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걸어온 이에게 라면 끓여주며 망원경 보여줘
산길 걸어온 이에게 라면 끓여주며 망원경 보여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09.27 11:37
  • 호수 3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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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사설 천문대 1호 금구원천문대 김오성 관장

최고 성능 망원경… 일본 천문잡지에 소개되기도
일본 지바현 등 국내외에 작품 전시 유명 조각가

 

▲ 김오성 관장은 당시 최고 성능의 망원경을 갖추는 등 1억원을 투자해 천문대를 지었다.

“하루 종일 허리 구부리고 돌을 쪼다 밤에는 허리를 펴고 별을 바라보는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 위치한 금구원천문대 김오성(68) 관장의 말이다. 김 관장의 본업은 조각가. 사설 천문대 1호를 1991년 11월에 세웠다. 첨성대보다 더 튼튼한 6m 높이의 화강암 기단 위에 올려놓은 반구형의 돔이 반으로 갈라지고, 360도 회전한다. 돔은 3.5m 스테인리스 골조의 동판으로 덮었다. 구경 206㎜ 스타파이어망원경이 마루바닥 3m 아래서부터 올라와 대포처럼 하늘을 겨누고 있다. 미국 아스트로피식스 제품의 이 망원경은 광학유리 3장을 겹쳐놓은 굴절망원경으로 6000~7000광년 떨어진 은하를 관측할 수 있다. 설치 당시 국립천문대보다 성능이 좋았다고 한다. 또 다른 178㎜ 망원경과 가이드스코프 등을 포함해 모두 1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영화관의 ‘대한뉴스’와 일본 월간지 ‘천문가이드’에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엔 규모가 큰 국공립천문대도 많이 생겨났고, 성능 좋고 값비싼 망원경이 많아져 옛날의 명성은 빛을 바랬지만 개인 천문대로서는 여전히 위엄을 잃지 않고 있다.
김 관장이 망원경으로 본 가장 인상 깊은 천체 장면은 1997년 7월 중순, 혜성과 목성이 충돌하던 순간이었다.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의 조석력으로 인해 부서지면서 목성에 흡수되는 장면을 관측한 것이다. 당시 김 관장이 찍은 목성 사진이 일간지 1면에 크게 실리기도 했다.
“혜성덩어리 여러 개가 자전하는 목성에 순차적으로 떨어지면서 여러 개의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나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서 우주의 신비감에 황홀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마른장마 덕분에 하늘도 맑아 더욱 선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김 관장이 천문대를 짓게 된 건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었다. 깜깜한 골목길을 걷다가 올려다본 하늘의 별들에 매료됐고,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커다란 망원경을 마련해 별들을 가까이 관찰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책에 나온 정보는 박제된 지식이라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욕망이 더 컸던 거지요. 어떤 이들은 큰돈이 생기면 아파트를 사지만 저는 어릴 적 꿈이었던 망원경을 구입한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소박하게 저 혼자 보려고 만든 겁니다. 하루 4~5시간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가정 형편상 최종 학력이 중졸인 김 관장은 독학으로 조각을 공부해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의 반열에 오른, 미술계의 입지전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조각 작품은 한국은행 신관을 비롯해 아차산 생태공원, 부산 태종대, 호미곶 등대, 해남 땅끝조각공원, 일본 지바현 등 국내외에 설치돼 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고흐나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접하고 유명 예술가를 꿈꾸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부안은 고려자기를 굽던 도요지로 유명한 곳. 처음엔 점토로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었다. 옹기공장 옆의 석공장에서 돌을 깎고 다듬는 과정을 지켜보다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8군에서 군 복무 중 영내에서 목조각 전시를 열기도 했다. 제대 후 원로조각가 김경승에게 사사했다.
그의 작품들은 화강암을 소재로 여체의 아름다움을 구상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그의 아버지가 개간한 터에 조성한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에는 다양한 형태의 화강암·대리석 상 130점이 전시돼 있다. 요즘 그는 105톤짜리 거대한 화강암으로 여체를 다듬고 있다. 2016년 완성을 목표로 하루 8시간씩 땀을 흘린다. 3년 전부터 해마다 조각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친분 있는 시인들의 시를 돌에 새기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9개의 화강암 시비를 완성했고, 앞으로 30편을 더 새겨 넣을 계획이다. 그럴 경우 조각공원은 새로운 문학 명소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고.
억대의 비용이 드는 천문대를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작품성이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행 신관 건축 당시 박성상 한국은행 총재가 젊은 그에게 원로 조각가들과 대등하게 작품 제작을 의뢰한 것만 보아도 그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천문대는 처음 5년간 5000명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격포에서 천문대에 이르는 4km의 비포장 산길을 힘들게 찾아온 방문객들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해 라면을 끓여주면서 신비로운 우주의 세계를 열어보였다. 부친의 작고 전후로 한동안 열지 못했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공개하려 했지만 감당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 최근에 단체 위주로 유료 개방하고 있다. 입장료는 5명당 5만원, 한두 명이라도 같은 가격에 받는다. ‘비싼 편 아니냐’고 묻자 김 관장은 “전문성이 필요한 기계를 조작하면서 몇 시간씩 해설해주고 정비도 해야 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슬하에 1남3녀를 둔 김 관장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예술 활동의 사각지대에서 밥이라도 먹고 4남매 대학 교육까지 시킨 건 기적이란 생각도 들어요”라며 웃었다.
영화 ‘실미도’의 마지막 촬영지 부안군 계화면 네거리에 가면 거대한 여자 나체상(‘계화의 향기’)을 만난다. 그게 바로 김오성 관장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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