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 실종 의혹과 봉하마을
대화록 실종 의혹과 봉하마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3.10.11 11:14
  • 호수 3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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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의 취재수첩

요즘 노무현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삭제 의혹 건을 두고 여야의 말싸움이 극에 달했다. 대화록 초본을 삭제했다, 표제만 지웠다, 국가정보원에는 있지만 대통령기록관에는 없다 등등. 국민들은 대화록 사본이 너댓 개 돌아다니거나, 보관처가 서너 곳이 넘는 걸로 혼동할 정도이다. 왜 이럴까. 발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초를 자기 마음대로 주물러댔다. 자신에게 이로운 건 볼 수 있게 하고 , 이롭지 못한 내용은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검찰은 국가기록원 압수수색에서 입수한 동영상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등 기록물을 재분류하는 2008년 1월 청와대 회의에서 “나한테 안 좋은 이야기, 불리한 거는 지정물로 묶자”는 말을 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이 날 회의에서 청와대에 보관 중인 기록물들을 △국가기록원에 넘길 것 △청와대에 남길 것 △봉하마을로 가져갈 것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지시했다. 검찰은 봉하이지원에서 반납한 문서 중 삭제된 것만도 200건이나 된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란 말이 처음 나온 건 작년 10월, 국회 통일부 국정감사 때였다. 당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김정일을 만나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하면서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화록 얘기가 나올 때마다 국민들이 어처구니 없어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국가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가지고 갔다가 반납했다는 사실이다.
국가기록물이 누구 집 이삿짐인가. 국가기록물은 사초(史草)이다. 사초는 국정 운영을 기록한 것으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세종 31년 123권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춘추관에서 아뢰기를 본관에 소장한 사초는 모두 군신의 선악을 기록하여 후세에 가르쳐 보이는 것이오며, 관계됨이 지극히 중하여 다른 문서에 비할 것이 아니오니 금방(禁方)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사관이 자기에게 관계되는 일을 싫어하거나 혹 친척과 친구의 청을 들어서 그 사적을 없애고자 하여 권종(卷綜)을 완전히 훔친 자는 제서를 도둑질한 율로써 논죄하여 참하고, 도려내거나 긁어 없애거나 먹으로 지우는 자는 제서를 찍어버린 율로써 논죄하여 참하며, 동료관원으로서 알면서도 고하지 아니하는 자는 율에 의하여 한 등을 감하고...”
사초를 건드리면 엄하게 다스린다는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초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사초를 송두리째 빼돌려 자기 집 안방에서 수정과 삭제 등 짜깁기를 한 후에 다시 반납을 한 것이다. 당시 누구도 이 행위가 부적절하고 마땅히 죄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연설기획관을 역임한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최근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대화록을 삭제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기록관에 회의록을 이관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날 기자회견을 하기 직전 “농사에 전념할 때인데 이 일로 나왔다”는 말을 했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들이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전 세계 어디에도 대통령이 퇴임 후 자기 측근과 아류를 한곳에 모아 집단적으로 세과시를 하는 전례가 없었다. 국민들이 봉하마을을 걱정스럽게 본 이유는 측근들이 봉하마을을 교두보 삼아 세를 키워 이 나라를 또 다시 그들만의 입맛대로 훼손하려는 저의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는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한 이후 소멸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국민과 우리 정치는 앞으로 얼마나 더 피로감에 노출되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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