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천칼럼] ‘천금보다 값진 사죄하는 마음’
[심천칼럼] ‘천금보다 값진 사죄하는 마음’
  • super
  • 승인 2006.08.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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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어릴 때는 누구나 위악적인 행동을 한다. 일종의 집단심리가 발동하여 멀쩡한 남의 집 호박을 발로 차기도 하고, 벌집을 보고 구멍을 쑤셔 혼비백산 달아나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듣고 벌이나 황소에게 쫓기기도 하지만 자연 속에서 뛰놀던 기억은 역시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남의 집 닭장의 닭이나 감자와 수박 같은 것들을 서리한 기억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감자 몇개를 서리하자고 온 감자밭을 헤쳐 농사를 망쳐놓고, 닭서리를 하기 위해 도둑처럼 남의 집 대문을 몰래 열고 들어가 닭장에까지 침투해야 했던 것이다.

 

더러는 서리한 닭을 잡아먹다가 환히 밝힌 불빛을 보고 찾아온 닭 주인에게 발각되어 혼쭐이 나고 닭 값을 물어주기도 했으나 들키기 전까지는 장난으로 생각하고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그 시절은 인정이 많았다. 먹거리가 없어 기아선상에 있어도 누구 짓인지 알면 아는 대로 몇마디 훈계를 하고 몰라도 그리 속상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서리한 일로 부모들이 대거리를 하는 일도 물론 없었다.


어린 시절 악동 노릇을 하고 다녔으나 딱 하나 못해본 게 있다. ‘공짜기차’라고나 할까 무임승차라고나 할까, 아니면 도승(盜乘)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한창 때는 검표원이 오면 화장실에 숨거나, 의자 밑에 숨는다는 식의 공짜기차를 탄 무용담이 많이 떠돌았다. 학생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한다면 못할 일도 없었을 터인데 시도해보지 못했다.

 

시골역에서는 표 없이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쉬웠고 기차에서 내린 뒤 빠져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나, 결국 공짜기차를 타보지 못하고 경로우대권을 받는 나이가 됐다.


조흥은행이 109년 만에 문을 닫았다. 한때 이 은행 청원경찰로 근무했던 사람이 마지막 날 100만원을 보냈다고 하여 화제다. 근무하던 당시 그는 온풍기 연료비(기름통 10통 정도)를 착복하고 커피 자판기에서 동전을 몇번 꺼내 쓴 일이 있는데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조흥은행이 문을 닫게 되면 그 값을 치르고 용서를 빌기 어렵게 될 것 같아 100만원을 보냈다는 이야기다.


사죄하고 용서를 빌 대상이 없어지기 전에 마음의 빚을 그렇게나마 갚은 것은 관전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천만다행이다.

 

사회에 흘러 다니는 눈먼 돈이 없는지 눈에 불을 켜는 세상에 어렵던 시절의 작은 잘못을 사죄하고 되갚은 100만원은 천금보다 값지다.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것은 이런 아름다운 마음들이 아닐까.


나는 어떤가. 수박이나 감자서리를 한 그 밭의 주인들은 사라졌거나 바뀌었을 것이고, 닭을 잃어버린 이웃집 어른들도 이제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 은행 청원경찰처럼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늙어간다. 고향 초등학교나 이런 저런 행사에 얼마간 기부를 해보기도 했으나 이제야 악동시절을 애틋하게 돌아본다. 그 시절은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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