 않고 대결구도로 나온 1460명의 교사들도 있었다. 정 총리는 “가슴 아프지만 그들을 학교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마지막까지 호소해도 안 들어서 결국 어려운 결단을 했습니다”라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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