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만난 감동의 사연들, “이젠 한글 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만난 감동의 사연들, “이젠 한글 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 글·사진=조종도 기자
  • 승인 2013.09.13 10:47
  • 호수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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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시화전 최우수상을 받은 강춘자 어르신의 ‘무서운 손자’와 정정자 어르신의 ‘난쟁이 민들레’, 조연순씨의 ‘이제는 꽃으로’.

할머니에 동화 읽어 달래서 ‘무서운 손자’… 이젠 귀여운 손자
글 익힌 뒤 벼르고 별렀던 감사의 편지… 답장 받고 더 감격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리기 어렵다. 누구나 쉽게 읽는 글자를 읽지 못하니 창피하기도 하고 의사소통이 안 돼 답답하다. 세종대왕은 567년 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한글을 창제했건만,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치다보니 평생 문맹의 한을 품고 사는 경우가 많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글자를 읽지 못하거나 글자를 읽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19세 이상 성인만 260만명에 달한다. 20세 이상 성인 가운데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졸업 미만의 저학력 성인은 577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지독한 가난 때문에, 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이 많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이들에게 우리말 우리글을 읽힐 기회를 주고자 성인 문해(文解)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2006년부터 매년 2만여명이 사회복지관·한글교실 등 전국의 교육장에서 문해교육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늦깎이 성인학습자의 ‘문해교육’ 참여 성과를 격려하고 문해교육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국가평생교육원은 최근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을 개최했다. 이 시화전은 유네스코(UNESCO·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가 제정한 ‘세계 문해의 날’(매년 9월 8일)에 즈음하여 마련된 문해주간(9월 6일~12일)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전시장 등 전국 37곳에서 동시에 열렸다.

▲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실시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88세의 나이로 최우수상을 차지한 박태순 어르신이 작품 ‘88세 초등학생’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시화전에는 전국 문해교육 프로그램 수강생 가운데 5992명이 참여, 총 106개의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우수상인 교육부장관상에는 강춘자(72) 어르신의 ‘무서운 손자’, 정정자(75) 어르신의 ‘난쟁이 민들레’, 박태순 어르신(88)의 ‘88세 초등학생’ 등 10개 작품이 선정됐고, 강말선(78) 어르신의 ‘글 배우러 간다’ 등 15개 작품이 우수상인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상을 받았다.
9월 6일 세종문화회관 예인마당에서 열린 ‘문해 주간 선포 및 시화전 시상식’에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과 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등이 참석해 축사를 했으며, 우수작품 시낭송회도 함께 진행됐다.
수상 작품에는 늦깎이 학습자로서의 애환과 순수한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생업에 바쁜 사람도 있고 머리가 굳어 애먹는 사람도 있으려만, 작품들은 한결같이 ‘행복’을 말하고 있다. 그동안 겪은 고생과 설움, 슬픔을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와 보람으로 툭툭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할머니 다리에 누워
옛날 얘기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는데

우리 손주는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니
무서워 죽겠다
말로 하는 이야기라면
손으로 하는 음식이라면
손주놈이 해 달라는 대로
해줄 수 있으련만

달려가 보듬어 안고파도
손주놈 손에 들린
동화책이 무서워
부엌에서 나가질 못한다

최우수상을 받은 강춘자 어르신의 ‘무서운 손자’에 나오는 시이다. 손자가 사랑스러워 안아주고 싶어도 손자가 읽어달라고 내미는 동화책이 무서워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무서운 손자’라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전남 여수시 화양면에 사는 강 어르신은 마을 이장의 권유로 ‘용주리 한글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주경야독하여 글을 깨우쳤다고 한다.

민들레 꽃씨가 되어 훨훨 날아
좋은 들 좋은 언덕에 떨어져
아름답게 핀 내 언니 오빠 동생!
난 어찌해 돌틈에 떨어져
누구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
난쟁이가 되었나

내 민들레 꽃씨들은 다 훨훨 날아
좋은 들 좋은 언덕에 사뿐히 내려 앉아
곱게 피어 노래 부르면서 자라라

‘난쟁이 민들레’란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정정자 어르신은 시집을 내는 게 꿈이다. 경기도 부천시 원종종합사회복지관에서 글을 익히고 있는 그는 작품에서 자신과 형제들을 민들레 꽃씨에 비유해 현재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또한 공부를 통해 자신의 민들레 꽃씨가 좋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날 수상자 명단에는 88세 박태순 어르신이 당당히 들어 있어 많은 사람의 축하와 경탄을 한 몸에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중앙동복지회관의 서로사랑문해학교에서 소망반 반장을 맡고 있는 박 어르신은 “지금까지 2년간 공부했는데, 초등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3년은 더 하려고 한다”면서 “공부가 힘들지 않고 예전에 왜 한글공부 시작하는 걸 창피하게 생각했는지 후회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르는 게 있으면 며느리나 누구한테도 물어본다”며 이 모든 게 가족(4남2녀) 덕분이라고 말하는 박 어르신. 그의 작품 ‘88세 초등학생’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힘들게 학교에 도착하지만 한글공부의 결실에 감사한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또한 ‘머리에 구멍났나 보다/ 배운 대로 빠져 나가는 기억들’이란 구절을 통해 학습의 어려움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우수상을 받은 이금자(66·평택 합정복지관)씨의 작품 ‘편지’에는 따뜻한 사연이 담겨 있다. 이 씨가 다녔던 옛 직장의 사장은 못 배웠다고 괄시하지 않고 정당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그는 그 사장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었지만 편지 한 장 쓰지 못해 안타까웠다. 이제 한글을 배워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써서 보냈는데 답장까지 받아 정말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이씨는 요즘 수수께끼 같던 글씨가 눈에 들어와 신문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편의 격려를 받고 있다는 그는 “그동안 3년을 공부했는데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뒤에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수상을 받은 김남순(70) 어르신은 ‘나는 행복해요’라는 작품에서 “늦깎이 학생이 된 내 마음/ 그 누구도 모르지요/ 나만이 아는 비밀 생각만 하여도/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행복송을 부른다.
장려상을 받은 표연숙(65)씨는 작품 ‘배움의 비’에서 “목말라 목말라 목이 말라 배움에 목이 말라” 라고 배움에 대한 갈증을 절절히 표현하면서도 “예전에는 너무 답답한 삶이었다/ 이제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읊조리고 있다.
장려상은 받은 이순이(75) 어르신은 작품 ‘나의 행복’을 통해 “칠십이 넘어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재미있게 하고 노래를 부르고 영어공부를 하다니 꿈만 같고 행복하다”고 노래한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신달자(70) 시인은 심사평을 통해 “늦은 배움을 통해 글자를 익혔다는 감동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동심의 마음을 너무나 오랜만에 보았다는 순수의 충격 때문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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