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노인, 건강하고 소득 보장된 노인
만들기 위한 교육 당장 실시해야”
“우수한 노인, 건강하고 소득 보장된 노인
만들기 위한 교육 당장 실시해야”
  • 글·사진=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8.23 14:32
  • 호수 38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0대에 日 치매 소설 ‘모록’(耄碌) 번역한 고병열 요산출판사 대표

‘치매 소설’ 읽는 것도 노인 교육의 하나
40년 전부터 노인복지 관련 책 사들여


“지금 당장 50~60대를 대상으로 노인준비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나 개인적으로 커다란 재앙을 초래할 겁니다.”
일흔 넘은 나이에 일본 치매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한 고병열 요산출판사 대표(79)가 신신당부하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 인구(약 620만명)가 앞으로 17년 후인 2030년엔 1200만명으로 늘어나면 노인문제가 당연히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고 대표는 이 같은 문제를 일찌감치 예측해 40여년 전부터 노인복지와 관련된 책을 있는 대로 사 모았고 노인문제에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모록’(耄碌·늙음)을 번역한 것도 그런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소설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이 소설은 1970년대 일본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다. 종로에 있는 외국전문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보고 구입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는 노인에 관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 역시 우리나라 노인들이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쳤다. 수십 년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에 우리말로 옮겼다. 일본어를 잘 몰라 우리나라에 온 일본여성에게 일본어를 배우며 번역했다.”

-어떤 내용인가.
“이 책은 일본이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시기에 나왔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준비가 안 돼 있는 노인복지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에 다니는 40대의 여주인공 아키코는 치매에 걸린 84세 시아버지 시게소를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시아버지는 한때 며느리를 내쫓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소설의 절정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혼자 두고 출근할 수 없어 시아버지를 맡아줄 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이다. 처음엔 ‘노인클럽’이란 곳을 찾아갔지만 그곳은 치매 노인을 돌봐줄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자신의 상사인 변호사를 통해 후생성에 알아봤지만 치매도 일종의 병으로 판단, 결국 갈 곳은 정신병원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키코의 남편은 아프고 추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충격을 받기도 한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겪는 참담한 현실을 통해 정부의 노인복지정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설은 아키코가 생전의 시아버지가 늘 바라보았던 새장을 가지고 계단을 내려오다 주저앉아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당시 일본에서 반응은 어땠는가.
“원작을 쓴 아리요시 사와코(有吉佐和子·1931~1986)는 기자 출신으로 천재작가이다. 40대에 이 소설을 써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72년 처음 책이 나온 후 38년 동안 62쇄를 찍을 정도로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책 제목 ‘모록’이란 뜻은.
“모록이란 단어는 내가 처음 책에 도입한 말이다. 일본에서는 쓰지만 우리나라는 안 쓴다. ‘늙음’을 의미한다. 치매와는 조금 다르다. 원작의 제목은 ‘황홀한 사람’(恍惚の人)이다. 치매 걸린 상황이 항상 멍하니 있는 상태이다. 세상 물정 모른 채 눈만 뜨고 있는 그 상태를 황홀하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픈 할아버지를 사회에다 끄집어내 한가운데 놓고 보니 너무나 비참하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내가 할아버지가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을 생각해 ‘모록’이라고 했다.”
고병열 대표는 “조만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노인들과 노인복지문제를 어떻게 감당할 건가. 국회에서는 돈이 없어서 못한다. 정부가 돈을 들여 노인복지정책을 펴는 것도 좋지만 곧 노후를 맞는 50~60대를 ‘우수한 노인’으로 만드는 준비 교육이 더 절실한 문제다. 준비가 잘 되면 이들이 노년으로 진입할 때 절대 수는 늘더라도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 노인 수는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개인은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나라는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 대표에 따르면 우수한 노인은 소득이 보장되고, 건강한 몸에 정신적으로 잘 무장돼 있는 노인이다. ‘모록’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우수한 노인이 되는 준비 과정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병열 대표는 1934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나와 국세청에서 20여년 근무했다. 한국세무사회 부회장을 지냈고, 지금도 세무사 사무실과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